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팔에 근육이라니!"
클라이밍의 효과는 대단했다. 고작 2번 나갔는데 지금까지 생긴 적 없는 근육이 솟아오른 것이다. 2주간 급조했어도 근육은 근육이라 힘을 주면 단단하게 올라오고 팔을 움직이는 동작에 따라 봉긋하게 올라오기도 했다. 팔에 생긴 근육이 생긴 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해서 나 혼자서 여러 번 만져보았다. 남들이 보았다면 추워서 저렇게 팔을 쓰다듬나 싶었을 거다. 근육이 생겼다는 나의 자랑에 지인들의 반응은 모두 같았지만 방점이 찍히는 곳은 달랐다. "'근육'이 생기다니 대단하다!" 이 말은 뿌듯했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말도 있었다.
"'여자'팔에 근육이라니, 괜찮겠어?"
클라이밍을 시작하면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걱정을 다른 사람에게서 듣고 머리가 띵- 했다. 몇 년 전, 어렸을 적 배웠던 발레를 다시 해보고 싶어서 한 달 정도 다니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다. 발끝으로 서는 동작이 종아리를 자극해서 알이 배긴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운동을 지속하지 않았던 것은 발레에 그만큼의 열정과 흥미를 느끼지 못해서였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가녀린 종아리는 여성의 상징이었고, 종아리에 알이 생기면 빼는 것도 성가신 일이라 그것을 핑계 삼아 그만두었다. 그런데 그러부터 몇 년이 지난 후, 다른 사람에게서 똑같은 이유를 듣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클라이밍을 시작하면서 여러 주의 사항에 대해 알아볼 때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손을 많이 이용하는 운동이다 보니 여성의 경우 네일아트를 하기 어려워요.' 그렇다면 남성을 대상으로 한 주의사항은 따로 있을까? 코어 힘을 기를 수 있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하면 부상의 위험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정도가 끝이었다. 남성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닌, 모든 성별을 향한 말이었다.
기존의 클라이밍이 남성 위주로 진행되었다지만 최근 여성 클라이머도 늘어나는 추세에서 여성을 위한 별도의 주의사항이 있다는 것은 좋은 현상일까, 나쁜 현상일까? 나는 왠지 삐딱하게 바라보고 싶다. 나는 네일 아트를 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한다. 네일아트를 여러 번 하다 보니 손톱이 약해져서 몇 년 동안 쉬었고, 이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손톱이 예뻐 보여서 정갈하게 다듬기만 한다. 하지만 남성 중에서도 꼭 아트를 하지 않더라도 손톱 관리를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손을 보이는 게 중요한 직업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 모두를 위해 '손을 조심히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은 주의하는 게 좋아요'라는 멘트가 있었다면, 내가 삐딱하게 보지 않았을까?
여성과 남성은 엄연히 성별도 다르고 신체구조도 다르기에 운동처럼 몸을 써야 하는 활동에서는 차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선입견과 편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었는지 알기에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제한을 두고 싶진 않다. 여성은 남성보다 피하 지방이 많아서 근육이 생기기도 어렵다는데 여자 팔에 근육이 생기는 건 멋있지 않은가. 근육은 스스로가 노력한 결과물이니까.
"저 근육 생긴 거 처음이에요. 이젠 복근도 만들고 싶어요."
'여자' 팔에 근육이라는 그분에게 돌려드린 말이다.
일주일의 시작에 만들어진 근육은 일주일이 끝날 무렵 다시 사그라들었다가 3주 차가 되었을 때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이대로 좀 더 노력하면 계속 이두근이 살아 있을까? 부푼 마음에 클라이밍을 하러 갔을 때는 장마의 시작이었다. 폭우 탓인지 선배 회원들 몇 명만 앉아 있었고 동기 회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신입인 나와 고작 10주 차이가 나는데 선배 회원들은 선생님이 만든 볼더링 문제를 능숙하게 풀고 내려왔다. 나도 10주 후면 저렇게 벽을 잘 탈 수 있을까, 선망의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선배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다음 타자는 나였다. 나는 또 삼지점을 까먹고 벽에 서서 매달리고 중간에 떨어졌다. 자신감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처음에 잘한다 소리 몇 번 듣고 바로 나락이었다. 난 재능이 없나 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시무룩해져서 의욕을 잃었다.
오랫동안 돌을 잡고 있어서 팔이 욱신거렸다. 손가락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아서 겨우겨우 샤워를 마치고 나와 거울에 팔을 비춰보는데 팔꿈치 쪽 실루엣이 여느 때와 달랐다. 팔목과 먼 팔꿈치 쪽 부위. 검색해보니 '전완근'이라는 근육이었다. 팔꿈치를 접어보면 그 부위가 매끈하게 접히지 않고 툭 튀어나와 있었다. 손은 초크를 여러 번 발라 건조하고 물집이 잡혔다가 터져서 허물이 벗겨지는 것도 여러 곳이었다. 며칠이 지나도 손끝이 아리게 박힌 느낌이 들었다. 돌이 점점 더 익숙해진다. 여성스럽지 못한 손과 팔, 나는 그것이 즐거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