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인호 변리사]의 지식재산 이야기
비즈니스 IP 전략 - 상대방의 상표권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
안녕하세요. 손인호 변리사입니다.
오늘은 삼성전자의 갤럭시(Galaxy) 상표권 인수 소식과 함께, 상표권 분쟁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참고 기사: 삼성 '갤럭시' 상표권 분쟁 종결, https://www.ebn.co.kr/news/view/1020308)
상표법에서 '상표(Trademark)'는 '상품(Goods)'과 함께 있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주력 모델인 "갤럭시(Galaxy)"는 스마트폰,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상품들에서 고객들은 갤럭시(Galaxy)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만약, "갤럭시(Galaxy)"를 신발이나 가방 등의 다른 제품에 사용한다고 하면 수요자들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즉, 동일한 '상표(Trademark)'이더라도 '상품(Goods)'의 종류에 따라 수요자가 인식하는 인지도가 달라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의 '상표(Trademark)'에 대해서 모든 '상품'에 대해 권리를 가지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상표법은 동일한 상표이더라도 상품(Goods)마다 서로 다른 권리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삼성전자의 갤럭시(Galaxy) 상표권 분쟁도 이러한 '상품(Goods)'에 주목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갤럭시 시계'는 오리엔트 그룹에서 1984년부터 판매를 시작하여 한 때 예물시계로도 큰 인기를 얻었던 대표 제품입니다.
또한, 오리엔트 그룹(현 오리엔트바이오)는'시계, 보석시계, 전자시계' 등의 상품에 대해 '갤럭시' 상표에 대한 상표권을 보유한 권리자였습니다.
삼성전자가 제풀 출시 초창기 '갤럭시 워치'라는 명칭을 쓰지 않고, 2013년 '삼성 기어'라는 명칭으로 제품을 출시한 것은 오리엔트 그룹의 상표권 침해를 의식하여 의도적으로 별개의 브랜드로 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던 중 삼성전자는 2018년 '갤럭시 워치' 제품을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시작하였고, 오리엔트 그룹은 삼성전자가 자신의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서울지방법원에 판매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하며 상표권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과 같이, 삼성전자의 '갤럭시(Galaxy)'에 대한 브랜드 이미지는 '스마트폰'에 대한 제품에 대해 형성된 것입니다.
스마트폰에 대해 소비자의 인기를 얻었더라도, 1980년대부터 자신의 시계 브랜드로 널리 사용하고 있던 오리엔트 그룹은 '갤럭시'에 대한 상표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당한 권리(상표권)을 가진 오리엔트 그룹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시계' 제품에 대해 '갤럭시 워치'가 자신의 상표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한 것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고, 업계에서는 오리엔트 그룹의 승소가능성을 높게 점쳐왔습니다.
아시아 최대 IP 전문가 그룹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는 대응책을 모색한 것으로 보입니다.
상표법은 일정한 기간 동안 상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에는 상표권을 취소하는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상표법 제119조제1항제3호 참조)
삼성전자가 주장한 내용을 살펴보면, 오리엔트 그룹이 판매하는 시계는 '아날로그 시계'에 대한 것이므로, '전자 시계'에 대한 권리는 인정할 수 없고, 이에 대한 상표권은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오리엔트 그룹의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함과 동시에, 상표권 자체가 취소되어야 한다는 공격을 동시에 시작하였습니다.
특허심판원은 "상표등록 제1116364호의 지정상품 중 ‘GPS기능이 있는 전자시계, 동영상 재생 기능이 있는 전자시계(시계가 주된 기능임), 메모 기능이 있는 전자시계(시계가 주된 기능 임), 운동량 측정 기능이 있는 전자시계(시계가 주된 기능임), 음성녹음 기능이 있는 전 자시계(시계가 주된 기능임), 음악재생 기능이 있는 전자시계(시계가 주된 기능임), 이메 일 송수신이 가능한 전자시계(시계가 주된 기능임), 전화통화 기능이 있는 전자시계(시계가 주된 기능임)’의 등록을 취소한다."라는 심결을 통해 삼성전자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삼성전자의 일격으로 '전자 시계'에 대한 상표권을 잃기 직전까지 간 오리엔트 그룹은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삼성전자가 방심한 사이 오리엔트 그룹은 '갤럭시 워치'에 대해 새로운 상표권을 출원하였습니다. 자신의 상표권을 방어하는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상표를 출원하여 삼성전자를 압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2019년 특허청은 오리엔트 그룹의 '갤럭시 워치'에 대해 등록을 위한 사전 절차인 '출원공고'를 통해, 등록을 예고하였습니다.
삼성전자는 오리엔트 그룹의 반격을 저지하고자 '이의신청'을 통해 새로운 상표권 등록을 저지하고자 하였습니다.(상표권 제60조 참조)
수년간 삼성전자와 오리엔트 그룹의 공방이 이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삼성전자에게 승기가 기울고 있지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지속되었습니다.
법적 분쟁을 지속하던 중 2019년 8월 오리엔트바이오의 '갤럭시 워치' 상표가 삼성전자로 출원인이 변경되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법원의 최종적인 판단을 기다리지 않고 오리엔트바이오의 '갤럭시 워치' 상표를 모두 인수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외에도, 오리엔트바이오가 보유하고 있던 '갤럭시' 관련 상표를 전부 삼성전자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승소 가능성과 무관하게, 경쟁자의 상표권을 모두 인수함으로써 가장 안전한 마무리를 지은 것으로 평가됩니다.
분쟁 당사자가 최후의 순간에 악수를 하는 것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일입니다.
분쟁을 조금 더 지속하여 법원의 판결을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양 당사자는 분쟁으로 인한 손해를 최소화하고 빠른 합의를 통해 각자의 사업을 원활하게 유지하는 것을 선택하였습니다.
오리엔트 그룹이 1980년대 시계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었지만, 최근 주력 사업을 바이오 부문으로 전환한 것도 이러한 합의 배경으로 추론됩니다.
한쪽의 완벽한 승리로 끝나거나 리스백(Lease-back) 조건 등으로 당사자가 협력하여 상표를 획득하는 방안도 있지만, 삼성전자가 오리엔탈바이오의 모든 '갤럭시' 상표를 인수한 것과 같이 적절한 조건으로 상호간의 이해관계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습니다.
상표권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승리를 도모함과 동시에, 적절한 출구전략을 수립하여 분쟁을 해결한 삼성전자의 상표권 인수 Behind Story는 IP 전략 관점에서도 의미있는 사례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