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위 성마른 로망이라니
동네 모퉁이 어딘가 숨어있는 작고 유니크한 가게에 단골손님이 되고 싶었다. 계절 따라 메뉴가 달라지는 분식집, 인스타그램에 올려 자랑할 만큼 인테리어가 특별하진 않지만 새벽마다 직접 로스팅해서 고소한 라테를 파는 카페, 인근에서 받아온 돼지고기로 생햄을 만들어 직접 구운 빵에 끼워 샌드위치를 만드는 가게. 녹차맛 케이크가 일품인 카페까지.. 우리 동네 주변에도 자주 발도장을 찍는 작은 동네 가게가 몇 있다.
동네에선 유명하고, 어떤 곳은 주말이면 갈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유명해진 곳 도 있다.
그중 샌드위치 가게는 철 따라 재료를 바꿔 좋아하는 수프가 나오는 계절이면 달에 서너 번씩은 들르는 곳이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양파수프가 나온다길래 오픈 시간에 맞춰 열심히 자전거를 달려갔다. 쌀쌀한 날씨에 콧물이 훌쩍 나왔지만 고소하고 짭조름한 수프와 곁들여 먹을 샌드위치 생각을 하며 도착했는데 오픈 시간을 넘긴 매장은 불하나 켜있지 않고 닫혀있었다.
급히 가게 앞에서 홈페이지를 열었고, 확인을 해도 오늘 쉰다거나 휴일이 바뀌었다는 글은 없었다.
어이없고 화가 났다. 이렇게 작은 가게라고, 평일이라고 쉬는 것쯤 사장 마음대로 하는 건가. 연매출 300억이 넘는 프랜차이즈 기업이 된 유명한 카페 사장님은 몇 년 동안 손님 한 명 오지 않은 날에도 가게문을 열기 위해 허리까지 오는 눈길을 쓸었고 약속한 시간엔 어김없이 가게문을 열어두었다고 했다. 어쩌다 올지 모를 손님을 위해 약속을 지키는 게 철칙이라고 했다.
이것 봐... 이렇게 운영철학도 없이, 공지 하나 없이 문을 닫아걸면 다야? 이러니 자영업으로 살아남는 게 어려운 거라고.. 씩씩거리며 기어이 글 한 줄을 남기고 돌아섰다.
"가게 앞인데,, 갑자기 문이 닫혀있어요."
종종 겪는 일이다. 오픈 시간이 8시에서 9시로 바뀌어있고, 토요일도 영업을 한다더니 언젠가부턴 6시에 문을 닫고, 다음 주에 가면 5시에 닫혀있고,, 어떤 날은 환하게 밝혀진 매장 앞에서 20분을 기다리다 돌아섰고다.
어떤 날은 위트가 넘쳐흘러 저세상으로 날아가버린 휴일 공지가 붙어있던 있기도 하다.
어느 곳은 포장이라고 500원 할인해줬는데 이번엔 포장할인이 없어지고 , 어떤 날은 맛이 조금씩 바뀌어 있고 또 어느 날은 얼마 되지 않은 메뉴의 반이 주문이 되질 않는다.
동네 작은 가게란, 주인의 손이 꼼꼼히 미치는 정도의 규모에 온전히 내 힘으로 정성을 들인다의 의미가 아니던가. 단순히 자본이 부족해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 작은 골목 귀퉁이에 가게를 낸 거였단 말인가?
나로서는 들쭉날쭉 시간과 운영방식이 장사의 기본을 무시한 행동일뿐더러 작은 가게가 잘 됐으면 하는 좋은 맘으로 들르는 동네 손님에 대한 무시로 여겨져 배신감마저 들었었다. 열고 닫는 건 주인 맘이지만, 영업일과 시간을 지키는 건 상도의 아닌가.
그리고 내 성마른 배신감에 아랑곳없이 그 가게는 다시 돌아오는 영업일에 문을 열고, 준비한 재료로 음식을 팔았다. 일찍 닫혀있던 카페는 다시 들르지는 않았고, 날씨 탓인지 분식집도 한동안 들르지 않았다. 졸업식, 입학식의 실종으로 꽃집이 어려워 꽃 팔아주기가 한창일 때도 한송이에 기어이 만원을 받던 동네 꽃집은 여름 이후엔 가본 적이 없고 한단에 만원을 파는 인터넷 꽃 농장으로 다달이 방을 꾸민다.. 케이크가 맛있던 카페에서는 지금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작은 가게의 의미는 뭘까,, 내가 내 속도에 맞춰 내 기호를 따라 취향껏 살고 싶은 것처럼 사람을 상대하는 장사이긴 하지만 분식집도, 꽃집도 카페도 샌드위치 집 사장님도 본인의 페이스에 맞춰, 사정에 맞춰 가게를 꾸려나가며 최대한 행복해하고 싶은 그냥 어른들이 아닌가.
어쩌다 예고 없이 닫히는 날엔 집에 사정이 있었겠지, 대신 가게를 맡아줄 직원이 없던 건 내가 원하던 작고 유니크한 가게니까 당연한 일이다.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안정적인 가게를 바랐다면 프랜차이즈에 가면 됐을 일이다.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바뀔 수 있지만 그게 작은 가게의 매력이다. 날 알아봐 주고, 소박하고 정성 들인 음식이 있는 곳. 불안정함이 매력인 곳.
그리고 그럼에도 갈 만한 곳이라면 단골이 될 동네 작은 가게로 남을 테지. 한없이 수동적이지만 또 가장 냉정한 손님의 선택과 맘대로 가 가능한 작은 가게 사장님이 합의점을 이뤄 동네 작고 단골이 많은 든든한 가게들이 생겨나는 순간들이 있을 거다. 지금의 언짢음과 이해의 교차가 동네 손님이 되어가는 시행착오의 기간인 것처럼 작은 가게 사장님들의 시행착오의 순간들도 필요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