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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Jul 31.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텨야 하는 이유

절망에서 살아남는 5가지 방법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기까지 장장 5개월이 걸렸다. 나는 이제 겨우 지옥 밖으로 기어 나왔을지도, 아직 지옥에 갇혀 있을지도 모른다. 분명한 건, 내가 괴로움의 밑바닥에서는 벗어났다는 것이다.


이직을 하고 정확히 한 달 후,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디에서 누구와 일하든 내 능력을 스스로 의심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모두가 네가 잘못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그래도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아왔던 나인데, 이런 상황을 처음 겪어보자 당황스러웠다. 상황을 수습해 보려고 애쓸수록 뻘밭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내가 하지 않은 행동과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이 어지럽게 떠돌고 나는 무거운 진흙 속에서 손발을 휘저을 수도 없이 그저 깊게 침몰하고 있었다.


무기력감은 무서운 것이었다. 나는 일상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평소에 좋아하던 것들에 흥미를 잃게 되고 삶이 재미가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술을 찾았다. 어떻게든 내 텐션을 정상으로 올려놓아야 했다. 식사와 함께 반주를 곁들이겠다며 시작한 음주는 폭음으로 이어졌다. 집에서 마시는 혼술이었는데도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출근을 해서도 취기는 가시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 몇 주, 몇 달이 이어졌다. 몸에 이상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지 않아도 말을 할 때 혀가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고 빨리 생각을 해내야 할 때 몸이 반응하지 않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간단한 더하기 빼기 같은 계산조차 하기 어려워졌다.


무기력감에서 절망감으로 이어졌을 때, 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았다. 깨어 있어도 뇌는 잠들어 있었고 몸은 움직이고 있어도 생각은 멈춰 있었다. 맑은 정신으로 사고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졌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매일 울면서 잠들었고 아침에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도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 이대로라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때 나는 심각하게 퇴사를 고민했었다.


나는 나의 일상을 되찾기 위해 악전고투를 다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전쟁을 나 혼자 치르는 동안 더 큰 실패와 절망에 허우적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버티고 나니 지금은 겨우 그 괴로움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아직 지옥 한가운데 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이제 겨우 지옥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나는 그 회사를 다니고 있고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상황을 바꾸기 위해 퇴사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대로 주저앉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나를 바꾸기로 했다.


#1. 나의 루틴을 지켜나가기

내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루틴을 지켜나갔다는 것이다. 무기력감에 빠질수록 나 스스로를 파괴하게 되고 더욱더 불규칙한 상황으로 내몰아 결국 자포자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아침 6시에 일어나 저녁 12시에 잠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녁을 항상 직접 만들어 먹는 것도 꾸준히 했다. 배달을 시켜 먹거나 나가서 사 먹는다면 몸은 조금 더 편했겠지만 나를 소비하는 것으로만 그쳤을지 모른다. 정신이 메말라 있을 때의 소비는 그저 빈 껍데기의 속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몸을 더 지치게 만들었다. 요리를 한다는 것은 냉장고를 확인해 보고 직접 마트에 장을 보러 다니며 재료를 손질하고 칼질과 불질을 거쳐 그릇에 옮겨 담기까지의 수고스러움이 들게 된다. 하지만 그 따뜻한 수고스러움이 나를 지켜낼 수 있었다.


#2. 힘들고 지치게 계속 움직이기

깨어 있는 시간은 오히려 고통스러웠다. 퇴근하고 집에 와도 우울감에 젖어 몸이 계속 아팠다. 차라리 빨리 잠들어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 운동을 시작했다. 운동은 단순하다.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노력하면 그만큼의 성과가 나왔다. 운동을 하는 순간만큼은 나쁜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다. 집중해서 동작을 마무리하고 마지막 스트레칭까지 하면 긴장감에 굳어 있던 목과 어깨도 풀리고 개운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누가 나를 칭찬하지 않더라도 다음날 아련하게 찾아오는 근육통이 어제의 고통스러웠던 나를 격려하는 힘이 되었다.


