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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Jan 31. 2023

초보를 앞세우는 미덕

등산의 원칙

2월, 업무분장의 달이다. 이 시즌만 되면 우리 업계에서는 일종의 유행어처럼 대화의 첫머리와 마지막을 장식하는 문장이 있다. 자신이 원하는 부서와 직무를 작성해서 제출하고, 새로운 판을 짜보았다가 엎기를 반복하며, 누군가는 사람을 끌어당기려 배후를 조종하고 누군가는 사람을 피하려 전략을 짜는 정치질이 난무하는 때다. 누구나 싫어하는 것만 있을 뿐, 좋아하는 것은 없는 이 암투의 현장에서 결국 누군가는 기피하는 업무를 맡을 수밖에 없다. 슬프게도 희생양은 언제나 가장 어리고 능력 있는 착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올해의 희생양도 역시나 젊고 능력 있는 착한 사람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동료의 한탄도 역시 이 문장부터 시작했다.


"요즘 선배들, 진짜 너무하지 않아?"


물론 우리에게 영감과 교훈을 주는 멋진 선배들도 있다. 업무를 효율적으로 분배하고 미진한 부분이 생기면 대신 도와주기도 하며, 갈등 상황이 있을 때면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조율하고, 후배가 부당한 일을 당할 때면 누구보다도 크게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들도 많이 봐왔다. 하지만 나보다 경력도 업무 경험도 월급도 훨씬 많으면서도 한직만 전전하며 업무라곤 자신이 받게 될 연금 계산만 하는 선배들 또한 많다. 요즘 MZ 세대들이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이라고 욕먹는다지만, 퇴직을 앞둔 이들 선배들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며 MZ 못지않은 이기적인 태도를 취하는 걸 보며 한숨을 넘어선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회사에서 가장 기피하는 업무를 풋내기들에게 몰아주는 것은 정말 근절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이기적인 선택으로 가장 편안한 1년을 얻게 된 선배를 보며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저 사람, 내 월급의 2배는 받을 텐데.




"잠깐 쉬어갈까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를 돌아보자 북한산 날다람쥐가 고개를 끄덕였다. 호흡을 진정시키려 의자에 걸터앉아 물을 한 모금 들이켜보아도 심장 뛰는 소리가 옷 밖으로 쿵쿵 들리는 듯했다. 겨우 제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내 옆에 앉은 그녀는 땀 하나 나지 않은 차분한 얼굴이었다. 등산 스틱 하나 없이 물병 하나만 가지고 산을 오르는데도 어쩜 저리 아무렇지 않을까. 혹여나 잃어버릴세라 손목에 등산 스틱을 매어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나보다 3살 어린 그녀는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부터 등산을 시작했다고 한다. 자가용이 없어 지하철로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도봉산이나 북한산을 주로 가게 된다는데, 주말이면 어김없이 혼자 산을 오르고 있다고 해서 붙여준 별명이 '북한산 날다람쥐'다. 내가 등산에 입문했다고 주변에 알리자 같이 갈 동행 없이 여자 혼자 산을 올라가는 건 너무 위험하다며 모두가 말릴 때 이 친구만은 적극적으로 날 응원해 줬다. 덕분에 그녀도 나도 시간이 맞을 때면 함께 산을 오르곤 한다.


내가 산을 즐기게 된 것도 북한산 날다람쥐 덕분이다. 산이란 그저 체력단련을 목적으로 빠르게 정상을 찍었다가 내려오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던 나에게 그녀는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산을 오르는 여유를 알려주었다. 나무와 바위만 가득했던 검단산에서 등산로를 잠깐만 벗어나면 너른 바위에 앉아 한강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조망 포인트가 있다는 걸 그녀가 아니었다면 미처 깨닫지 못했을 거다. 등산의 허기를 달랠 맛집 탐방은 그녀와 함께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먹고 찐 살을 빼기 위해 산을 오르려다가도 이젠 근방의 맛집이 어디 있는지부터 검색을 하고 산을 타게 된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내가 검단산을 다시 간다면 그 이유는 단 하나, 애니메이션고 근처 중국집에서 먹었던 탕수육을 먹기 위해서다. (검색하면 나오는 그 집이다!) 내 인생 최고의 바삭함과 쫄깃함을 여기서 먹었다. 혼자서는 여러 가지를 맛보지 못하니 다른 메뉴도 궁금하다면 꼭 여러 명과 함께 가보길 추천한다. 


등산을 하다 보면 옆으로 나란히 걷기보다는 앞사람을 따라 걷게 된다. 그날도 어김없이 내가 선두를, 그녀가 후미를 맡았다. 그동안의 근황에 대해 수다를 떨면서 산을 오르다 보면 나는 점점 숨이 가빠오고 나중에는 거의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로 호흡이 거칠어진다. 도저히 참기 힘들 때면 잠시 쉬어가자고 제안하는데 그때마다 등산 경력자인 날다람쥐는 자기도 쉬고 싶었다며 적당한 앉을 곳을 찾아준다. 내 속도에 맞춰 일부러 천천히 산에 오르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닌데도 그녀는 자기도 천천히 산 타는 걸 좋아한다고,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나를 격려해주곤 한다.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아 서둘러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도 조금 더 쉬어도 괜찮다고 몇 번이나 내 상태를 확인하는 모습에, 나도 얼른 그녀에 견줄만한 실력을 쌓아야겠다고 불끈, 다짐을 했다.


