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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미리내 Apr 09. 2021

보행 열사

보행자로 사는게 이렇게 어렵습니다.

2017년 건널목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왕복4차선. 건너기 전에 살펴본 도로 양 끝에 시야에 들어오는 차는 없었고 중앙선을 건너 한 차선을            남겨두고 인도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나타난 은색 택시에 치였다.

차에 부딪히기 전 생각했다. 

왜 속도를 안줄이지? 훤한 대낮에 양쪽 차선에 차라고는 달랑 그 은색 택시 뿐이었는데 나를 보고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영화처럼 몸을 날릴수도 , 하다못해 발걸음을 빨리 떼기도 전, 어어 ...하는 사이 차에 치였고, 그 순간 든 생각은 '어라..생각보다 아프지 않은데?'였다.

오른쪽 무릎과 발목을 부딪혔고 그대로 붕 날아올라 퍽..하고 인도 가까이 떨어졌다.


사고후의 상황은  티비에서 처럼 정신을 잃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안도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깔끔하게 머리나 팔다리에 붕대를 두르고 깨어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한참 지난했고 짜증났다.


일단 정신이 멀쩡했고, 고로 아픔이 그대로 전해졌다.


붕 떨어져 머리로 퍽 하고 덜어진 순간 정말 비속어가 나도 모르게  머리속에서 터져나왔다.

'더럽게 아프네' 


이마로 떨어졌고, 고개를 든 순간 후두둑 머리에서  한무더기 진득한 질감의 무언가가 떨어졌다.

피는 주르륵 흐르는거라고 n년차 인생 경험상 알고 있었지만, 그건 코피나 겨우 어디에 살짝 베이는 정도일 때 얘기고, 벌집마냥 터진 부위에선 피가 진득한 물감처럼 덩이 덩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된다.


겨우 날 치기 1미터 정도쯤 나의 존재를 알아본 기사분은 허둥대며 멀찍이 날라간 내 운동화를 주워와 그사이 부지런하게 부어오른 내 발에 꿰어주려고 했다.

그순간 날 친 사람에 대한 화도, 사고에 대한 놀람도 아닌 도로 가장자리, 무방비 상태로 쓰러져 있던 내가   느낀건 2차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또 다른 차가  이상황을 못보고 날 치고 지나갈 것 같은 두려움만 가득했다. 다행히 트럭이 한대 멈춰섰고, 그 트럭 기사분이 달리는 다른 차로 부터 나를 보호하고,                       차량을  우회시키며, 경찰과 구급차에 신고하라고 기사분을 다그쳤다.


곧 구급차가 도착했고,   내 몸에 힘들게 목 보호대를 두르고 머리카락을 간이용 환자 침대에 끼여가며 구급차에 날 실었다. 차 안쪽에 정수리를 찧는 아픔쯤 참을 수 있었다. 방금 날라가서 바닥에 고꾸라 졌는데 구급차에 정수리좀 찧었다고 대수랴. 그저 그곳을 벗어나는 것에 안도했다.


내 오리털 잠바에서 흘러나간 하얀 털들이 도로에 흰 눈처럼 소용돌이 치며 떠돌다 쌓이고 있었다. 

겨우 크리스마스를 이틀 지난 날이었다. 어쩐지,,그해 눈이 안오더라니.


그리고 병원에 있던 두달동안 그렇게 좋아하던 눈이 원없이 내렸고, 그 눈을 한번 밟아 보지도 못하고 평창  동계올림픽의 떠들썩 하던 그 해 2018년 초가 그렇게 지나갔다.


n년차 보행자로 살아오면서 무단 횡단도 해봤고, 파란불에 날 칠듯이 지나갔던 차들고 있었지만 막상 사고를 당했던 건 그 한번, 도저히 사고라곤 날 것 같지 않은 한적하고 넓은 한낮의 도로였다니..... 이상했다.


그 후로 한동안 건널목을 지난 때 한껏 쫄아 좌우를 수없이 살피며 도둑마냥 종종걸음으로 지나갔고 그렇게 한두해 지나고서 지금의 보행열사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보행자는 단순히 걸어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순발력과 담대함과 지나가는 차와 순간 눈치싸움을 해야하는, 다분히 피곤하고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어야 가능한 프로의 위치랄까?


일단 차들은 신호등에서도 정지선을 한참 넘어 건널목을 침범하고, 빨간 불이어도 꼬리를 물고 냅다 지나가는  일이 자주 있다. 더불어 우회전 하는 차들은 곧 마주칠 건널목따위 안중에도 없다.

동네에서 우회전하던 차에 치여 사고를 당한 괴담같은 사고담이 없는 곳이 있을까?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도 여럿 존재한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은 그나마 차가 대부분의 확률로 서기는 한다. 다가와서 급정거를 한이 있더라도. 

