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변리사]의 지식재산 이야기
안녕하세요. 손인호 변리사입니다.
오늘은 K-뷰티의 원조 '쿠션팩트'와 관련한 특허분쟁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아모레퍼시픽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쿠션’은 2008년 출시 이후 전세계에 누적 판매량 1억개를 넘길 정도로 널리 알려진 화장품입니다.
명품 화장품 브랜드 랑콤은 아모레퍼시픽이 새롭게 개발한 쿠션팩트를 '파운데이션의 혁명'이라고 칭할 만큼, 당시에는 혁신적이고 새로운 제품으로 현재까지도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쿠션'은 막대한 판매량으로 얻는 수익 이외에도, 수많은 화장품 제조사로부터 로열티를 얻는 방식으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였습니다.
하지만, K-뷰티 열풍의 선두주자였던 위 화장품을 사이에 두고 지난 2013년부터 2019년까지 6년간 길고 긴 특허분쟁이 있었으며, 첨예한 공방 끝에 ‘쿠션팩트’의 특허는 살아남게 되었지만 상처뿐인 승리로 평가되는 길고 긴 분쟁이었습니다.
K-뷰티의 원조인 아모레퍼시픽 ‘쿠션’의 개발과정과 특허소송과정을 전반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쿠션팩트의 등장 이전 기존의 제품들은 '고체형 파운데이션'과 '액체형 파운데이션' 두가지 유형으로만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고체형 파운데이션'은 휴대성은 좋지만 얼굴에 바를 때 뭉치기 쉽고 수정 화장 효과가 별로 없다는 문제가 있었고, '액체형 파운데이션'은 화장 효과는 좋지만 액체 제형의 특성상 사용이 불편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쿠션’은 각 제품의 단점들을 한번에 해결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것입니다. 선크림과 파운데이션 등을 특수 재질의 스펀지(퍼프)로 흡수해 한 번에 도장처럼 찍어 바르는 제품으로, 스펀지와 액체 제형의 결합을 통해 ‘흐르지 않는 액체’라는 개념의 제품을 개발한 것입니다.
손에 묻거나 뭉치지도 않는 ‘쿠션’은 편리함을 무기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BB크림이 파운데이션과 선크림을 단순히 섞은 것에 반해, ‘쿠션’은 한단계 나아가 기술의 융합을 이끌어낸 제품으로 평가될 정도로 K-뷰티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쿠션'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a) 일정 수준의 점도를 지낸 내용물(선크림, 파운데이션 등)을 제조하는 기술과 b) 내용물을 안정적으로 머금을 수 있는 재질의 스펀지 등 화장품 용기에 대한 기술이 동시에 개발되어야 하므로, 상당히 고심을 한 결과 탄생한 제품인 것입니다.
쿠션팩트의 개발을 주도하신 최경호 아모레퍼시픽 연구원님의 인터뷰를 통해 제품의 연구, 개발과정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출처: 1초에 1개씩 팔린 기적의 ‘쿠션’ 개발,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6/2017012601408.html)
아모레퍼시픽 '쿠션'의 성공에 힘입어 국내 쿠션팩트 시장은 2008년 ‘쿠션’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국내·외 주요 화장품 업체들은 미투 전략의 일종으로 다양한 쿠션 관련 제품들을 출시하며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투 전략: 시장에서 성공한 제품의 이름, 디자인 등을 모방하여 소비자들을 유인하는 마케팅전략)
이에 아모레퍼시픽은 후발주자들이 유사한 형태의 쿠션을 제작해 판매하자 ‘쿠션’의 특허권을 기초로 경쟁사의 '쿠션' 관련 제품의 제조를 중지요청하는 등 법적 분쟁을 펼쳐왔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아모레퍼시픽은 2015년 이후부터는 로열티를 지불을 원하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인 LVMH, 디올, 국내 ODM 업체인 한국콜마, 코스메카코라아 등에게 통상실시권을 허락하여 ‘쿠션’ 제조를 허락하였습니다.
‘통상실시권’이란 특허권자가 로열티를 지급받고 타인에게도 해당 특허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하는 특허법상 제도를 말합니다. (특허법 제102조 참조)
통상실시권 허락 이후에도 로열티 지급에 불만이 있는 다른 기업들은 아모레퍼시픽이 가진 특허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후 6년간의 법적 분쟁이 진행된 것입니다.
아모레퍼시픽과 코스맥스 간 쿠션팩트 특허소송은 2015년 10월 코스맥스와 국내 화장품업체들이 아모레퍼시픽을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특허무효 심판을 청구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아모레퍼시픽은 이에 대응하여 2016년 5월 서울중앙지법에 코스맥스를 상대로 특허권 침해금지 소송을 제기하며 치열한 법적 공방을 이어나갔습니다. (아래는 코스맥스 등이 제기한 특허무효 심판의 결과 위주로 서술되었습니다.)
특허심판원(사실상 1심)은 아모레퍼시픽의 쿠션 특허를 유효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하지만 특허법원(사실상 2심)에서는 “특허발명(쿠션)과 선행발명(기존기술)을 비교하면 통상의 기술자(업계의 일반적인 기술자)가 구성인 에테르 폼을 쉽게 선택할 수 있다”라는 이유를 들어 아모레퍼시픽의 특허를 무효로 보았습니다.
요약하면 재판부는 “아모레퍼시픽의 특허는 ‘진보성(기존 기술로부터 쉽게 발명할 수 없는 독창성)’이 없다”는 판결을 한 것입니다. (특허법 제29조제2항 참조)
‘쿠션’과 비슷한 기술이 오래전부터 존재하였고 기술적 가치도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코스맥스 측은 관련 연구기관의 다양한 실험결과를 제출하고, 화학분야 특허 전문가들을 동원해 법원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법원(사실상 3심)에서 최종적으로 특허법원의 손을 들어주며 길고긴 ‘쿠션’ 분쟁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이후 아모레퍼시픽은 정정심판을 통해 특허권이 무효가 되는 것을 막아냈지만, 권리범위에서 상당한 양보를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참고: 특허권의 권리범위는 청구항의 표현에 따라 결정되므로, 청구항의 표현이 구체화될수록 그 권리범위는 좁아지게 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세계인의 화장 문화를 바꾼 ‘쿠션혁명’의 제1막은 아모레퍼시픽에게 큰 상처를 남긴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확실한 기술적 우위를 가진 경우에만 특허권을 인정한다는 교훈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결은 ‘쿠션’의 제조 기술에 대해 특정 기업의 독점을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번 소송의 결과로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들은 로열티 지급없이 다양한 쿠션 제품을 생산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쿠션 원조’를 자처해온 아모레퍼시픽은 후발주자들의 국내 쿠션 제조를 반대할 명분을 잃게 된 것입니다. 이후 로열티와 관련한 분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별개로,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한국이 쿠션 종주국 역할을 뺏길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시선과 공정한 경쟁 구도가 형성되어 쿠션 시장이 커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선으로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진화하는 ‘쿠션’시장과 함께 한국 화장품 분야의 미래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더욱 더 차별화된 기술력을 보유하고, 강력한 IP를 확보한 기업만이 치열한 특허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