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거실 창의 블라인드를 올리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는 것이다. 하루의 시작은 늘 햇볕 내리는 거실에서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이다. 주로 일정 비트 이상을 넘지 않는 어쿠스틱이나 뉴에이지 곡을 조용하게 튼다. 소리가 큰 음악은 소음처럼 느껴져서 항상 작게 튼다.
나에게 음악은 배경이다. 사진 속 주 피사체 뒤의 흐릿한 풍경 같은 거랄까. 사진에 주 피사체만 존재할 수만은 없듯, 배경이 주 피사체의 주제를 침범해서는 안 되듯, 음악 역시 일상 속에서 잔잔하게 내 뒤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가 또박또박 박히는 가요가 아닌 팝이나 연주곡을 듣는다. 형체는 있지만 알아볼 수는 없는 상태로 말이다. 내가 한국말 말고는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외국어 멍청이라서 그렇다. 일찍이 영어권 국가로의 조기유학을 다녀왔다면 나는 스리랑카나 태국 음악 마니아가 되었을 것이다.
햇볕을 등지고 안락의자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는다. 그러다 집안을 슥 둘러보면 밤새 마리가 뛰어다닌 흔적들이 거실을 나뒹군다. 긴 털 뭉치부터 먼지 같은 잔털까지 마리는 지난밤에도 어김없이 집안 여기저기를 신나게도 뛰어다녔나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사람은 매일 털 치우는 게 일이다. 집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잠이 확 깬다.
여전히 세수도 안 한 얼굴로 지난밤에 읽다가 만 책을 편다. 요즘은 최민석의 <베를린 일기>를 읽고 있다. 감성적인 문장이 유행인 에세이 시장에서 단비와도 같은 책이다. 출간한 지는 꽤 되었는데 그때 나는 북유럽 스릴러 소설에 빠져 있었다. 핀란드의 날씨만큼이나 오싹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요 네스뵈의 소설을 읽느라 다른 책을 보지 않았다. 요즘은 도저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가볍게 읽을 만한 것들을 골라서 겨우 읽고 있는 중이다. 한 예술기관의 지원으로 베를린 자유대학에 머물며 보낸 일상을 기록한 이 책은 요즘의 나에게 딱 맞는 무게와 밀도의 재미를 주고 있다.
나에겐 책도 배경이다. 근데 음악과는 좀 다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릿한 배경이 음악이라면 책은 주 피사체 바로 뒤에 있는 것과 같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형체가 분명하고 주 피사체를 보조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경 같은 거랄까. 책과 글은 내 삶에서 매우 큰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아마도 내가 서점의 주인이라면 책과 글은 내 삶의 주 피사체가 될 것이다. 어떤 책을 팔지 고민하고,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을 소개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실제로 그것이 나의 일이 된다면 아주 즐겁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안 해봤으니까 하는 소리다. 서점 운영이 그리 한가하지 않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서점 주인은 엑셀의 신이 되어야 한다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기만의 서점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쯤 해보지 않을까. 그러다가 누구는 실제로 서점을 열기도 하고, 누구는 로망으로만 간직한 채 살아간다. 나 역시 서점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 취향의 책들로 채운 서가,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팔릴만한 책들로 채운 서가, 그리고 내가 쓴 책들. 공간은 나라는 인간을 대신하여 보여주기 위해 차분하고 단정하게 꾸미리라. 하지만 그건 상상일 뿐 실현 하지 못할 것이다.
책을 겨우 나만큼 좋아하는 정도로 서점을 열어도 되나 싶다. 모름지기 서점의 주인은 나보다는 훨씬 더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이어야 되지 않을까. 독서를 통해 순수하게 재미만을 추구하는 나보다는 훨씬 더 어려운 책을 읽고 수준 높은 성찰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재미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 교양, 철학적 고찰, 인문학적 성찰, 뭐 그런 것들이니까. 그러니까 서점 주인은 나처럼 책을 가볍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점 주인이 되는 상상을 해봤지만 현실적으로 검토하고 있지 않다. 나는 대중적이지도, 그렇다고 전문적이지도 않은 독서 취향을 갖고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이것은 책뿐만 아니라 무엇을 팔던 아주 중요한 것이다. 나의 취향은 아주 독특한 소수에서 완전 대중적인 다수로 그어 놓은 선의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책을 팔던, 밥을 팔던, 나의 취향이 혹은 안목이 어느 선상에 있는지를 알아야 그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다.
또한, 서점 주인에게는 요식업자나 숙박업자에게는 요구하지 않는 종류의 책임과 의무가 강요된다. 미디어가, 독자 또는 손님들이 그런다. 주인이 자기 돈 들여서 만든 공간과 사입한 책을 공공제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서점이 때론 SNS용 포토 포인트가 되거나 온라인 구매를 위한 쇼룸으로 여기기도 한다.
또한 미디어는 지역의 문화발전과 주민들과의 소통 공간으로서의 서점을 주로 이야기한다. 가게로서의 서점, 생계형 소규모 자영업으로서의 서점은 잘 조명하지 않는다.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 주인이 자기 월급을 벌기 위해서는 책을 파는 것 말고 뭐가 필요하냐 말이다. 밥집에서는 밥을 팔지, 지역 주민들의 올바른 식생활을 위한 소통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점에게는 책을 파는 일 이상의 무언가가 강요된다. 이유는 다 안다. 독자가 없기 때문이다. 큐레이션은 그 서점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것일 뿐 강력한 영업 무기가 안 된다. 한국처럼 내수시장이 작은 나라에서, 강남대로를 걸으며 마주치는 100명 중에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이 10명도 안 될 것 같은 나라에서 책을 판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서점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희귀종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다.
나는 책과 글이 내 삶의 주 피사체가 되기를 원한다. 읽는 것과 쓰는 것은 거의 비슷한 비율로 내 인생에서 크고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작가로서는 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지금은 자신 없지만 언젠가는 성실한 책팔이로서의 서점 주인을 상상해 본다. 그저 성실한 책팔이로서의 서평가이자 큐레이터가 되고 싶고 또...... 엑셀의 신, 엑셀은 이미 지금도 잘하지만 서점 주인이 되기 위해 필요하다면 입신의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