늘어난 도로 cctv에 감사할 따름이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은 그야말로 흰 줄무늬가 쳐져있는 고속도로라고 보면 된다.


보행자 보호의무. 우리나라 교통법상 건널목에 보행자가 발을 딛는 순간 양 차선 차들은 보행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고, 따라서 보행자가 안전하게 인도에 올라 설 때까지 멈춰 기다려야 한다. 갑자기 튀어나오면 어떻게 멈추냐고?

도로에서 흰색 마름모꼴 표시가 있다면 30-50m 이내 건널목이 나타나니 속도를 줄이고 멈출 준비를 하며, 운전에 유의하라는 의미이다.


이 표시를 이해하는 운전자가 몇이나 될까? 본인의 친구로 운전을 10년이상 한 어떤  운전자는 처음 듣는 말이라고 한다. 그 친구의 가족 구성원 중 최소 2명이 차없이 다니는 프로 보행자임을 감안하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운전하는 누군가의 가족이나 가까운 누군가는 , 심지어 본인조차 언젠가는  보행자이다.


접촉사고나 주차시비등 운전을 하다 맞닥뜨리게 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해야 본인 과실이 줄어들지, 자주 다니는 곳이라면 어디에 과속 카메라가 있고 어디서 음주측정을 자주 하는지 아마 알고 있고, 조심들 하겠지만 운전자로서 즉, 언제든 가해자의 위치가 될 수 있는 , 보행자에 대한 법률엔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최소한 보행자로서 평생 살아온 내 관점에선 말이다.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은 그저 아우토반이다. 양쪽 차손에 차들이 많고, 속도가 많이 나는 순간엔 나도 살고 싶다. 당연히 서행의무를 위반하건 , 건널목에서 보행자의 권리가 어떻건 그저 군소리 없이 인도에 붙박이 마냥 붙어있다. 그러다 차들이 뜸해지고 가장 가까운 차가 날  발견하고 나무늘보의 속도로 브레이크를 잡더라고 정지할 수 있겠다,, 싶은 순간이 오면 잽싸게 건널목에 안착한다. 최대한 좌우를 두리번 거리며 나 여기 있어요!!나 지금 건너고 있어요!!를 온몸으로 표시하며 건너기 시작한다. 그러나 어김없이 대한민국의 운전자들은 보행자쯤 가볍게 투명인간 취급한다. 


2차선을 지나 1차선을 지나고 있으면 저 멀리 있던 차들은 속도따위 줄이지 않고 차선을 바꿔 내 뒤를 쌩~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고 혹은 내 앞을 가로질러 감히 주행을 방해한 보행자의 행태에 매연 한줄기를 더해 혼쭐을 낸다.차들의 기다림속에 건널목을 건너는, 극히 주목받는 상황을 꺼려하는 보행자이자, 사회 부적응자를 위한 배려의 의미로 빨리 날 지나쳐간게 아닐까 싶을 만큼 당당히 일어난다. 


차들의 흐름은 끊이지 않으나 자주 붐벼 속도가 나지 않는 구간이나,  건널목 지나 바로  자동차 신호가 있는 곳에서 , 신호가 빨간 불이라  차들이 서행하는 순간 건널목을 건너면 그야말로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일단 어차피 20m 앞에서 빨간 불이라 멈춰야 하건 말건 일단 건널목을 건너는 보행자를 기다릴 의무나 인내심 따윈 없다는 듯 없던 속도도 올리며 날 지나쳐 가고, 내 발길을 묶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앞차를 따라가다  결국 건널목 한 중간에 멈춰서서 그 차를 빙 둘러 건너가야 하는  촌극도 아주 자주, 다분히 일어난다. 


위 사진은 우리동네 신호등 없는 건널목이다. 바로 앞 교차로에  자동차용 신호엔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고, 저 할머니가 건널목에 진입한 순간에는 사진에 보이는 맨 앞차는 시야에도 안보일 정도로 멀리있었지만 기어코 할머니를 앞질러 갔고, 저 맨위에 차가 지날때 까지 할머니는 건널목 한 가운데 묵묵히 서 있었다.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생각 못하다는 속담을 난 건널목을 건널 때 자주 생각한다.

두발로 뚜벅 뚜벅 걸어다니는 순간이 운전자에게도 있었을테고,여전히 일어나고,  그들의 가족이나 소중한 누군가도 두발로 하루에 한번쯤은 건널목을 건널텐데, 어째서 운전석에 앉는 순간, 대한민국은 차를 모는 운전자가 갑이고, 보행자는 차를 알아서 피하거나, 운전에 방해를 하지 말아야 할 을중의 을로 여기는 걸까?


