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반지하

by 변방의 공돌이

마포구 대흥동의 한 벤처기업에서 나의 첫 직장생활이 시작되었다.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졸업 몇 개월 전에 취업을 할 수 있었고, 그곳이 서울이어서 또 다행이었다. IMF를 맞은 나라의 대학졸업예정자로서 취업준비는 절박했고 치열했다. 또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어 주기도 했다. 서울에 대한 로망은 없었지만, 고향을 떠나고 싶은 마음과 작은 나라의 수도권 과밀현상이 자연스럽게 나를 서울로 이끌었다.


출근 전날, 50리터 배낭을 짊어지고 서울행 고속버스를 탔다. 그동안 면접을 보느라 자주 오고갔던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 낯설게 느껴졌다. 더 이상 면접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온 듯 한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에 올 때마다 반듯한 양복과 머리, 긴장한 듯한 표정의 취준생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었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향해 자동적으로 시선이 가서 닿았을 것이다. 이제는 짐을 이고지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시선이 갔다. 서울에서 살아갈 나의 시선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향했다.


서울의 찬 공기가 코를 타고 넘어왔다. 일대를 꽉 채운 서울말들, 입을 꾹 다문 내가 쓰는 경상도 말. 내가 다른 말을 쓰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여겨졌다.


전철을 타고 대흥역으로 갔다. 대흥동에 도착하여 주변을 맴돌았다. 당분간 생활할 고시원 간판을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거리를 걸었다. 눈에 띈 몇 개의 고시원 중 간판이 제일 깨끗한 곳을 찾아서 들어갔다.


난생 처음 가보는 고시원의 복도는 좁고 깜깜했다. 창문 없는 방으로 골라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눕기 위해서는 책상 밑으로 발을 넣어야 하는 그 방에서 월 2만원과 맞바꾼 작은 창문의 위엄이 어느 정도일지를 상상했다. 이제부터 펼쳐질 나의 서울생활이 이 좁고 깜깜한 고시원 같지는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이 고시원도 곧 벗어나겠지.


입사 3개월 만에 고시원을 벗어나 인근의 어느 반지하로 이사를 했다. 연달아 서울로 올라온 대학동기 두 명과 함께 살기로 했다. 사회 초년생 남자 셋과 반지하는 아주 잘 어울렸다. 쓸고 닦아도 그다지 쾌적해지지 않는 반지하와 언제 세련된 서울사람이 될지를 기약할 수 없는 촌스러운 남자 셋, 그리고 주말이면 반지하로 찾아드는 서울 어딘가에 사는 또 다른 친구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서울생활은 더 이상 낯설지도 외롭지도 않았다. 궁핍한 취준생에서 자체적인 경제규모를 갖춘 자취생으로 상승한 신분의 변화에 취한 우리들은 자주 모여 웃고 떠들었다. 아마도 그곳이 옥탑방이었다면 좀 더 낭만적이었을 텐데. 설레는 마음으로 상경한 지방 청년들이 서울의 야경을 보면서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옥탑방 말이다.


그때 그 반지하를 가끔 떠올린다.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각자의 가정이 생긴 후 꿈을 이야기하던 우리들은 육아와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각자의 삶에 들어온 가족의 지분만큼 친구들의 자리는 밀려나고, 어느새 우정의 유효기간이 끝나버린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친구들은 어떤 경로로 멀어지고 어떤 방식으로 유지되는 걸까. 지극히 평범한 경로로 멀어진 우리들처럼, 세상의 많은 친구들도 그렇게 서로에게 무관심하며 멀어지는 걸까. 관심과 위로와 응원을 나누지 않는 친구란 결국 시한부적인 것일까.


어쩌면 가족에게 편입된 삶을 자신의 삶이라고 여기게 되면서부터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닌 가족만 있는 대화에 더 이상 머무를 수 없는 나의 무관심, 자녀를 가지지 않은 나의 꿈에 대한 친구들의 무관심 말이다. 대부분의 관심을 각자의 가족에게 집중할 때 우정은 단절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훌쩍 자라버린 자녀에게 더 이상 집중할 수 없는 관심은 중년이 된 친구들에게로 다시 향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우정은 단절되었다가 그렇게 다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중년이 된 우리들은 다시 만나 그때 그 반지하에 대해 이야기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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