날짜를 세는 방법에 따라 태양력과 태음력이 있는 것처럼 야구의 시간도 다르게 흘러간다. 보통 3-4월 봄에 프로야구의 정규 시즌이 시작해서 가을에 끝난다. 정규 경기는 끝났지만 이 ‘가을 야구‘만을 기다려온 사람들이 있다. 리그의 1-5위까지의 팀이 다시 실력을 겨루고 11월 중순 한국 시리즈에서 그 해 최고 야구팀을 겨루는 경기까지 끝나면 야구도 늦가을 낙엽처럼 사라진다.
내가 응원하는 기아 타이거즈는 작년에 리그 5위를 기록했고 지난 10월 4위였던 KT 위즈와의 경기(‘와일드카드’ 결정전이라고 함)에서 패배하면서 한 차례의 가을 야구를 경험했다. 오직 세 시간 뿐이었던 가을 야구였다. 오랜만의 가을 야구를 즐기려뎐 찰나였는데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안타까운 결과 나머지 상위 4개 팀 (SSG 랜더스, LG 트윈스, 키움 히어로즈, KT 위즈)이 많이 부럽고 질투도 났다.
2022년의 야구는 10월에 끝나버렸지만 그 전 해에 비하면 성과는 있었다. 5월은 타자들이 날아오는 공마다 뻥뻥 치며 모두 점수로 만들었던 기적 같은 달이었다. 야구를 오래 보다 보면 ‘어차피 우리는 안 될 거야‘라는 패배 의식에 젖어버릴 순간이 있다. 하지만 작년은 달랐다. 야구를 긍정하고, 팀을 믿었고 ‘일단 해보자‘는 마음을 먹었다. 이 태도는 나의 일상에서 스며들며 개인적으로 소박한 성취도 이뤄낼 수 있었다. 이게 다 타이거즈 덕분이다.
추위로 온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겨울이지만 야구에서는 이 기간을 ‘스토브리그(Stove League)‘라고 한다. 사람들이 스토브(난로)에 둘러싸고 선수가 다른 팀으로 이동하는지, 감독이나 코치 같은 스태프가 바뀌는 지 등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도 스토브리그가 되면 어느 때보다 초록색 검색창에 야구, FA라는 단어를 자주 검색한다.
검색 결과 화면을 내리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은 설레지만 한편으로 바들바들하다. 다른 팀 소속이었던 실력있는 선수가 우리 팀에 영입되면 벌써 내년도 리그 상위권을 기록한다는 김칫국을 마신다. 든 자리보다는 난 자리가 더 표가 난다고 아끼는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가는 일도 많다. 몇 년 전 타이거즈의 안치홍 선수는 롯데 자이언츠로 팀을 이동했다. 은퇴할 때까지 타이거즈 사람일거라 생각했던 선수였다. 고졸 신인으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바로 팀의 큰 전력으로 경기를 뛰었고 그 해에 한국 시리즈 우승도 한 선수였다. 10년 동안 많은 타이거즈 팬의 유니폼에 자리를 차지 했던 효자 같은 선수였다. 그러나 FA(Free Agent) 제도*를 통해 아쉽지만 다른 팀으로 이동한 것이다.
야구 선수가 어느 팀에 있든 내 일상은 변함이 없다며 냉정 코스프레를 해보지만, 이미 나는 그런 사고의 궤도 밖에 있는 사람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면 나의 은하계에서 태양은 야구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며 그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애정보단 애착 – 의 마음을 갖고 있기에 응원하는 선수가 다른 팀을 가거나 야구를 그만두면 그저 찡하다. 시즌이 시작되고 그 선수가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올라온다면 심장이 찌릿한 기분은 참지 못할 것이다.
*FA(Free Agent): 일정 기간 자신이 속한 팀에서 활동한 뒤에 다른 팀과 자유롭게 계약을 맺어 이적할 수 있는 자유계약선수 또는 그 제도를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