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터 광고는 아닙니다.
커피 맛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원두! 원두는 정말 중요하다. 원두의 신선도도 크게 작용하지만, 로스터가 의도를 가지고 맛있게 볶은 좋은 품질의 원두는 시간이 조금 지나도 팡팡 터지던 향과 맛만 조금 줄어들 뿐. 맛있었던 커피가 갑자기 급변해서 쓴 맛이 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적절한 장비가 필요하다. 균일하게 분쇄하고 적게 열이 발생되어, 신선하고 늘 같은 맛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그라인더. 어쩌면 좋은 그라인더가 하이엔드 머신보다도 맛에 있어서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머신도 추출을 계속 반복하거나, 추출과 스팀을 동시에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균일한 압력을 유지하여 일관된 맛을 낼 수 있도록 하는지가 중요하다. 하이엔드 머신은 연속추출에 흔들림이 없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나 매장의 상황에 맞추어 어느 선에서 선택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바리스타의 능숙함이라던가, 추출, 그리고 물이나 우유와 에스프레소의 비율, 완성된 커피 음료를 담는 잔, 청결도, 날씨, 카페 음악, 내 기분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내가 지금 마시는 커피 한잔에는 커피가 자라던 환경, 농부가 수확하고 어떤 방식으로 처리를 했는지 유통과정, 로스터와 바리스타 생각까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대부분 좋은 품질의 원두를 사용한다. 그리고 바리스타들도 많은 연구와 연습을 하고, 대부분 좋은 그라인더와 머신을 갖춘다. 그런데도 그 미묘한 차이. 맛에 있어서 다름이 느껴지는 곳들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물’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물이 깨끗한 편이다. 정수된 물이 매장으로 들어오지만 배관 상태나 그 지역의 여러 조건,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용하는 필터에 따라 물의 맛이 달라진다. 에스프레소든 브루잉이든 건조되어 있는 원두의 맛을 이끌어 내는 데에 물이 큰 역할을 한다. 물을 마셨을 때에는 미세한 차이를 느끼지 못하지만 물에 들어있는 칼슘, 마그네슘, 나트륨, 칼륨 등 미네랄의 정도에 따라 추출된 커피의 맛이 달라진다.
[아래는 대충 흘려봐도 좋은 부분]
미네랄이 풍부하면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지만,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의 농도 – 경도(Hardness)가 높은 물은 맛을 둔탁하게 만들고, 경도가 낮다면 날카로운 맛이 나거나 바디감이 부족하고 향이 적어질 수 있다. 물에 포함된 미네랄은 추출을 이끌어 내는 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총경도가 CaCO3 50~175ppm 정도라면 산미, 단맛, 바디감이 균형 있게 표현된다.
그리고 산을 중화할 수 있는 물의 능력을 의미하는 물의 알칼리도(Alkalinity)는 CaCO3 40~75ppm이어야 한다. 알칼리도가 낮다면 산미가 날카롭고 거칠게 느껴지고, 또 반대로 알칼리도가 너무 높다면 맛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산도(pH)는 6.5~8이어야 좋다. 산성의 물이면 지나치게 신맛이 커피에서 느껴지고, 염기성이라면 밋밋하게 된다.
이러한 기준에 대해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부여잡고 TDS 측정 기기와 스포이드를 쓰며 과학자처럼 어렵게 배웠다. 그리고 수업 때는 여러 생수를 활용해 커피를 내려보았는데 예상보다 물따라 커피 맛이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기준에서 가장 좋아 보이고 깨끗한 맛을 선보이는 브리타 필터를 선택했다. 머신과 온수기에는 나트륨 필터를 설치해 단맛을 부각했고, 제빙기에는 카본필터를 설치해 얼음이 더욱 깨끗하고 쨍한 맛이 나도록 의도했다. 그리고 브루잉존에는 수소이온 필터를 두어 약배전 위주로 할 브루잉 맛을 더욱 화사하게 하기로 했다. 수소이온필터에는 바이패스 (가변압 0~70%) 가능한 헤드를 설치해 어느 정도의 맛으로 표현할지 설정 가능하게 했다.
필터 교체 주기가 되면 물에서 염소 맛이 난다고 해야 하나 물 맛도 달라지고, 커피 추출도 달라지기 때문에 바리스타들은 금새 눈치챌 수 있다. 우리는 이 교체 주기가 돌아오기 전에 필터를 교체했다. 사실 부담이 되었다. 세 종류의 필터를 6개월 정도마다 교체하는 비용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물의 중요성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손님들께 클린 한 커피를 선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우리 다음으로 카페를 하는 분들은 여러 이유로 다른 필터로 교체했지만, 우리의 커피가 맛있었다는 이야기를 듣던 것은 다 이 필터, 결국 물 때문이 아니었을까 항상 생각한다. 맛이 기대되는 카페에 가면 맑은 물을 한잔 먼저 마신다. 입을 헹구어 내는 것도 있지만 물의 맛과 질감을 살짝 먼저 맛보며 기대를 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