또 자주같은 가끔,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려고 하면 신경질적으로 한속을 휘적휘적 내저으며 보행을 재촉하는 운전자들이 있다. 보행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 안전히 건널동안 기다리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치적 거리니까 빨리 사라지라는 그 손짓을 마주하면 마치 불법횡단을 하다 오도가도 못하고 중앙선 근처를 배회하는 사람이 된 기분이다.내가 잘못한거야?


차에도 사람이 타고 있으니 ,사람이 먼저란 말은 하지 말라고 한다면, 법이나 규칙이나 도덕이나 상식따위 버리고, 그저 약육상식으로, 힘있는 사람이 휘두르는 세상이 합리적이고 옳은 세상이라고 믿는 멍청이라 여기겠다.


자주 이런일을 겪으니 이제 건널목에서 쫄지 않고, 나라도 당당히 내 권리를 챙겨야 겠다는 생각에 요즘 난 보행열사를 자처한다.


일단 건널목이 보이고, 적당히 차들이 머출 여유가 있어 보이면 손을 들어 차들에게 정지 신호를 보낸다.  이러면 다분히 높은 확률도 차들의 속도가 줄어들고 곧 멈춘다. 그러고 나면 난 안전히 건널목을 건넌다. 얼마전 뉴스에서도 이 방법을 추천했다. 우리나라에서 보행자 보호의무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단속 강화와 함께 10만원의 과태료가 있음을 널리 알리고, 운전교육에도 힘써야 한다고.


그리고 손을 들어 정지를 표하는 행위로 난 건널목에서 시비에 붙을 뻔 했다. 그때도 한낮, 차들의 통행이 뜸한 시간 중앙선을 넘어 1차선에 들어갈 때 저 멀리서 굉장한 속도로 달려오는 차를 봤다. 그 순간 미친듯이 뛴다면 그 차가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내가 인도에 올라갈 시간은 될 것 같았지만,  그 순간 그렇게 뛰기 싫었다. 엄연히 내가 우선권을 가지고 건너는 중이었고,  못해도 70km는 넘는 속도로 달려오는 그 차가 그순간 아주 괘씸했다. 시내 도로 제한속도는 대부분 50km다. 건널목을 나타내는 마름모꼴을 봤건, 못봤건 주택가 도로에서 70km를 상회하는 속도로 , 보행자는 보고도 속도를 늦추지 않는 그 괘씸한 운전 작태에 그자리에 못박힌 듯 서서 쳐다봤다. 노려보고 싶었지만 마스크를 끼고 있었으니 노려봤는지, 놀라서 멈췄는지 알리도 없을테고, 실은 괘씸한 기분은 나중에 들었고 그 순간은 좀 놀라서 얼었던게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는 했었다.


급정거에 가깝게 내 앞에서 멈추더니, 내가 인도로 올라가 차 옆을 걸어가자 창문을 내리며 뭐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에게 하는 소리인 줄 몰랐고, 그 다음엔 주변에 사람이 뜸한 그곳에서 시비가 붙기 싫어서 못들은 척 내쳐 걸어갔다. 


날 못봤을리는 없고, 그저 보행자를 위해 속도를 늦추기 싫었을 뿐이다. 건널목과의 거리와 운전하는 차의 속도로 봤을때 보행자를 치지만 않으면 , 보행자의 앞이나 뒤를 쌩하고 질러 가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운전자도 아주 많다. 보행자는 내 뒤나 앞으로 간발의 차로 바람을 날리며 지나가는 차의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뒷목이 쭈뼜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왜이러는 걸까. 도대체 어디서 잘 못 된걸까.


하루에 한두번은 만나게 되는 매너없는 운전자가 전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면허 취득이나 교육에 극심한 문제가 있는게 분명하다.

가령, 운전면허 시험 족보에 브레이크 없이 보행자 피하는 법, 이런게 있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까.


나도  일주일에 두세번 운전을 하는 운전자지만, 브레이크를 밟는게, 건널목에서 서행을 하고, 보행자를 보면 차를 멈추는게 하나도 어렵거나 힘들일이 아니었는데 어째서 이렇게 됐을까 싶다. 


80세가 되면 면허를 반납하는게 사회 흐름이 되어간다.  지금 운전대를 잡는 그들도 인생의 후반기, 다리에 힘없고 눈이 어두워 지는 순간 보행자로 돌아가야한다. 그때 그대들과 같은 운전자를 만나 건널목 하나 건너는데 하세월을 보내고, 건널 때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싶진 않을테니 오늘부터 미래의 그날을 위해 바닥에 마름모꼴이 보이면 서행을 하고, 보행자가 보이면 정지선을 지켜 미리 미리 정지하는 운전습관을 들였으면 좋겠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을 순 있지만, 개구리가 무적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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