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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이한 Aug 16. 2024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상담 일지③ 마음의 경계를 내려놓다

세 번째 상담일이 되고 여전히 마음은 불편했다. 모두의 앞에서 분노를 표출해 버렸는데 다들 나를 빌런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 그때의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망설이던 차에, 리더가 내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오늘 이한 님이 어렵게 자리해 주셨어요. 그동안 마음이 불편했을 텐데 여기에 오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을 거예요. 괜찮다면 이한 님이 지금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자 다시 마음이 요동쳤다. 마음을 다스리며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불안, 분노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난 모임의 분위기를 불편하게 했던 것을 사과드리는데 또 눈물이 주룩 흘러나왔다. 역시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구나 싶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나왔다.


"저는 이한 님이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아주신 것이 반가워요."

"저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말하는 게 편하지 않았는데, 이한 님이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그 용기가 부러웠어요."

"이한 님께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저도 공감이 갔고, 그래서 위로해드리고 싶어요."


그 말이 전부 진심은 아닐 거라 의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집단 상담과 별개로 개인 상담을 받게 되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놓을 때마다 왜 눈물부터 먼저 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해서였다. 집단 상담에서는 나를 온전히 개방하지 못해 내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개인 상담에서는 보다 명확하게 나를 분석해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첫 번째 개인 상담일이 되고, 나는 또 불안한 마음으로 상담실을 찾았다. 자신과 잘 맞는 상담사를 만나는 것이 힘들고, 기계적인 반응에 상처를 받았다는 여러 인터넷 후기들이 머리 속을 맴돌며 부디 나와 잘 맞는 상담가이길 바랐다.


"이한 님은 어떤 일로 찾아오시게 되었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또 눈물 수도꼭지가 고장이 났다. 내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부터 이렇게 눈물이 나오는 게 힘들어서 왔으며 집단 상담에서는 차마 다 꺼내놓지 못했던, 내가 겪었던 직장 스트레스에 대해 쏟아냈다.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40분이 흘러 있었다.


"지금 마음은 어떠세요?"

"일단 털어놓아서 조금은 후련해졌는데 해결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상담을 해서 문제가 해결되진 않아요. 문제는 이미 과거에 발생을 해버린 거거든요. 다만 상담을 통해 내 마음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그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해요."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과연 도움이 될까? 집단 상담에서도 계속 강조하는 것은 '마음 알아차림'이었다. 하지만 문제 상황을 해결해야 마음이 편해지지 내 마음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것일까? 직장에서의 나는 여전히 괴롭지 않은가.




집단 상담에서는 여러 명상 방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호흡'이었다. 공기가 코로 들어가서 폐를 거쳐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상상하며 온전히 나의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것이다. 명상을 하며 떠다니는 잡념에 불안할 필요 없이 그저 잡념을 하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명상으로 돌아오면 되었다. '먹기' 명상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에 쫓겨 입에 욱여넣기만 했던 음식도 코로 냄새를 맡고 이와 혀로 감촉을 느끼고 입 안에 머물렀다가 식도를 타고 위로 내려가 온몸으로 에너지를 주는 과정에 집중했다. '몸 관찰'을 하면서도 신체의 특정 부분이 불편하거나 부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최대한 이완하는 것에 집중했다. '대화'를 할 때에도 어떠한 판단이나 평가를 내리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이고 관찰한 것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훈련을 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이것이 서로를 상처 주지 않는 비폭력 대화법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명상 시간이 5분 정도였지만 나중에는 30분 이상 긴 명상도 했다. 명상을 하며 집중을 잘했던 때도 있지만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떠다닐 때도 있었다. 그런 명상 또한 실패한 게 아니라 그렇게 떠다니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면 되었다. 


집단 상담도 계속 이어졌다. 처음에는 리더의 진행으로 이루어졌지만 나중에는 참가자들끼리 소그룹으로 진행하였다. 이번 주제는 '나의 스트레스 원인과 방어기제'였다. 우리는 저마다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 완벽주의로 인한 강박, 시부모님에게서 받은 핍박, 인간관계의 어려움 등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의 방어 기제도 저마다 달랐다. 누군가를 회피를, 누군가는 투사(어떤 일의 원인을 다른 사람 탓으로 여김)를, 누군가는 퇴행을, 누군가는 유머를 사용했다.


신기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만으로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나한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던 사람이 다음 상담 때에는 "그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이렇게 행동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쉬워요."였다가 "그때는 이런 이유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처럼 지나친 연민이나 분노에 빠지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객관화하고 있었.


집단 상담도 여러 번 진행되자 나 또한 마음이 안정되어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같이 화를 내며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내가 단지 나약하고 예민했던 것이 아니라 내 분노가 정당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지만 조금씩 이 집단에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말 저녁, 회사에서 충격적인 내용의 메일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나는 각성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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