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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Aug 16. 2024

살고 싶어서 심리상담을 신청했다

상담 일지① 내 마음이 상태를 알아차리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what does not kill me makes me stronger.
- 프리드리히 니체   


나는 좌우명으로 니체의 말을 종종 인용하곤 했다. 지금까지의 나를 단련시킨 것은 수많은 고통과 시련 덕분이었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강해질 수 있었다고. 인생은 롤러코스터와 같아서 바닥까지 추락하면 그 힘으로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이 믿음 때문에 살면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마주할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이번엔 또 얼마나 큰 문제가 나를 더 단단해지게 만들지 기대하며 오히려 더 즐기기도 했다.  


10대부터 나를 지켜온 이 믿음은 최근 자주 무너져 내렸다. 시작은 작년 이직을 하고 한 달 후부터였다. 매년 다른 직장으로 옮겨야 하는 계약직이기에 직장을 옮긴다는 것이 큰 문제가 아니었다. 처음 한두 달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내가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신경이 곤두서긴 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와 잘 어울려 다니곤 했으니까. 이번에 옮긴 직장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10년 경력이 무색하게 나의 직장 생활은 몹시 처참했다.


직장 상사와도 동료와도 심지어 내가 가장 자신 있었던 일에서조차도 모두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느끼자 내 자존감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 무렵 나는 직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누구도 인정해주지 않고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니 더 큰 소리로 떠들어 보았지만 되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점점 의욕을 잃기 시작했고 그렇게 1년을 버텼다. 버티고 버텨서 견디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다. 마침 다른 직장으로 옮길 기회가 생기자 나는 탈출하듯 새 직장으로 도망쳤다.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


새로 옮긴 직장은 서로에 무관심하던 전 직장과 달리 기꺼이 곁을 내주는 곳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어깨를 두드려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 선배님의 따뜻한 손길에 내 마음이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그래, 내가 틀린 게 아니었어. 그저 환경이 나빴던 것뿐이야. 작년 한 해 동안 내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행복했었다.


다시 문제가 터진 것은 5월부터였다. 직장에서 동료 직원이 피해를 입은 큰 사건이 발생했는데 모두가 쉬쉬하며 어물쩡 넘기려 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해도 유야무야 사건이 종결되어 버리자 나는 심한 충격과 배신감을 느꼈다. 내가 다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선 누구도 믿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인화를 중요시 여긴다던 이곳에서도 동료를 지켜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내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얼마 뒤 또 다른 사건이 발생했고, 내가 보호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기에 나는 나와 내 주변을 보호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제안해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상사의 폭언과 강압적인 업무 지시였다. 스트레스 상황이 연이어 터지자 내 마음은 파업을 선언해 버렸다. 작년의 그때처럼 또다시 직장 모두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흔들리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업무를 보다가도 눈물이 주르륵 나오곤 했다. 나는 분명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다 우연히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마음 치유, 집단 상담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그 글이 왜 내 눈에 뜨였을까.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붙들어 매는 심정으로 신청서를 작성했다. 그렇게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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