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의 정도

by 손자몽

한 직장만 십여 년 다닌 후 퇴사했다. 주로 교육과정을 기획하고 운영했었는데 MBA나 단기 프로그램 보다도 최고경영자 과정을 오랜 기간 담당했다. 처음에는 정말 어색하고 이상했다. 아무리 어느 유명한 회사의 회장님, 무슨 부처의 장관님이라고 해도 이렇게 명찰을 하나하나 준비하고 관계에 따라 좌석을 배정하며, 특이점을 체크해 놓아야 하는가! 행사가 시작하면 한 줄로 서서 인사하고 미리 챙겨 놓은 명찰을 건네어 드린 후 좌석까지 안내를 했다. 행사나 강의 중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지 모든 부분을 주의 깊게 살폈고, 마무리까지 완벽할 수 있도록 긴장감을 놓지 않았다. 직원들끼리는 우스개 소리로 자신의 결혼식장에서도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행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웃었다.


이 경험이 카페 운영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수줍음 많은 성격이었지만, 큰 행사를 자주 치르던 때를 생각하면 카페에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필요한 것에 대해 찬찬히 이야기 나눈 후 잊지 않고 제공해 드리는 것. 그리고 무엇인가 잘못되었을 때에는 충분히 마음으로 위로와 사과를 건네고, 만족할 수 있도록 다시 드리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모든 사장님들이 하고 있는 서비스의 기본일 수도 있지만.


음료가 나오면 아주 주문이 밀려 있지 않는 이상에는 직접 자리까지 가져다 드렸다. 그것이 우리 카페를 방문한 분들께 해드릴 수 있는 최상의 예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동벨도 갖추지 않았다.


엄마가 따뜻한 라떼를 주문했다면 라떼를 만들고 남은 스팀우유를 에스프레소 잔에 담아 아이에게 살며시 건넨다. 그럼 엄마와 아이는 잠시나마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된다.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 웃으며 사진도 찍고. 외국에서는 베이비치노라고 해서 판매하기도 하지만, 어차피 남아 버리는 우유이니 드려도 좋겠다 생각했다.


특히나 어린 아이와 함께 오는 엄마, 아빠는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카페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칭얼거리고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그러면 엄마, 아빠는 한명씩 돌아가면서 아이와 산책을 하고 오고 내 차례에서야 식은 커피를 한모금 마실 수 있게 된다. 아이가 귀여워서 이기도 하지만, 이런 젊은 부모를 볼 때마다 나의 옛적이 생각났다. 그래서 샌드위치 재료로 쓰는 빵을 조그맣게 조각내어 주기도 했다. 그러면 아기들은 냠냠냠, 또 잠깐의 휴식을 엄마아빠에게 선사한다. 많은 아기들에게 주어 본 바로는 식빵도 좋아하지만, 의외로 깜빠뉴의 부드러운 속 부분을 더 좋아했다!


쿠폰 사용에 있어서도 조금 관대했던 것 같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임을 우리 카페에서 가지시는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은 인원 수에 맞게 다 모은 쿠폰을 한번에 쓰기를 원하였다. 나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고, 드래곤볼처럼 모으는 재미에 자리가 없을 때에도 조금 기다렸다 오시기도 했다. 쿠폰을 모은다는 것 자체가 귀찮고 어려운 일인데 다섯 분이라면 모두 힘을 합쳐 총 50잔을 마셔야 하는 것. 지금에 쓰나 나중에 쓰나 그것이 그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실제로 엄청난 단골이 아닌가!


또 어떤 때에는 할머니 세 분이 오시기도 한다. 한 분은 배부르다며 한사코 주문을 거절하신다. 그럼 두 잔을 주문하신 후 빈 잔 하나를 더 달라고 하신다. 나누어 드시려는 것이다. 1인 1메뉴 주문이라는 것을 나는 전면적으로 내세워 운영하지는 않았다. 카페에서는 음료를 주문하면서 그 공간을 잠시 즐기는 것이라 요즘에는 어쩌면 기본이라고도 생각하지만, 너무나 할머니 분들이셨다. 그 주문을 받을 때에는 한가롭기도 했고 그래서 두 잔을 주문하셨지만 세 잔으로 나누어 드렸다. 커피를 드리면서 말씀드렸다. “저 말고 다른 직원들에게 요청하면 해드리기는 어려워요. 맛있게 드세요!”


가장 오랜 기간 함께했던 직원이 말했다.

“사장님, 여기에는 안되는게 너무 없어요!”


친절을 넘어 호구의 영역까지 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이 곳에 찾아 주시는 것만으로도 늘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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