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장인의 베이커리 오픈 여정
세상에 닳고 싶지 않은데도 자꾸만 닳아지는 나.
조금은 더 이 세상을 향해 수줍음을 지니고 싶은데도 더욱더 두터워지는 나.
- by 양귀자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 중
베이커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혼자 핸들링한 업체가 30개가 넘었다. 업체가 30개라는 말은, 관련된 사람은 2배인 60명은 족히 넘는다. 대표가 혼자 투입되어 직접 진행하는 경우도 있고, 대개 대표를 포함한 실무자들이 2명에서 많게는 5명 넘게 투입되니.
다양한 업체들과 함께하게 협력하는 게 프로젝트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정말 피곤하기도 하다. 표면적으로는 회사 대 회사로 계약을 맺지만, 실질적인 일은 그곳에 속한 '사람'간 협업해야 한다.
따라서, 프로젝트 착수할 시 제일 중요한 것은 함께할 '사람'을 신중하게 만나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협업하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믿었다. 소속된 회사에 먹칠하는 행동은 하지 않겠지. '계약서‘라는 안전장치도 걸어놨고,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도의는 지키겠지.
40~50대, 혹은 나의 부모님 또래의 대표님과 직접 컨택하고 일할 때도 많았다. 회사의 대표 위치에 오른 어른으로서 멋있다고 생각했고 협업하며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짝사랑 같은 일방적인 기대였나 보다.
서로 헐뜯고 핑계 대고 남탓하며 이간질하고. 본인 유리한대로 말 바꾸고 비겁한 행동들이 난무했다. 돌아오는 건 실망과 뒷수습해야 하는 나였다. 어떻게든 프로젝트를 끌어가야 하니, 어르고 달래고 설득시키고 설명하고. 돈을 지급하는 ‘갑’사임에도, 왜 프로젝트 퀄리티에 나만 절절매고 있는지 실소가 나기도 했다.
겉으로 성공해 보이는 어른들의 실체는 이렇게 무임승차하여 대기업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타이틀만 얻으면 되거나, 돈만 받으면 끝인 사람들인가 싶기도 하고.
그래도 교훈을 얻었다. 이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과 함께, 사전에 대비하는 방법을 배웠다.
장 지오노의 단편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한 노인은 황무지에서 나무를 하나 둘씩 심고 훗날 멋있는 숲과 마을을 만든다. 노인은 매일 저녁 나무의 씨앗이 되는 도토리를 고르는 작업을 한다. 한 알 한 알 아주 섬세하고 신중하게 건강한 도토리 100알을 선정한다. 이처럼 프로젝트의 결과물인 숲을 만들기 위해서는 심어질 사람을 신중하게 보아야 한다.
그 방법은 크게 3가지이다.
(1) 프로젝트에 실제 투입되는 '사람'을 명확히 한다.
계약하는 회사의 규모나 명성만 믿지 않고, 가능하면 투입될 인원의 프로필을 받고 실제로 만나서 얘기도 나눠야 한다. 해당 인원들이 어느 기간 동안 어떤 책임과 역할을 나누어할지 확실하게 확인한다. IT프로젝트에서 자주 사용하는 맨먼스(MM)와 같이 정량적인 공수와, 해당 인원이 도중에 바뀌지 않도록 사전 합의한다. 불성실하거나 부적합할 경우 대체할 수 있는 방안도 정해둔다.
(2) 화려한 언변과 뻔지르르한 말을 믿는 것이 아닌, 정확한 '사실'을 파악한다.
해당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업체의 의사결정자를 포함해 투입되는 인원의 전공, 업력, 자격 등으로 전문성을 확인한다.
제일 중요한 건 지금까지 진행한 프로젝트의 실제 사례를 파고들어 봐야 한다. 실물이나 현장을 직접 보고 경험할 수 있다면 가장 좋고. 아무리 우수한 인재들이 진행한 프로젝트라도, 모든 프로젝트들이 성공할 수는 없기에, 성공여부는 심을 사람을 선택하는 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다만, 성공했다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핵심 포인트(흔히 말하는 비법)를 명료하게 알고 활용할 수 있는지, 실패했다면 실패했던 원인을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개선사항들을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3) 상호 간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야 한다.
고급스럽게 커뮤니케이션이라고들 하지만 '말귀' 또는 '케미'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나 싶다.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유형은 크게 2가지로 본다. 첫 번째는 정말 이해력이 부족해서 동문서답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가스라이팅하는 것이다. 본인 편하고 유리한대로 말의 해석을 달리하거나 말을 바꾸어 애매하게 행동하는 유형이다.
둘 다 피곤하다. 정말로. (보통 프로젝트에 두 유형의 사람들이 혼재해 있다.)
따라서, 사전에 일부 자료들을 요청해 보고 결과물에 요구사항들이 명료하게 들어있는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지 보아야 한다. (프로젝트의 발주자인 경우, 보통 RFP 등 입찰 제안서를 요청하고 제안 미팅 시 파악해 볼 수 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 물리적으로 가진 24시간과 체력의 한계를 넘을 수 없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람'은 너무 중요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은 굉장히 크다. 소속된 집단이나 프로젝트에 한 사람만 새로 들어와도 분위기나 기류가 묘하게 바뀌는 것을 경험해 본 적 있을 것이다.
안좋은 사례만 담았지만, 물론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 위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을 만났는데, 마음도 잘 맞고 업무적 성향과 취향까지 Fit한 것은 정말 '복'이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고, 모든 사람을 열린 마음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런데 호되게 몇 번 당하다 보면, 양귀자의 소설처럼 세상에 닳고 싶지 않은데 계속 닳는 나를 발견한다. 의심하게 되고 계산하게 되고.
사회는 펜과 노트북을 든 전쟁터이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정글이다. 겉이 번지르르해 보일수록, 이유 없이 잘해주거나 과하다 싶을 정도로 호의를 베풀 경우, 방심하지 않고 정신 차려야 한다. 첫 단추부터 잘 꿰어야 몸과 마음이 고생을 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