#3. 익숙하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

어떻게든 나를 기분 좋은 상태로 만들어나가야 했다. 그 첫 시도는 술이었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내 몸을 망치는 것은 결국 상황을 더욱 최악으로 만들었다. 당분간 술은 멀리하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평소 연기를 좋아했던 나는 우울감이 극에 차올랐을 무렵 즉흥극 연기 모임에 나갔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면 되니까 연기는 좋은 치료 수단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당신은 킬러다. 곧 결혼식을 앞두고, 연인의 부모를 죽인 범인이 당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라는 상황 지문을 보자 갑자기 뇌 정지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깨어 있어도 잠든 것 같은, 간단한 수학 계산도 하지 못했던 절망감이 왜 하필 그 순간에 왜 갑자기 찾아온 것일까. 사람들은 다들 내 입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데 3분가량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겨우 더듬더듬 상황을 이어나가서 마무리를 하긴 했지만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또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조금 회복된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지옥에서 걷고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두 번째 도전은 바로 책이었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여유 시간이 나면 책을 먼저 찾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의무적으로 나에게 할당된 책을 겨우 읽어나가는 수준이다. 그런데 그날은 갑자기 책을 읽고 싶어졌다. 마침 정기적으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조기 은퇴, 퇴사' 같은 주제의 책을 읽어나갔다. 퇴사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내린 결론은 '난 퇴사할 수 없다'였다. 퇴사를 하고도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재테크 수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급자족이 가능한 귀농 생활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인간은 그저 남이 주는 월급을 받고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음으로 읽은 것은 '행복'과 관련된 책이었다. 지금의 내가 너무 불행하기에 선택했던 책들이다. 그 책들을 읽고 내린 결론은 '행복은 생존을 위한 수단,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시간은 많은 것을 치료해 준다는 것'이었다. 그 무렵 정말 나는 고통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시간이 많은 부분을 해결해 준 셈이다.


#4. 성공 경험 만들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더라도 마음속은 공허했다. 여전히 나는 회사에서 무능력한 사람이었다. 몇 달이 지나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도 조금씩 마음을 내려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진심으로, 라는 단어를 버렸고 그다음에는 열정적으로, 라는 단어를 버렸다. 그다음에는 잘, 이라는 단어를 또 그다음에는 만족스럽게, 라는 단어를 버렸다. 그렇게 많은 부분을 비워가다 보니 나에게는 적당히, 와 기본만, 이라는 단어만 남았다. 그 단어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 단어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분으로부터 강연을 의뢰받게 된 것이다. 평소라면 커리어의 한 줄을 장식할 좋은 기회로 덥석 받아 물었겠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여러 번의 말 줄임표가 있었고, 일정을 조율하고 자료를 보내고 확정을 받기까지 한 달 정도의 시간 동안 나는 이게 맞는 선택인지 계속 혼란스러웠다. 섣부르게 수락한 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나를 믿고 추천해 준 분에게 누가 될 정도로 강연을 망쳐버리는 건 아닐까. 안 좋은 상상이 계속 이어졌다. 실패하지 않으려면 더 준비하고 연습하면 될 텐데 나는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추락한 나는 또 눈물을 훔치며 강연장을 향했다. 사람들 앞에 섰고 낯선 눈동자가 나를 무수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눈동자를 보며 나도 모르게 힘이 났다. 준비했던 말과 준비하지 않았던 말들을 쏟아내며 사람들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이었고 이럴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나를 둘러싼 주변의 환경이 그걸 잊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잘못된 게 아니라 '환경'이 잘못된 것이었다. 그걸 깨닫고 자신감이 생겼다. 억지로 나를 바꾸지 말고 환경을 바꾸면 된다. 하지만 일단 버티자. 그리고 박수를 받으며 이곳을 탈출할 것이다.


#5.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직장을 버티게 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이 재미있거나 사람이 좋거나 급여가 좋거나 등등. 돌이켜보면 내가 직장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이었던 것은 '그 일이 나에게 만족감을 주느냐'였고, 직장을 나오는 계기는 '사람이 싫어서'였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일도 사람도 재미가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내가 아직 퇴사를 하지 않은 것은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때문이다. 정확히는 나를 믿고 이곳에 추천을 했던 사람과 나를 믿고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 감히 퇴사를 내지르지 못했다. 내가 맡은 업무를 던지고 중간에 나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에 정신이 무뎌지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다. 일단 내가 살고 봐야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지만 나는 명예롭게 이곳을 나오고 싶었다. 중간에 도망쳐 나왔다는, 책임감 없이 나가버렸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많은 것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너무 노력하지 않기로 마음먹을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직장 동료를 만나서였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봐왔기에 나의 상황과 마음을 읽어주는 사람이었고, 힘들 때면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다. 주변 동료들도 나의 예민함을 받아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늦은 시간까지 업무도 하고 같이 회사를 욕하며 재미없는 직장 생활을 이 사람들 덕분에 버텨낼 수 있었다.


책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모임이라 실제로 만나본 적도 본명도 알지 못하는 사이지만 매주 만나며 누구보다 더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고 좋은 일이 생기면 자랑하며 축하를 받기도 한다.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교류한다는 것은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해 준다. 마음이 맞는 사이라면 더 그러하다. 결국 사람은 사람으로서 치유를 받는다.




일 년이 어떤 의미였는지는 마지막을 보고서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처음이 아무리 좋았더라도 마지막이 안 좋았다면 결론은 안 좋았다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 다시 한번, 나는 지옥으로 뛰어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나를 바꿀 수밖에 없다. 상황은 안 바뀔 거다. 바뀌리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살아남아 명예롭게 임무를 완수하고 나올 것이다. 그리고 2023년은 나에게 성공적인 한 해였어! 라며 축배를 들 것이다.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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