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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6. 2022

나한테 왜 그랬어?

정확히 내 나이가 몇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빠의 선명한 말 한마디와 내가 느낀 감정만이 또렷하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쯤, 명절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엄마, 아빠를 포함해 친척들이 둘러앉아 호탕하게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엿듣다 화장실에 들어서던 나는, 나를 향해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를 오래 기억하고 있다.


“쟤는 내 딸이잖아요.”


'나는 아빠의 딸.'

어떤 상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 나온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뒤바뀔 수 없는 진실, 그 사실이 내 몸에 낙인 도장 찍히는 기분이었다. 나란 존재는 아빠에게서 났구나, 나는 아빠의 딸이구나. 이 사실이 감옥처럼 나를 가두고 옥죄었다. 뒤이어 따라오는 강렬한 절망감, 무력감을 느끼며 화장실에서 괴로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도 자라면서 종종 아빠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주할 때면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곤 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는 아빠에 대한 굵직한 기억은 자잘한 잔소리, 큰소리 없이 우리들에게 그저 방임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사람, 어떤 이야기를 하면 열에 아홉은 ‘엄마한테 가서 얘기해.’ 하며 우리와의 소통 기회를 모두 엄마에게 양도했던 사람, 하지만 가끔 퇴근길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다주며 우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던 사람이었다. 자식에게 직접적인 간섭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기에 아빠에 대해 특별히 나쁜 기억은 없다. 그렇지만 내 어린 시절, 아빠에 대한 감정은 내가 경험한 것 이상으로 미움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내 삶에 찾아온 우울과 불안, 혼란을 마주하고 내 마음 들여다보기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기억되는 아빠에 대한 표상은 엄마로부터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 나이에 아빠에게 시집와 변변한 친정식구 하나 없었던 엄마는 아빠와 갈등할 때마다 아빠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아빠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정이 없는 사람이었고, 자잘한 사고를 치는 무능한 남편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부모님 사이에서 흐르는 냉랭한 기운을 감지하면서, 나도 의식하지 못한 채 서서히 엄마에게는 안쓰러움과 가여움의 감정을, 아빠에게는 낯선 거리감과 이유모를 원망을 쌓아갔던 것 같다.


부모에 대해 느끼는 감정과 별개로, 그 시절 나에게 가장 괴로움을 안겨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엄마의 말이었다. 엄마는 종종 나에게 ‘너는 아빠 닮았다. 이기적이다, 정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엄마의 험담으로 인해 아빠라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었는데, 그런 아빠를 내가 닮았다고? 내가 나빴다고? 엄마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에게 절망해야 했고, 아빠를 닮지 않아야 한다는 중압감과 엄마의 말에서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써야 했다.


의지를 다져 겨우 평정심을 찾아 나에 대한 희망을 살려냈을 땐, 엄마에게서 들려오는 또 한 마디, '너는 아빠 닮았어.'에 처참히 무너져 내렸고 그 절망감 속에서 종종 나를 혐오했다. 말에서 벗어나려고, 말에 갇히는 나를 살려내려고, 아빠라는 존재를 뛰어넘으려고 수시로 몸부림치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나는 병들어갔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세상 여러 사람에게 부모라는 존재가 가슴 아프게 다가오듯이, 나에게도 좋은 기억으로만 기억되지 않는다. 그들에게 상처받아 아파하는 나의 내면아이가 아직도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와 순간순간 나를 곤란하고 서글프게 만든다.


‘진정해. 괜찮아. 그리고 인정해. 나는 아빠의 딸이야. 그렇지만 아빠는 아빠고, 나는 나야. 우린 별개의 인간이야. 아빠를 닮았다 해도 나의 삶은 내가 결정하고 선택하는 대로 살게 되는 거야. 아무도 너의 삶을 속단할 수 없어.’ 화장실에서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던 그때의 '어린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러나 엄마의 말 앞에서 좌절하던 '어린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지,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때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정말이지 나는 엄마의 입을 막고 싶다. ‘정신 차려요! 당신의 말로 인해, 당신 딸이 얼마나 가슴에 피멍이 드는 줄 아나요? 경솔한 말 한마디가 사람을 죽이고 있어요!’ 엄마의 몸을 뒤흔들며 소리치고 싶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메시지겠지. 그리고 어른이 되어도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 그들을 만나서 그들의 마음을 다독이고 싶어 하는 이유겠지.


많은 심리 이론과 소수의 인물이 보여주듯 뼈가 깎이는 고통을 마주하고 노력하면,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대물려주지 않고 충분히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뼈가 깎이는 고통을 감내하고 용기를 내어 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고 싶다.


머리로는 나의 부모를 이해했다. 어른이 되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린 어른 아이, 그렇게 우리를 낳아 기르던 엄마 아빠의 삶이 쉽지 않았음을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 가슴으로도 이해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루지 못할 과업이 될 것 같아 괜스레 조바심이 난다. 머리와 가슴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라던데, 그 말을 너무나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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