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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30. 2022

벚꽃 휘날리던 날, 또 한번의 소개팅

"내 남자의 마음을 돌볼거라고.."

"네?"

"내 남자의 마음을 돌보고 싶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네? ..무슨?"


소개팅 첫 만남, 식당을 향해가는 차 안에서 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했다. 순간 벙찐 나는 그 말을 이해하려고 머릿속을 풀가동시켰다. 그러다 멈칫했다.


"혹시, 내담자의 마음을 보살피겠다는 소개글 말씀하시는건가요? ..아! '내 남자'가 아니고, '내담자'에요. 상담에서는 치료받는 사람을 '내담자'라고 지칭하거든요."


소개팅 어플을 통해 만난 남자였다. 내 프로필 소개글 중, 앞으로의 비전을 묻는 질문에 '상담자로써 내담자의 마음을 잘 보살피고 싶다.'는 글귀를 보고 이야기한 듯 했다.


순간 허탈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 역시 당황한 듯 했다. 멋쩍게 웃어보였고, 나 역시 이 작은 헤프닝이 우스워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 가시고 적막이 감돌때 쯤,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 


'이 사람, 마음이 힘든가? 자기 마음 돌봐줄 누군가가 필요해 무의식적으로 나에게 호감을 보였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 그런 태도로 그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질문을 했다. 그는 그의 언어로 해석한 그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만 말하게 된다면서, 가을씨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지만, 그는 그의 이야기로 채우는 시간이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의 삶을 느껴보며, 어쩌면 누군가 이렇게 물어봐주고,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이 사람에게 꼭 필요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 만남 집에 데려다주며 가을씨의 이야기도 듣고 싶다며 그는 에프터 신청을 했다. 그렇게 그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서울숲에서 벚꽃을 보자던 네 번째 만남을 앞두고 나는 그에게 안녕을 고했다. 처음엔 호기심 어린 감정으로 시작해 안정감있게 주고받던 연락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주고받는 대화에서 신선함, 즐거움을 느꼈다. 나름의 매력으로 날 이끌었고, 그러면서도 이해되지 않는, 명확하지 않은 언행으로 날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그에게서 느끼는 안쓰러움과 걱정스러움, 불안한 감정을 바로보려 했고, 그에게서 느껴지던 저 밑바닥의 공허함을 직시했을 땐, 건강하게 관계맺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 그간의 교감을 통해 쌓아온 감정을 겉어내며, 상실감에 허우적거리는 나를 돌보며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와의 만남을 되돌아본다.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만나면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의 흔적이 진하고 깊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한 인간의 삶에 신앙이 어떻게 자리하는지, 진정성 있고 올바른 신앙생활이 무얼 의미하는 것인지 되짚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자기연민과 자기성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연민에 빠져 매몰되는 사람과 자기성찰을 통해 나아가는 사람은 정말 한 끗 차이인 듯 한데 그 한 끗의 차이는 무엇이고, 그 한 끗을 어떻게 들춰낼 수 있을 것인지, 상담자로 그러한 내담자를 만난다면 어떻게 이끌어야할지에 대한 고민도 생겼다. 


또 하나, 나에 대한 발견. 나의 매력을 발산하고자 집중했던 내가 중심이 되었던 과거 소개팅과 달리, 상대를 알고자 집중했던 어쩌면 상담자적 마인드로 임했던 내 자신의 변화가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앞으로 이성을 만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잠시했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은 빠르게 나왔다. 의식적으로 애써 들어주려 혹은 말하려 하기보다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주고받는 대화에서 즐거움과 따뜻함 그리고 통한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면 된거다. 진정성있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와의 만남을 정리하면서 내가 그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메세지는 하나였다. '마음에 쉼이 필요해보인다는 것, 마음은 그 누구도 대신해서 돌봐줄 수 없다는 것.' 그와의 만남에 브레이크를 걸며 나는 이 메세지를 무례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전하려 애썼다. 그것이 첫만남에서 그를 끊어내지 못한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이었으며, 그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라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에 고맙다며, 기억하겠다며 비스무리한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은 기억나지 않는다. 헤어짐을 고하고 몇날이 지난 후, 그에게서 생각나서 연락한다는 메세지가 왔다. 답장하지 않았다. 그는 연락해서 죄송하다며, 잘 지내라는 말로 그렇게 관계를 마무리했다. 


첫 만남에서 느꼈던 나의 직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 직감을 무시하고 호기심에 만남을 이어간 나는 고된 감정앓이를 했다. 이럴 땐 내 호기심이 몹쓸게 느껴진다. 과거의 나였다면, 그와의 만남을 시작하고선 더한 감정앓이를 했겠지. 멈출 수 있었음에 그리고 과거와 다른 행보에 의의를 두어야겠다. 호기심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숙명인 듯 하고, 이 호기심이 엄한 데 길을 트지 않도록 잘 관리하자는 깨달음을 새기며 벚꽃 휘날리는 올봄, 또 한번 좋은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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