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변리사]의 지식재산 이야기
상표권자도 이제 안전하지 않은 세상 - 지식재산(IP)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
안녕하세요. 손인호 변리사입니다.
2021년 3월 18일 자로 선고된 대법원 판결에 의해 '등록상표의 권리자'이더라도 '자신의 상표'를 사용하는 것이 더 이상 안전하지만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등록받은 자신의 등록상표를 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인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전원합의체 판결(2018다253444)이 어떠한 취지에서 위와 같은 판결을 설시하였는지 간단히 분석하고, 이번 판결로 인해 향후 상표권자의 지위에 미치는 변화들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이번 상표 분쟁은 일반적인 상표권 침해 분쟁과는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었고, 피고가 자신이 권리를 획득한 등록상표를 사용하였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사례에서는 2014년 상표출원을 하여 상표권을 획득한 상표권자(甲)와 2016년 상표출원을 하여 상표권을 획득한 상표권자(乙)가 등장합니다.
1) 상표권자(甲)는 자신의 상표권 'DATA FACTORY'와 유사한 상표를 사용하는 乙의 행위는 상표권 침해임을 주장하였습니다. 상표법은 등록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와 상품을 사용하는 제3자의 행위를 상표 침해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표법 제108조)
2) 하지만, 상표권자(乙)는 자신은 선등록 상표와 무관하게 자신이 획득한 '데이터팩토리' 상표를 사용하는 것으로서, 甲의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상표법은 상표권자는 지정상품에 관하여 그 등록상표를 사용할 권리를 독점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표법 제89조)
상표권자(甲)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영문 'DATA FACTORY'의 한글 음역인 '데이터팩토리'를 사용하는 乙의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타당하게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상표권자(乙)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는 것인데 왜 침해가 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는, 상표권자(乙)의 입장에서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선출원에 기초한 등록상표의 침해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대법원 86도277 판결, 대법원 98다54434 판결 참조)
*기존의 상표법에서는, 특허법에서는 후등록 특허권자의 실시를 침해로 보는 것(특허법 제98조)과는 다소 다르게 취급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기존의 대법원 판례의 입장을 변경하며, 후출원 등록상표를 획득한 상표권자(乙)가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더라도, 선출원 등록상표에 대한 침해를 인정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상표법을 비롯한 산업재산권법 전반에서는 선출원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선출원주의는 둘 이상의 상표출원이 있는 경우에 가장 먼저 출원한 출원인에게 권리를 인정하는 제도입니다.(상표법 제35조)
따라서, 출원일을 기준으로 저촉되는 상표 사이의 우선순위가 결정되게 되므로 2016년에 먼저 출원한 상표권자(甲)의 권리를 우선하여 보호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상표법은 '선특허권 등'과 후출원 등록상표권이 저촉되는 경우에 후출원 상표권자는 선원권리자의 허락(동의)를 받아야 등록상표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상표법 제92조)
기존 대법원 판례는 조문에 규정되지 않은 '상표권'과의 관계에서는 허락을 받지 않아도 등록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지만, 이번 전원합의체 판례에서는 조문에 규정되지 않은 '상표권'에 대해서도 선원권리자의 동의를 받아야만 등록상표를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입장을 변경하였습니다.
따라서, 상표권자(乙)는 자신의 등록상표를 선원권리자(甲)의 동의를 받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에는 특허청의 심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자신의 등록상표를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해 상표권자는 자신의 등록상표가 타인의 등록상표 침해에 해당할지 여부를 사전적으로 검토하고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기존에는 후출원 등록상표의 상표권자는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상표권 침해를 회피할 수 있었습니다.
선출원 등록상표의 상표권자 입장에서는 타인의 유사상표 사용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상표권 무효심판이나 취소심판을 통해 후등록 권리를 소멸시키고 나서야 침해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선출원 등록상표의 권리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타인의 유사상표의 사용을 저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후등록 권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등록상표의 사용'이라는 방패를 뺏긴 것이므로, 선등록 권리자가 상표침해 공성전에서 더욱 우위를 점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판결 이후에는 후출원 등록상표의 상표권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상표권 침해를 면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지식재산(IP) 리스크 관리가 세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 상표권 침해를 발견하게 된 경우에는 더욱 손해배상액이 커지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상표 분쟁 과정에서 상표권자가 손해배상액을 늘리기 위하여 사업이 궤도에 오를 때까지 수년간 지켜본 후 비로소 공격에 나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와 같은 분쟁을 사전적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상표권자는 상표출원 단계와 상표가 등록된 이후 단계에서도 선행상표가 존재하는지, 어느 정도 유사한지, 향후 분쟁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등 선행상표 조사를 통해 면밀하게 IP 리스크를 검토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만약 상표 분쟁 상황이 발생한다면, 선원권리자의 협상을 통한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수 있는 방안을 우선적으로 검토하여야 합니다.
만약, 선원권리자가 과도한 금액을 요구하거나, 당사자간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경우에는 최후의 수단으로 상표 무효심판과 취소심판을 통해 상표권을 소멸시켜 최종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여야 합니다.
이번 전원합의체 판결은 상표권자의 지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판결로써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등록상표를 사용하는 도중 타인의 등록상표의 침해임을 발견하는 경우에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상표권자는 보다 안전하게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 지식재산(IP) 리스크를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출원주의에서는 빠른 출원일을 확보하는 것만이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방안이므로, 스타트업을 비롯한 창업 단계에서도 상표를 미리 확보하며 안전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