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가 길거리 싸움과 다른 건 규칙이 있는 스포츠라는 것이다. 발차기를 금지하고, 벨트 아래를 가격해서는 안 되고, 머리로 박치기를 해서도 안 된다. 순전히 두 주먹으로 상대를 때려 눕혀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 번 때려 눕혔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상대가 쓰러지면 열까지 세서 그때까지 못 일어나야 비로소 이긴다. 주먹으로 치고 박고 때론 붉은 피가 낭자하는 투기 종목 치고는 참으로 인간적이다. 쓰러뜨린 후 열까지 기다려 준다, 못 일어나면 끝난다, 일어나면 경기는 다시 진행한다. 이 얼마나 인간적이고 공정한가 말이다.
권투의 이런 약자 배려형 승부 결정 방식이 현대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도입해야할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사각의 링에 비유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을 승과 패로 나누어서도 안 된다. 다만, 몇 번이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일어나면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겨내고 견뎌내며 살아내는 중일 것이다. 삶이란 본질적으로 힘든 시간을 견디고 때로는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며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할일 없이 먹고 노는 주제에 삼시세끼 배고픈 거 보면 삶이란 그런 것이 분명하다.
상대의 주먹에 맞아 쓰러진 후, 정신을 차려도 벌떡 일어날 필요는 없다. 쓰러진 김에 좀 쉬었다가 심판이 여덟이나 아홉 쯤 세었을 때 그때 일어나면 된다. 어차피 룰이 그러니까 그래도 된다. 카운트다운을 하는 동안 누구 하나 빨리 일어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살든 세상은 치열하게 돌아가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의 무게를 거스르는 것이 쉽지도 않더라. 누구는 인생을 야구에 비유하기도 하고, 마라톤에 비유하기도 하던데, 내가 보기에 인생은 그냥 치열하고 빡세더라. 마치 난장판처럼 사람들은 제각각으로 치열하고 빡세게들 살고 있다. 경쟁 같은 거 할 생각 없었는데 어느 새 내가 경쟁구도의 당사자가 되어서 트랙 위를 달리고 있더라. 상대도 나와 겨루고 싶지 않았을 텐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나랑 같은 트랙에서 나란히 뛰고 있었을 것이다. 마침내 퇴사를 하였을 때, 나는 스스로 올라간 적 없는 링 위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와 난투극을 벌인 것처럼 엉망진창으로 망가져 있었다.
세상의 무게를 거슬러서 여유롭게 살고 싶지만 그러려면 뭔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부자 부모라거나, 로또라거나, 아니면 난데없는 회장 할아버지의 등장으로 밝혀지는 뒤늦은 출생의 비밀이거나.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는 잠시 쉴 수 있는 카운트다운의 시간이 그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수밖에 없다. 넘어지면 좀 쉬어야 하고, 그 후에는 일어나서 다시 시작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나는 회사에서 생존하지 못했다. 내가 다시 들어갈 직장은 없어 보였다. 어느 회사에서도 채용하기에 나는 부담스러운 나이와 직급이었고, 영업에 도움을 기대할만한 학연이 없었다. 비지니스의 세계에서 학연만큼 막강한 무기가 있을까. 연구원 역시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가 된 후에는 학연으로 이어진 끈끈한 연결고리를 다수 확보함으로서 작은 회사의 존속에 기여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지는 것이다. 결국 나도 그렇게 남들처럼 떠밀리듯 나오게 된 직장의 대체제로서 자영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제주도로 내려와 민박집을 차릴 때 그리 큰 용기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내가 가진 능력과 자격으로 직장에서 주어진 시간은 딱 10년이 전부라고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어차피 회사를 더 다니기는 무리라고 진작 생각했기에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다행히 나는 그동안 쉬지 않고 10년이나 직장을 다녔다. 연봉은 적지 않았고, 퇴직금도 나왔다. 분양받은 아파트 대출금도 거의 다 갚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카운트다운이었다. 비록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카운트다운 말이다. 당분간은 퇴직금으로 생활할 수 있었고, 살고 있는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으면 그걸로 뭐라도 시작할 수 있었다.