이번에도 내가 앞을, 그녀가 뒤를 맡아 나란히 걸었다.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때면 성격이 급한 나는 언제나 앞장서서 먼저 걷곤 한다. 갈림길이 나올 즈음이 되어서야 뒤를 돌아보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따라오는지 확인한 다음 다시 목적지를 향해 오로지 전진만 하는 것이 나의 오랜 습관이다. 그녀와 산을 오를 때도 아무 생각 없이 앞장서서 걸었는데, 나중에서야 안 것이지만 '등산을 할 때는 초보를 앞장세워야 한다'고 했다. 실력이 좋은 사람이 먼저 걷다 보면 뒷사람이 어느 정도 따라오는지 가늠하지 못해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사고를 당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무리를 지어 산을 오를 때면 초보자를 앞에 세우고 그 사람의 속도에 따라가야 모두가 안전하게 등산을 마칠 수 있다. 알지도 못하는 등산로를 먼저 앞질러서 가고 있을 때 그녀가 왜 나무라지 않았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날다람쥐는 이렇게 보이지 않는 배려를 하는 사람이었다. 


또 다른 날, 나는 새로운 등산 메이트와 아차산을 갔다. 이번 등산 메이트는 산은 거의 처음이라고 해서, 내가 날다람쥐에게서 받았던 배려를 그녀에게도 선사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아차산은 서울 산 중에서는 무척 낮은 편이라서 초보도 쉽게 오를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검단산으로 단련된 나는 거침없이 산을 올라갔다. 둘레길 같은 평지와 등산로 같은 오르막이 적당히 섞여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코스에다 낮지만 탁 트인 전망이 눈을 즐겁게 했다.


나는 사진 포인트를 발견할 때마다 어서 빨리 보라며 등산 메이트를 닦달해 댔다. 내가 힘들지 않은 만큼 그녀도 수월하게 산을 오르고 있을 거라 자신했는데, 그녀의 얼굴이 땀범벅이었다. 아차, 그녀는 등산 초보자였다. 사고가 나지 않도록 초보는 앞세우고 경력자는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는 게 미덕이라고 배웠는데 나는 하나도 실천하지 않고 습관처럼 또 앞장서서 걷고 있었다. 내가 쉬어가자며 말이라도 먼저 꺼내는 성격이라면 그녀는 나를 배려하느라 그런 말도 꺼내지 않는 성격이었다. 정신 차리고 다시 뒤따라서 천천히 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새 나는 또 저 멀리 앞에서 걷고 있었다. 배려라곤 1도 없이 그저 혼자서만 즐긴, 최악의 등산 메이트가 바로 나였다.




오랜만에 전 직장 동료를 만났다. 가장 좋은 안줏거리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이야기라, 우리는 그동안의 회포를 풀면서 서로의 직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부조리함에 대해 떠들어댔고, 그녀 또한 그녀의 회사에서 느꼈던 환멸에 대해 소리를 높였다.


"이제 고작 3년 차가 그 업무를 맡았다고? 더 경력 많은 사람들도 있잖아. 그 사람들은 뭐 하고?"

"자기는 뭐 때문에 안 된다, 그러면서 다 빠졌지 뭐. 결국 그 사람이 맡게 된 거야. 사실상 맡아준 거지."

"선배들 진짜 너무하다."

"근데 더한 건 뭔지 알아? 그렇게 뒤로 빠진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 옆에서 행동 하나하나마다 태클을 걸고 있는 거야. 그렇게 뭐라고 할 거면 도와주기라도 하든가, 그 자리에 앉히질 말든가. 초보가 어설픈 건 당연한데."

"책임지기는 싫으면서 뒤에서 훈수는 두고 싶었나 보네. 그러니까 젊은 사람들이 점점 더 적당히만 일하고 싶은 거지. 잘하는 티를 내면 안 된다는 걸 이렇게 알려주잖아?"


우리는 한참 동안 열을 올리며 토론을 이어갔지만 할 수 있는 건 고작 말뿐이었다. 오늘의 결론도 '우린 그렇게 늙지 말자'는 자조 섞인 한탄이었다. 다른 사람을 걱정할 게 아니라 올해의 나부터 무사히 버티는 게 중요하다며 작별의 인사를 대신했지만 다음에 만나더라도 똑같은 주제, 똑같은 고민에 대해 토로할 거라는 걸 나도, 그녀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얼마 전, 퇴직한 업계 선배가 흘려보내듯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누구나 기피하는 부서나 업무를 한 번씩은 꼭 겪어보게 해야 해. 하는 사람만 계속하지 나머지 사람들은 평생 안 하기도 하거든. 모두들 순환제로 맡아보면 서로 입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 자기가 해보지 않으니까 쉽게 욕하는 거야."


그의 말에서 나는 등산의 원칙이 떠올랐다. 가장 어리고 약하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초보를 총알받이처럼 앞세우는 조직 문화에서 '초보를 앞세우는 미덕'을 발휘할 수 있을까. 초보를 앞세운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속도에 발맞춰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앞사람이 힘들고 지쳐 보인다면 기꺼이 멈춰주기도 하고, 힘이 달려 더 이상 걷지 못할 때는 뒤에서 등을 밀어주기도 하는 그런 관계가 사회에서도 가능할까. 


그렇다면 나는 그러한 사람이었을까. 작년의 나는 나보다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상대방을 닦달하지는 않았는가. 그 사람의 속도에 맞게 느리게 걷는 미덕을 보여주긴 했었을까. 그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았으며 그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진 않았는가. 부당한 일을 당하는 사람을 보았을 때 같이 목소리를 내주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내가 바라던 선배의 모습은 뚜렷했지만 내가 닮고 싶은 선배의 모습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이 남는다. 


그래서 오늘의 걸음은 나보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속도를 맞춰보려 한다. 항상 먼저 앞장서서 걸어 나갔던 내 조급함을 잠시 누르고 누군가의 등 뒤를 바라보며 천천히 따라가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싶다. 조근조근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나 또한 너와 함께 걸어서 즐겁다고 말해주고픈, 그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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