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심장이 뛰는 것

by 변방의 공돌이

마리와 함께 살면서 고양이의 습성들 중 많은 것이 나와 닮았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종일 잠만 자는 마리를 쓰다듬으며 게으르고 나태한 나를 발견한다. 간식 달라고 내 팔을 잡아 끌 때는 식탐 많은 아저씨가 된 나를, 천방지축으로 까불어대며 온 집안을 뛰어다닐 때는 순간순간 한없이 가볍게 행동하는 나를 발견한다.


마리는 방금 거실에 앉아 있는 나에게 다가와 간식 달라고 떼를 쓰더니, 간식을 주고 나니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에휴! 나는 사람들한테 저러지 말아야지. 누군가가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가 필요 없을 때는 쏙 사라져버리는 게 그리 인간적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고양이적으로는 지극히 사랑스럽다. 철없이 해맑은 도도함이야말로 고양이의 가장 치명적인 매력이니까. “우와! 방금 고양이가 나를 무시했어! 정말 사랑스러워!” 사람을 이런 치명적이고도 어처구니없는 매력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하는 게 바로 고양이다.


그렇다고 고양이라고 늘 사람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가 돌아오면 마리는 대체 그동안 어디서 뭘 하다 왔냐고 야단치며 며칠 동안 우리를 졸졸 쫓아다닌다. 그러다가 우리의 손끝이 닿으면 몸을 뒤집고 골골골골, 들어서 안아주면 가슴에 폭 기대어서 골골골골, 침대에 누워 있으면 배 위로 올라와서 또 골골골골. 그렇게 마리는 그동안 외로웠던 자기 마음을 표현하느라 며칠 동안 온 몸을 불태운다. 수시로 천방지축으로 까불어대는 고양이도, 툭 하면 사람 무시하는 도도한 고양이도 외로움만큼은 쉽게 감출 수 없는 것이다.


외로움을 감추는 데 급급한 건 도리어 사람인 것 같다. 외로움을 드러내는 것을 마치 치명적인 약점을 들키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으니 말이다. 나 역시 그렇다. 외로움을 들키는 순간 왠지 작아지는 느낌, 관계에서 약자가 되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평소에 적극적으로 난 괜찮아, 난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해, 그런 건 원래 혼자 하는 거야, 의 기운을 풍기기 위해 노력했다. 지금의 내가 레벨 7정도의 집돌이가 된 것도 어쩌면 오랜 시간 동안 외로움을 감추려 했던 방어기제의 한 측면인지도 모른다. 외로우니까 누가 나랑 좀 놀아줘, 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서 아예 생활양식을 바꿔버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회사에 다닐 때, 심한 몸살에 걸린 적이 있다. 꼭 3년에 한 번씩은 심하게 앓아왔다. 으슬으슬 춥고 열이 날 때 그 공포스러운 주기가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아마도 내일은 출근을 못할 지도 모른다는 예언을 남기고 일찍 퇴근을 했다. 힘겹게 봉천동 언덕을 걸어 올라가 세 평 남짓의 원룸에 이불을 깔고 누웠을 때, 그때부터 몸살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몸은 미라가 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어지러웠다.


꾸역꾸역 일어나 출근을 했다. 아무도 없는 원룸에 종일 누워 있기 싫어서였다. 창문 밖의 작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지독히도 아프고 외로운 하루를 보낼 자신이 없었다.

출근 후, 실험실 한편에 있는 취침실에 가서 누웠다. 사수와 동료 몇몇이 들어와 푹 쉬라는 말을 하고 나갔다. 자다 깼다를 반복하다 오후가 되었을 때, 차가워진 이마를 만지며 생각했다. 외로운 것보다는 아픈 몸을 질질 끌고 전철을 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세평 남짓의 원룸에 이불을 깔고 누웠을 때, 그때부터 몸살이 더 심해진 건 지독한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몸살기에 더해진 외로움만큼 체온이 더 올라간 것 같았다. 뜨거워진 몸을 이불로 감싸고 견뎌야 했다. 하지만 견딜 수 없어서 다음날 몸을 움직여 봉천동 언덕을 걸어 내려가 전철을 타고 회사로 갔다. 작은 방의 이불 속이 아니라 사람들 속에 섞여야 했다. 그때 나는 낯선 도시생활의 외로움을 그렇게 참아냈다.


어느 듯 도시생활이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외로움 대신 지겨움을 던져주었다. 지겨움으로부터 달아나 제주로 왔다. 문득 찾아오는 몸살처럼 참을 수 없이 외로운 날은 여기에도 있다. 그렇다고 여기에서는 사람들 속에 섞이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애쓴다고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근원적인 것 같다. 외로움을 분비하는 장기가 심장 밑 어딘가에 붙어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 외로움은 새살이 돋아야 낫는 상처도 아니고, 이겨내야 하는 열병도 아니다. 마치 심장이 뛰듯이 어딘가에서 분비하는 장기의 정상적인 활동인 것만 같다.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몸살처럼, 그렇게 외로움이 찾아오는 것만 같다.

그래서 상처 난 곳에 반창고를 바르듯 사람을 찾지 않는다. 도리어 좋은 것을 나눌 때 사람을 찾게 된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순간은 좋은 일이 생겼을 때이지, 외로울 때가 아니다. 외로움은 그저 지나갈 테니까.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올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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