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로 서로 다른 권리를 인정하는 '속지주의의 원칙'
초연결 사회에 '국가'라는 장벽이 가지는 의미 - 속지주의의 원칙
"거기도 그럽니까?"
TV 드라마 시그널의 명대사이자,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상황을 드라마적으로 잘 그려내는 말이다.
무전기 너머의 미래의 세상과 현재의 세상은 시간의 장벽이 가로막고 있지만, 무전기라는 상징적 매개체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건을 풀어나간다.
그리고, 동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다양한 국가와 지역에서 살고 있다.
산과 바다로 떨어진 각 국가들에 살고 있는 우리는 위치라는 특수성에 기인하여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지만, 초연결 사회에서는 이러한 공간적인 제약을 뛰어넘기 시작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가장 잘 설명하는 '초연결 사회'라는 단어를 지식재산 제도에 대입한다면, 앞으로 그 미래의 변화는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초연결사회(hyper-connected Society)에서 네트워크 시스템의 발달로 전 세계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 연결된다.
클라우드 시스템이 발달하고, 디지털 노마드가 증가하고 있는 사회의 변화는 온라인 공간이 업무와 생활의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는 시그널이자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변화의 시그널이다.
현대 사회에서 공간의 의미는 자신이 속해 있는 국가나 지역에 더 이상 국한되지 않는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s)은 이제 인간과 인간의 연결을 넘어서서 사물과 인간을 연결하고 있으며, 메타버스(Metaverse)의 등장은 인류의 활동영역을 가상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렇게 사회는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는 다양한 시도와 변화 중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속담이 있다.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적용받고, 대한민국에 가면 대한민국 법을 적용받게 된다. '속지주의'는 어떤 법을 적용할 때 그 법이 적용되는 범위를 정해놓은 것이다.
지식재산 제도에서도 '속지주의'에 따라 국가별로 독립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특허 독립의 원칙, 상표 독립의 원칙 등으로 불리고 있다.
A라는 국가에서 가장 먼저 발명을 한 사람에게 권리를 인정하지만, B라는 국가에서는 선착순으로 가장 먼저 서류를 제출한 사람에게 권리를 인정한다.
C라는 국가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하여 의료행위에 대해서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D라는 국가에서는 의료기술의 발전을 위해 권리를 인정할 수 있다.
E라는 국가에서는 타인의 기술을 모방한 경우 실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만 배상액을 인정하고 있지만, F라는 국가에서는 징벌적으로 손해액의 100배에 달하는 배상액을 인정할 수 있다.
각 국가들의 사회문화적 차이점에 기반하여 법 규정과 제도도 서로 다르게 발전되어 왔다.
지식재산 제도는 법제와 실정을 달리하는 각 국가들의 제도를 존중하여 국가별로 독립적인 권리를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80년대 중반 전 세계 각국은 특허제도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행정적, 경제적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조약 체결을 시도하였지만, 주요국의 이견으로 합의가 결렬된 적이 있다.
각국의 지식재산 제도를 통일하기에는 각국의 입장과 이해관계는 너무나 달랐던 것이다. 지식재산 제도가 통일됨으로써 초연결 시대의 마중물이 될 수 있었던 기회이지만 무산되어 아쉬운 측면이 있다.
최근에는 미국을 선두주자로 코로나 19 백신 지식재산권 유예가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mRNA 백신 제조기술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 기업들의 강한 반대에 논의는 정체 중인 상태이다.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들의 빠른 변화와 달리 초연결 국가로 재편성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신 각국은 자국법의 해석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며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부분이다.
해외직구를 통한 병행수입 제품에 대해 상표권 침해를 부정하거나(대법원 99다42322), 제품의 생산을 대부분 국내에서 한 경우 국내 특허권 침해를 인정한 것(대법원 2019다222782)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초연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국경을 초월한 사회의 변화 속에 있다.
나라마다 다른 법제는 공간의 차이가 만들어낸 그 나라 고유의 문화로 존중될 필요가 있다. 각국의 법과 제도를 통일하기보다 탄력적인 법해석으로 사회 변화를 한걸음 뒤에서 따라가는 것도 변화의 한 모습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