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의 마지막
손님들이 이어진다. 똑같은 행위들이 지리멸렬하게 이어지고 서로에 대한 신비감이 사라질 즈음 그들은 이제 몸의 교합대신 말의 성찬이 이어진다. 여자들은 우리 말 좀 해요, 하며 포문을 열고 남자들은 또 시작이군, 하며 얼굴을 찌푸린다. 여자는 여관으로 들어서기 전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함께 너무 쉽게 몸을 허락해버리고 만 자신에 대한 후회로 침울한 얼굴을 하고 있다.
여자에게 몸은 어떠한 거래의 형태인 듯 여자들은 끊임없이 과연 남자가 선물해 줄까, 말까 약은 여우처럼 계산을 한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정직한 여자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불륜의 여자일 경우엔 더욱 그러했다. 정조를 제물로 올린 여자는 끊임없이 남자의 애정을 시험하고 의심하고 그리고 집착한다.
이에 반해 남자는 여자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쉬고 싶을 뿐이며 잠들고 싶을 뿐이며 가장 원시적이고 자연적인 여자의 몸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뿐이었다. 하루 종일 온갖 기계로 둘러싸인 환경 속에서 일을 하는 남자는 여자의 몸이 원시성의 마지막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원시림의 처녀지를 찾아 남자는 개척과 개발을 반복하고 있다. 여성의 몸이 습관처럼 되어 익숙해질 무렵 남자는 서서히 지루해져 가고 다른 처녀지가 어디 있을까 찾아 나서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바로 여자와 누운 침대 위에서 말이다.
철새 같은 남자와 여자는 대책 없이 시작한 것처럼 대책 없이 종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신여사는 눈을 뜨고도 한참을 멍한 얼굴로 천장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조금씩 눈을 들어 주위를 살폈다. 오래된 가구와 창문, 그리고 나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신여사는 나를 보자 안심이 된 듯 희미한 표정을 짓는다. 쓰러지기 전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몇 달 전 신여사는 여관 복도에서 쓰러졌다. 심장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으며 수술을 해도 생존율은 낮다는 의사의 말에 신여사는 수술을 거부했다. ‘이제 갈 때가 된 거야. 그동안 잘 살았어.’ 장사장은 만류하지 않았다. 신여사는 별채로 옮겨졌다. 장사장은 공사를 서둘렀다.
“당신이 죽으면 이 모든 세간은 다 버릴 거야. 자개장롱도 화장대도 저 고물거울도 … 장마가 오기 전에 공사를 마치려면 지금도 늦었어. 내일 새벽부터 포클레인 공사 들어가는 거야. 오늘부터 숙박 손님은 받지 않기로 했어.”
나는 이제 나의 수명이 다한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신여사는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여사는 손수건으로 내 쪽으로 다가와 자신의 얼굴을 닦듯 정성스레 닦았고 그것을 다한 뒤엔 자개장롱으로 가서 문을 열고 안의 이불과 옷을 모조리 꺼내 개켰다. 장롱 안은 단번에 단정하고 정갈해졌다. 신여사천장을 향해 반듯이 누워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다시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그때였다. 나에게도 심장이 있었던가. 심장 한 복판이 관통되는 듯한 느낌이 일어났다. 내 몸은 사선으로 금이 가는가 싶더니 이내 와장창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지고 있다. 백설장에서 보았던 수많은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더니 서서히 암전 되었다.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