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춘
낯익은 여자가 들어온다. 나는 금방 알아차린다. 바로 이 백설장 근처 놀이공원에서 커피를 팔고 몸도 파는 여자다. 육십 대 가량의 이 여자는 세월이 갈수록 화장이 짙어지고 있다. 그에 따라 데리고 들어오는 남자의 수도 늘고 있다. 여자는 트럭기사나 행상인, 아니면 무직자등 직업불문 연령불문의 사내와 이 방으로 들어온다.
공원에는 이렇게 매춘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밤 거미가 내리기 시작하면 칠흑처럼 검은 옷을 입은 여자들이 공원 이곳저곳에 출몰하기 시작하는 고양이처럼 나타난다. 약간의 술과 음식, 그리고 여관에 들어갈 돈만 남자들이 지불하면 어디라도 좋아, 하고 나타나는 것이다. 인심 좋은 남자를 만나면 다음날 목욕탕이나 찜질방 정도는 갈 수 있는 돈을 뜯을 수 있다.
여자는 익숙하게 텔레비전을 켠다. 그리고는 욕실에 들어가 오랫동안 목욕을 한다. 도시락을 싸갖고 들어오는 날이면 점심을 먼저 먹고 목욕을 한다. 단골손님의 경우, 여자는 손님과 도시락을 나눠 먹기도 했다. 남자는 자신의 신세한탄을 들어주고 몸도 섞어주는 여자가 고마워 자식이 주는 용돈을 여자에게 바친다. 오래전 한 남자는 시계나 카메라, 금반지 같은 것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여자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 챙겼다. 어느 날이었던가. 여자는 몸이 좋지 않은지 기침을 연신 했다. 여자는 남자가 목욕을 하고 있을 때 음료수에 약을 섞은 뒤 남자에게 먹였고 자신은 감기약을 털어 넣었다. 수면제였던지 남자는 정신없이 쓰러져 잠들고 여자는 그 옆에 누워 단잠을 잤다. 깨어난 남자가 지난밤 여자와 성교를 했든지 안 했든지 긴가민가하면 여자는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딱 잡아떼었다. 남자의 호주머니를 뒤져 돈을 훔치기도 하였다.
남자는 얼마나 천천히 옷을 벗는지 벗는 데만 하여도 한 시간이 족히 걸린다. 여자가 욕실에서 나오자 남자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욕실로 들어간다. 여자는 남자가 벗어놓은 옷들을 개켜 침대 바닥 한쪽에 밀어놓고 침대에 눕는다. 이윽고 남자가 수건으로 몸을 감싼 채 욕실에서 나와 여자의 옆에 따라 눕는다. 남자는 이불을 목 위에까지 올리고는 여자를 외면한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19. 이들은 마치 이불 바깥으로 나오면 유령이라도 만나기라도 하듯 꼼짝도 하지 않고 이불속에 파묻혀 있다. 십수년 간 각자 성관계를 해 온 화려한 이력은 어디로 갔는지 초야를 치르는 사람처럼 쉽게 접촉을 하지 못하고 있다. 육체가 닿기 전에 말이 닿아야 한다는 집념을 가지고 있는 듯 남자와 여자는 초조한 표정으로 말할 거리를 찾고 있다. 겨우 남자가 먼저 입을 뗀다.
“며느리와 하루 종일 한 집 안에 같이 있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모를 거야. 며느리도 힘들었던지 아침만 차려놓고 나가 하루 종일 들어오지 않았지. 나를 피해서 그렇게 외출을 한 며느리의 심정은 모르고 그저 끼니를 차려주기 싫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오해했었는데 그것을 알고는 이젠 내가 먼저 나와. 내가 나와야 며느리가 낮잠도 자고 친구들도 부를 수 있으니까.”
여자는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남자는 부인이 수년 전 암으로 세상을 먼저 떠났다는 말과 삼남 일녀의 다복한 가정을 자랑한다. 여자는 지겨운 듯 인상을 찌푸리지만 그만두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왕년엔 하나같이 부유하고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남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들을 반복하고 있는지 여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과거가 어쨌든 지금은 집에서나 거리에서나 모두들 유령처럼 흐느적흐느적 배회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죽음을 스스로 앞당길 용기도 없이 명줄을 놓지 않은 채 이렇게 여자를 품을 기회만 노리는 초라한 노후가 아닌가.
여자는 가끔 자신조차도 영혼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고작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해 남자들에게 몸을 팔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 집이 내 소유로 되어있으니까 자식도 함부로 날 대할 수 없지. 이 공원을 배회하는 남자들 중 나만큼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을 거야.”
여자는 남자의 허풍을 잘 참아내고 있다. 그럼 나에게 한 살림 좀 떼어주지, 하고 말하면 단박에 몸을 사릴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저런 말은 말짱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는 그저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여자가 아무 말이 없자 더 이상 말 할 재미를 느끼지 못한 칠십 대의 이 남자는 당뇨병을 오래 앓은 뒤라 잘 서지 않을 거야, 하며 헛기침을 한다.
드디어 남자가 한 손으로 이불을 제치고는 앙상한 팔을 들어 덜덜 떨면서 옆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여자의 거웃을 쓰다듬는다. 듬성듬성 나있는 여자의 거웃은 남자의 손에 의해 파르르 떨며 일어난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여자의 성기 속으로 밀어 넣으려고 하다가 질겁해하는 여자에 의해 제지당한다. 남자는 자존심이 상하지만 여자가 자신을 싫어하지는 않을까 눈치를 본다.
귀찮은 표정을 짓는 여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남자의 몸을 일으킨다. 남자는 그제야 용기를 낸 듯 여자의 처진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건포도처럼 붙어있는 젖꼭지에 얇은 종이처럼 건조한 입술을 갖다 댄다. 여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남자의 머리를 끌어안고 남자의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다. 이윽고 남자가 여자의 몸 위로 올라가느라 끙하는 소리를 내며 안간힘을 썼다. 노쇠한 육체는 사랑의 행위조차 버거운 듯 보인다.
남자는 좀체 발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엉거주춤 여자 위에 포갠 채 마른 입술을 적시고 있다. 여자는 기다리다 못해 몸을 빼내 앉았다. 남자는 차렷 자세로 반듯이 눕는다.
“단골이 돼 줄 거지?”
여자는 누누이 강조하면서 남자의 성기를 만지기 시작한다. 여자의 메마른 손은 남자의 성기를 잡고 쓰다듬고 위아래로 움직이고 그리고 흔든다. 여자의 눈은 남자의 성기에 가 있는 게 아니라 텔레비전 드라마에 있다.
그러나 여자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성기는 끝내 발기하지 못하고 만다. 여자도 결국 포기하고 만다. 여자는 옷을 찾느라 두리번거린다. 마음이 급해진 남자는 성기를 손으로 감싸며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는 옷을 막 입으려고 하는 여자의 손에서 옷을 빼앗아 던지고는 여자의 늘어진 젖가슴 사이로 성기를 밀어 넣는다. 여자는 남자를 손으로 밀었고 남자가 힘없이 뒤로 넘어갔다. 침대 위에 넘어진 남자는 수치심 때문일까, 뭐라 욕설을 중얼거리듯 뱉는다.
여자는 들은 체 만 체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한다. 이제 그들이 천천히 나간다. 발자국 소리가 희미해지고 또다시 적막이 흐른다. 이제 나는 빈 방에 다시 혼자 갇힌다. 나는 손님이 오기 전까지 하릴없이 또다시 햇살에 따라 춤추는 먼지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