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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Aug 16. 2024

상담사에게 눈물과 화를 쏟아낸 날

상담 일지② 나의 감정을 인정하다

집단 상담을 신청하고 나는 한동안 마음이 어지러웠다. 개인 상담이라면 나의 내밀한 문제를 속 시원히 털어놓겠지만 집단 상담이기에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문제와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상의 문제도 한몫을 했다. 직장에서의 갈등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다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감정을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절박감이 더 컸다.


첫 집단 상담일, 모임 장소에 가는 동안 내 마음은 긴장으로 계속 울렁였다.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내 감정이 어떠한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무슨 말을 어디까지 해야 할지 몰라 두려움마저 일었다. 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서자 오두막집 같은 목조 구조에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저마다 긴장한 표정의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혹시라도 그들이 내 얼굴을 기억할까 봐 나는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참여한 집단 상담의 주제는 '명상과 알아차림'이었다. 리더의 안내에 따라 각자 상담을 신청하게 된 이유와 기대하는 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처음부터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 다들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 하찮은 문제들 혹은 명상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정도로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이었다. 처절하게 아픈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닫혀버렸다.


"이한 님은 어떠세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앉아 있던 나에게 리더가 질문을 했다. 서로 각자의 고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을 하는 시간이었지만 내 생각에 빠져 대화의 흐름을 쫓아가지 않고 있었다. 뭐라도 적당히 반응해줘야 할 것 같아서 억지로 대답을 짜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고 그 시선에 더욱 눈물이 나왔다. 나는 어렸을 때도 누가 달래주면 엉엉 더 울어버리는 아이였다. 내가 너무 서럽게 울자 옆 사람은 토닥여주고 앞사람은 내 마음을 대변해 주려는 듯 직장 내 어려움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울면서도 나는 내 울음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그냥 감정의 수도꼭지가 고장 난 기분이었다.


첫 상담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자 더욱 주눅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차분하게 이야기를 잘하던데 나는 그렇게 운 걸까. 게다가 처음 본 사람들 앞에서. 다들 날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겠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두 번째 상담일이 되자 이번에는 절대 감정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들 앞에서 너무 많이 나를 노출하기보다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더 나를 지키는 일이었다. 한 차례 명상을 하고 또 각자 자기 사연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2회 차라 그런지 1회 차보다 사람들이 더 자신의 내밀한 아픔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다들 아픔을 가지고 있구나 싶어 조금은 안심되었는데 누군가가 뾰족한 이야기를 꺼냈다.


"같이 근무하는 계약직 직원이 너무 힘들게 해요."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를 저격하는 말이 아니었는데도 계약직을 대하는 차가운 시선이 나에게도 닿는 기분이었다. 한 사람이 포문을 열자 다른 사람도 맞장구를 치며 자기가 겪었던 힘든 계약직 직원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계약직이었기에 내가 당했던 여러 수모가 떠올랐고 이들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미세하게 열렸던 마음이 굳게 닫혔다.


"이한 님은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내가 전혀 대화에 참여하지 않자 역시나 리더가 또 말을 걸어왔다. 절대 내 이야기를 꺼내놓지 않겠다는 처음의 다짐과 함께 사람들의 편견에 대한 분노와 울분이 섞여 내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저는 오늘 매우 불편했고요, 그래서 더 이야기하지 않고 싶습니다."


나의 단호한 태도에 모두가 놀란 듯했다. 리더는 한 번 더 무엇이 불편했는지 물어보았지만 나는 입을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 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 리더가 다시 한번 내 감정에 대해 물어보자 화가 불쑥 치밀어 올랐다.


"저는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거예요."


마무리 명상을 하면서도 나는 집단의 분위기를 망쳤다는 자책과 억울함, 분노 같은 여러 감정으로 또 눈물을 쏟아냈다. 울면서도 나는 내가 왜 울고 있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화가 나면 화를 내면 되는 것인데 왜 또 울고 있는 것일까. 이 눈물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화를 내버린 마당에 이 프로그램에 계속 참여하는 것은 모두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무례한 태도에 화가 났을 리더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앞으로는 더 참여하기 어렵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리더 또한 내가 집단에서 나가길 은근히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답장이 왔다.


"끝나고도 이한 님 생각을 했어요. 그동안 많이 힘들었던 게 느껴졌어요. 그래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으면 해요. 여기서 그만두면 이 경험이 불편하게 기억되겠지만 나누고 함께하다 보면 좋은 기억이 반드시 있어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그 말이 진심이 아닐 거라 의심하면서도 왜 이리 위로가 되었던 걸까. 나는 이런 불완전한 나를 붙잡아줄 단 한 사람이 필요했던 것 아닐까.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세 번째 상담일이 되던 날, 나는 답장을 보냈다.


"답장을 받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노를 방어기제로 강한 자아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분노보다 아픔이 더 커져서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에 신청한 것도 이제 분노가 아닌 다른 방어기제를 찾아보고 싶어서였던 것 같습니다. 말씀해 주신 것처럼 포기하지 않는다면 원하던 답을 찾을 수 있겠지요. 일단 도전해 보겠습니다. 수업 때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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