또 다행히도, 아파트 전세금으로 그 당시 제주도 시골마을에 농가주택을 사서 작은 민박집 하나는 차릴 수 있었다. 제주로의 이주라는 로망을 실현하는 데에 아내의 동의를 구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그 당시 제주에서는 소박하게 장사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능했다. 경쟁 없이 여유롭게 말이다. 부동산 광풍이 제주를 휩쓸기 전이었고, 전세금으로 조그만 농가주택을 산 건 투자가 아니었다. 투자금 회수를 위해 장사가 잘 되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저 적당히 벌고 적당히 놀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우리의 첫 자영업은 성공을 위해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제주에서 원한 건 여유롭고 느린 삶이었고, 민박집으로 버는 돈은 그런 삶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에 불과했다.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딱히 큰 노력 없이도 장사가 그럭저럭 되는 시절이었다. 그래서 절박함도 없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가게를 차렸고, 예약이 밀려왔고, 우리는 장사를 했다.
그리고 6년.
6년 동안 제주에는 많은 일이 있었다. 제주에 인구가 늘고, 관광객도 늘었다. 숙박업소가 수백 개가 새로 생겼고,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경쟁이 시작되었고, 여유롭지 않게 되었다. 나는 최근에야 나도 모르는 새에 경쟁의 물결에 휩쓸려서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경쟁력 있는 가격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고, 요즘은 북스테이가 유행이라는데, 바베큐 시설이라도 지어야 하나, 인테리어 공사를 새로 해야 하나 등등의 고민들이 머릿속에 꽉 찼다. 객실 가동률은 완전히 우리의 통제권을 벗어나 버렸고, ‘적당히’ 라는 목표는 지나가버린 하룻밤 꿈처럼 사라져 이제는 허황된 구호가 되었다.
다시 묵직한 세상의 무게에 눌리게 된 것 같았다. 제주를 찾는 여행자가 늘어난 만큼 숙박업소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조용한 마을 안에 자리 잡은 소박한 민박집이 아닌, 모던이나 빈티지라는 인테리어 콘셉트와 오션뷰와 호텔식 시설로 무장한 경쟁자들 말이다. 아니 애초에 경쟁 구도가 형성되기 전에 시작한 우리집으로서는 신생 업소에 감히 맞설 깜냥이 안 되는 것이다.
신생 업소의 등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장이 커졌는데 누가 황금밭을 그냥 지나치겠느냔 말이다. 애초에 경쟁은 피할 수 없음을 몰랐던 내가 얼마나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적당히’ 라는 허황된 구호 따위는 집어치우고 경쟁력을 갖추는 데에 사력을 다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자영업의 세계는 직장인의 생존과는 결이 다른 차원으로 치열한 경쟁의 사슬로 묶여 있는 것 같다. 부자 부모나, 로또나, 출생의 비밀을 밝혀줄 회장 할아버지의 난데없는 등장이 아니라면 결코 내 힘으로는 끊어낼 수 없는 사슬이다.
직장을 떠날 때처럼 역시나 이번에도 내가 먼저 나서서 폐업을 결정했다. 몇 년 전부터 제주에 부는 부동산 광풍을 맞으며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오리라고 예상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제 이쯤이면 그만 둘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을 두 번째 카운트다운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무게에 눌려 쓰러진 사람에게 필요한 건 더 버티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힘들면 좀 쉬어도 된다는 위로가 아닐까. 이제부터 열까지 셀 것이다. 패배감에 떨며 벌떡 일어나지는 않을 참이다. 대략 여덟이나 아홉 쯤 세었을 때 그 때 일어나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빨리 일어나라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으니까. 이왕 넘어진 김에 좀 쉬었다가 일어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