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산지 10년이 넘었다. 다 그렇겠지만 신혼 때는 서로 안 맞는 게 있어서 티격태격 했다. 양말을 뒤집어서 벗는다고 티격태격, 세수할 때 물을 많이 튀긴다고 티격태격, 설거지하고 그릇을 아무렇게나 놓는다고 티격태격 …… 뭐 그런 것들로 티격태격 했다. 식성도 안 맞고, 잠버릇도 다르고, …… 그런 사소한 것들이 처음부터 맞을 리가 없다.
지금은 대부분 잘 맞는 편이다. 우리는 비슷한 시간에 자고 비슷한 시간에 일어난다. 식성도 서울식과 경상도식의 중간 어디쯤에 대충 맞춰졌다. 10년이나 같이 살았으니 그런 사소한 것들 쯤이야 맞아지게 되어 있다. 아직도 그런 게 안 맞으면 심각한 문제 아닐까!
그렇게 서로에게 맞추어지게 되기까지 엄청나게 노력하거나 희생한 것은 없다. 적당한 포기와 적당한 수용, 그리고 적당한 노력이면 충분했다. 양말을 뒤집어 벗든, 세수할 때 물을 튀기든 우리는 이제 그까짓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 뒤집힌 양말은 신을 때 다시 펴면 되고, 욕실에 튄 물은 닦아내면 된다. 어차피 욕실과 주방은 24시간 물기와의 전쟁이다.
가사노동 참여율 역시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결혼을 한 후에야 여자에게만 가사노동의 책임이 지워지는 부당함과 며느리라는 이름의 굴레를 인식했다. 나는 뼛속까지 가부장제의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는 한국남자임을 알고 속죄의 길을 걷고 있다. 내 안에 살고 있는 가부장제의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한국남자라면 평생 해야 할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주방은 내 것이다. 또한 아내의 것이기도 하다. 아내는 갈비찜을 잘 하고, 나는 주방에 물기와 기름 떼를 잘 닦아낸다. 나는 계란말이를 예쁘게 잘 만들고, 아내는 계란찜을 포슬포슬하게 잘 만든다. 김치찌개는 내 것이 더 맛있고, 된장찌개는 아내의 것이 더 맛있다. 원하지도 않는 주방의 소유권을 강제로 쥐어주며 가사노동의 부담을 한 사람이 떠안지 않는다. 주방을 우리 두 사람이 공동 소유함으로서 부부사이의 마지막 난제와도 같은 가사노동 참여율에 대한 분쟁을 없앴다.
부부는 각국의 정상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부부 사이의 작은 다툼들은 처음에는 신경전으로 시작하다가 결국 조율하여 접점을 찾게 된다. 한 치의 양보도 허용할 수 없는 지점이 나타나면 그때부터는 치열한 외교전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양보하는 식으로 내 것을 지킨다. 한쪽이 만족스럽지 않은 합의에는 작은 앙금이 남고, 그것은 또 다른 외교전의 협상 테이블로 올라간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맞추어 가다가 한 20년쯤 같이 살면 세상 둘도 없는 우방국이 되는 것이 결혼생활이 아닐까. 그러니 부디 서로에게 날카로운 감정을 드러내며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지 마시기를.
나는 결혼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아내에게서 며느리라는 이름을 지웠다. 나는 아내가 제사와 명절 때마다 시댁에 가야 한다는 의무감을 내려놓기를 원했다. 그렇다고 아내가 며느리라는 이름을 지우기 위해 시댁으로 진격하는 투사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투사가 된 많은 여자들이 제일 먼저 맞닥뜨리는 적은 다름 아닌 남편이다. 인자를 숨기고 있다가 결혼과 동시에 발병하는 병, 바로 효자 증후군에 걸린 남편이야말로 여자를 투사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효도이니 자기는 못하겠고, 아내에게 대신 효도를 강요하는 것이 이 병의 특징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께 정기적으로 안부 전화 드리기, 주말마다 부모님과 함께 시간 보내기, 집안 행사에 노동력 제공하기, 그리고 부모님께 살가운 며느리 되기. 그 외에도 한국에서 며느리의 의무로 강요되는 것들은 차고 넘친다.
나는 아내를 투사로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든든한 동맹이 되기를 원한다. 아내가 조상의 제사상을 차려야 한다면 그건 남편의 조상이 아니라 자기 집의 조상이어야 한다. 새해 아침에 세배를 드리는 것 역시 남편의 부모가 아니라 자신의 부모여야 한다. 그건 당연한 것이고, 당연한 것을 위해 누군가가 투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관념 속에는 남녀의 역할이라는 것이 입력되어 있어서 언제 어떻게 무의식적으로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의 사고가 작동하게 될지 모른다. 남자다운 야망, 여자다운 직업, 남자다운 박력, 여자다운 부드러움. 이런 단어들이 의식 깊이 새겨져 있는 나는 차별적 인간인 채로 어른이 되어버렸다.
오래된 기름처럼 찌들어 있는 오류들을 지워나가며, 아내와 나는 동지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평범한 부부이지만 가부장제에 침략당한 해방 전선의 동지로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