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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백설장 18화

백설장 18

- 욕망의 창문

by 이도원

한 커플이 들어왔다. 여관은 처음인 듯 서로 쭈뼛거리며 들어와 남자가 먼저 샤워를 하겠느냐, 고 여자에게 물었다. 여자는 깜짝 놀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를 보다가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외면하며 창 쪽으로 다가갔다. 붉은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을 열려던 여자는 깜짝 놀란 듯 급히 창문을 닫았다. 아마 자신이 지금 어디에 와있는지를 잠깐 잊었던 게 분명했다. 여관이라는 방에 들어와서야 자신이 엄청난 곳에 왔다고 깨달은 것이다. 집에서 예사로 빨래를 널고 아이를 부르고 옆집 여자와 수다를 떠는 그런 창문이 아닌 것이다.

여자는 창을 통해 세상의 규율에서 한참이나 먼 곳으로 떠나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어떤 여자들은 그것을 안 순간 함께 왔던 남자를 내버려 두고 몰래 도망치기도 하였다. 마치 유황불에 온몸을 지지는 형벌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여자는 전속력으로 백설장을 빠져나갔고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자들은 어이없는 얼굴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여자는 남자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을 벽에 걸었다. 남자는 오랫동안 욕실에 들어간 채 나오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가 씻고 있는 동안 자신의 몸을 살핀다. 블라우스 단추를 끌어 아랫배나 가슴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난 듯 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이가 제대로 밥을 먹었는지 학원은 갔는지를 물었고 남편에게는 지금 회식을 하고 있는지를 집요하게 묻고는 자신은 친구와 모임이 끝나고 다소 늦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제 남자가 나오고 여자가 욕실로 들어간다. 여자와 남자는 서로 마주치는 것을 어색해한다. 그들은 서로의 어깨를 비껴 지나간다. 분명 저들은 처음 만난 사이이거나 오늘 처음 몸을 섞게 되는 사람들일 것이다. 처음엔 저렇게 어색하다가 몇 번 여관에 드나들게 되면 곧 익숙해진다. 긴장이 풀어지고 존중이 무례로 부드러운 것이 거칠어진다. 살의 겹침과 부딪침이 격렬해지면 질수록 마음의 탄력성은 떨어진다. 그 변화에 당황하여 더욱더 서로의 몸에 매달리는데,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 최초의 떨림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남자는 돌아누워서 담배를 피우고 여자는‘이렇게 될 줄 알았어. 이건 모두 당신 책임이야’하고 말하곤 했다. 남녀의 끝은 이렇게 되어버린다. 여관이라는 공간은 이렇게 만들어 버린다. 여기만 들어오면 원초적인 수컷과 암컷, 단 두 생물학적 존재로만 남는다. 그들은 각자의 역할을 한다. 그들의 흥분한 성기는 그들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기계적인 행위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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