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만나서

by 이도원

그녀는 내가 유일하게 갑자기 만나고 싶은 사람이며 갑자기가 아니면 , 그러니까 약속을 미리 하거나 해서 만나면 좀 시들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다. 사실 나는 '다음에 봐' 하는 말 보다 번개팅처럼 갑자기, 우연히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에 속한다.

그녀를 우연히 한 강연회에서 만났다. 아무렇게나 빗은 머리에 어울리는 소박한 머리핀을 보고 긴가민가 했다. 여기에 올 그녀인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의 옆모습을 보았고 단박에 그녀임을 알았다.


그녀는 다소 야윈 듯 보였다. 여전히 다정한 표정에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예의 바르고 정직하고 웃는 걸 좋아하는 여자이다. 강연회를 마치고 나서 나는 그녀에게 아는 체를 했다. 서로 일행이 있어 짧은 일별을 한 뒤 그녀가 나갔고 나 또한 동행인과 함께 갔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해서 가게 된 그녀의 작업실은 7년 만에 가는 것이었다. 기역자로 꺾여 있는 계단 옆 창문 사이로 이사를 가는지 오는지 사다리차가 걸려있는 대단지 아파트가 보였다. 그녀는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끓였다.


나는 주변의 이야기, 그러니까 말하자면 치사하고 유치하고 예민한 것들에 대해 , 특히 내가 싫어하는 것,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잘 들어주었고 그리고 정리를 잘해주었다. 수납 정리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다소 비정하고 잔인한 듯 느껴질 할 때가 있지만 나는 그녀가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즐겼다.


그녀는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는 자신에 대해 말했다. 개와 사람을 같이 봐야, 반려인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들의 원룸을 구해주면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해 주었다. 도배가 잘 된 방에 아들이 들어가면서 그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좋고 깨끗한 방이 남아 있을까, 신기하구나.' 하는 그녀의 말에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든가.

'여기서 누가 목을 매었을 지도, 아니면 피가 낭자한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지도, 성폭행이 일어난 현장일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도배장판을 다시 해주는 거겠지요.' 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말하면서 계속 게임에 빠져 있었다고.

내가 이것에 대한 흥미를 느끼며 소설에 옮기고 싶다고 하니까 얼마든지 쓰라고,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는 내가 소설로 옮기고 싶은 사람 중 한 여자이다. 음식에 관한 주제의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녀는 한 시간가량 음식을 준비했고 그리고 한 시간가량의 시간을 들여서 밥을 먹기를 주문하는 사람이었다. 점심 초대받아갔을 때의 일이었다. 그녀는 월남쌈을 준비했는데 모래시계를 식탁에 올려두더니 '딱 한 시간이에요. 한 시간 동안 먹는 거예요.' 하고 말했다. 나는 그녀의 명령에 가까운 주문에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먹어야 했다. 그날이 마치 생애 처음으로 밥을 먹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이렇게 평생 살 것 같아요.

그녀의 이 말에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요.

나는 이렇게 무심하게 대답했다. 마치 선문답을 하는 고승처럼 우리는 진지하게 이야기했었다.

나는 떠오른 소설의 장면과 제목을 이야기했다.

소설 제목은 어느 극단적인 산책.

목숨을 걸고 하는 밤의 산책, 오토바이 라이더와 조폭 운전자와의 해프닝, 그리고 그녀의 밥 먹는 행위에 대한 쓸쓸하고 적막한 주제의 이야기.

그녀가 다 완성되면 보여줘요, 하고 말했다.


그날 우리는 기약 없이 헤어졌다.


오늘 아침, 문득 나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극단적인 산책 파일을 꺼냈다. 이 단편을 중편으로 고칠 심산이다. 그녀를 우연히 다시 만나길 바라면서도 다시 만나지 않아도 될듯한 모순의 감정을 느끼면서. 완성된 소설을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아차, 어쩌지 하면서.


그녀는 아직도 혼자만의 식사를 잘하고 있을까? 모래시계를 앞에 두고. 천천히 아주 오랫동안 음식에만 충실한, 마치 수행자와도 같이.


중편소설이 되면 그녀에게 소식을 알려야겠구나. 우연이 아니면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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