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라는 걸 믿는 편이다. 맹신까지는 아니지만, 사람은 어떤 기질이라는 것을 타고 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공부 머리 있는 핏줄이 따로 있고, 창작 혼을 간직한 핏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릴 때 아버지는 우리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가난이 가로막은 당신의 학업의 길을 아쉬워하고 억울해 하셨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시는 날이면 늘 어린 우리 셋을 앉혀놓고 공놀이 하다가 깬 유리창 값을 못 내서 학교를 그만둬야 했던 옛날 이야기를 하셨다. 돈 달라는 아버지를 끝내 외면한 할아버지가 얼마나 야속했던지, 무정한 시대가 짓밟은 한 어린이의 꿈과 희망이 얼마나 구슬펐던지,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 셋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었다. 그리고 매번 똑같은 생각을 했다. 저희가 아버지를 대신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 꼭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꼭 그러겠다고.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형제들은 공부를 잘 못했다. 딱히 불량스럽거나 게으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숙제도 빼먹지 않았고, 집안일도 돕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들이었다. 그렇다고 딱히 머리도 나쁘지 않았다. 부모님과 손을 척척 맞추어서 농사일을 도울 정도로 다들 똑똑했다. 농사일의 디테일이라는 건 직접 농사를 지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청소년이 되기도 전에 어른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아이라면 머리가 나쁜 편이 결코 아니다. 아무튼 우리 셋은 정말 다른 건 다 잘했는데 공부만 못했다.
어쩌면 우리들을 학원을 보내거나 도시로 유학을 보낼 수도 있었겠지만, 투자도 싹수가 보여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집안에서 공부로 성공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으니, 쓸데없는 곳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임을 아버지도 아셨으리라.
외가 쪽 사람들은 공부를 잘 했다. 서울대, 미국유학, 의사, 검사라는 키워드가 자주 출현하는 내력의 집안이다. 어릴 때 본 외사촌들 전부 공부 잘한다는 칭찬에 어른들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었다. 우리 형제에게는 왜 외가 쪽 피가 섞이지 않은 것인가? 설마 그나마 섞여서 이 정도인가? 에라이!
어느 명절 날, 도란도란 둘러앉은 자리에서 우리 집안 사람들의 과거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듯 재미있게 나누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 집안은 공부 머리 대신 다른 기질의 핏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정말 멋지게 잘 그렸다는 작은 아버지, 가수가 되겠다고 기타 하나 메고 서울로 도망친 또 다른 작은 아버지, 뭐든 뚝딱 예쁘고 멋있게 만들어 내신 막내 작은 아버지.
어릴 때 작은 아버지들 집에서 본 노트들이 떠오른다. 펜으로 그린 멋진 그림과 글이었다. 만화 속 주인공처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 달력 속 그림보다 멋진 풍경들, 그리고 그 옆에 정성스럽게 적은 자작시들.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나에게 그것은 정말 멋진 시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그것을 간직하고 있다면 나는 그걸로 멋진 독립출판물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을 것이다. 정말 아깝다.
어릴 때 본 막내 작은 아버지의 작품도 생각난다. 하드 막대와 나무젓가락을 자르고 깎아서 만든 멋진 범선이었다. 버스 운전을 하고 들어오셔서는 저녁 내내 도루코 칼로 다듬은 막대에 본드를 바르고 입으로 호호 불며 배를 만들던 막내 작은 아버지가 생각난다.
작은 아버지들이 젊은 시절 험한 일을 하며 사신 것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나셨기 때문이다. 지금이었으면 훌륭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거나, 슈퍼스타 K에 나가서 준우승 정도는 하셔서 가수로 데뷔했을 지도, 또 하나에 수백만 원에 팔리는 피규어 제작자가 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아버지들이 꾸었던 꿈의 크기는 얼마만 했을까. 살아내는 것이 급선무인 현실의 무게에 눌려 애써 꿈의 존재를 부정했겠지. 어쩌면 가벼운 취미생활 정도였을 수도 있으려나. 하지만 단순 취미와 꿈을 구분하기도 어렵지 않았을까. 희미했던 것이 점점 선명해지기까지는 많은 것들이 개입하니까. 꿈 꿀 수 있는 환경, 주변의 지지, 떨쳐내야 하는 죄책감, 스스로에 대한 확신 등 가난한 사람에게는 꿈 꿀 수 있는 조건이 더 혹독한 법이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각종 농기구와 농기계를 쓸모에 맞게 개조하고 제작하셨던 아버지 또한 창작의 기질을 타고 나신 것임을 알겠다. 대표적으로, 어릴 때 수매용으로 고구마를 얇게 써는 농기계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손으로 힘껏 돌려야 하는 핸들을 경운기의 로터리와 연결하여 자동으로 돌아가게 개조했다. 그 참신하고 놀라운 효용성을 목격한 이웃 어른들도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똑같은 것을 만들어서 사용하셨다. 많은 이의 아픈 팔을 자유롭게 하였을 뿐 아니라 고구마 수매 농가의 작업 효율에 크게 기여하신 아버지는 생활 속 유익함을 실현하신 실로 대단한 창작자셨다.
나도 비슷한 기질을 타고 났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그때와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혜택으로 글쓰기라는 경제적 보상 없는 자발적 중노동을 하면서도 생계의 무게에 압도당하지 않는다. 생계가 아닌 일에 꽤나 큰 비중의 에너지를 쓰고 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뭔가를 포기할 필요도 없고, 가족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생계활동이 지겨운 나머지 어떤 기적을 바란 적은 있다. 예를 들면 출생의 비밀 같은 거. 어느 날 검정양복을 입은 사내가 나타나 00기업 비서실 000실장 명함을 내밀며 “회장님께서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라고 말한다.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그러면 “손명주 씨는 우리 회장님께서 오래 전에 잃어버린 손자입니다. 위독하신 회장님께서 유일한 후계자인 손명주 씨를 찾고 있습니다.” 라고 실장님이 말한다. 나는 다시 당황하며 “나는 회장 같은 거 할 생각 없어요. 내가 잘 아는 전문 경영인이 한 명 있는데, 김사장이라고 수완도 좋고 넉살도 좋아서 정말 경영을 잘 할 사람이에요. 김사장을 소개해 줄 테니까 나한테는 소개비로 한 100억만 주시면 안 될까요?” 라고 말한다. 그러면 실장님은 활짝 웃으며 “아! 그렇군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말한다.
한때 그런 기적을 바란 적이 있지만, 이제는 나에게 출생의 비밀 따위는 없을 거라고 확신한다. 난데없이 재벌 회장 할아버지가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가 없어진지 오래 되었다. 작은 아버지들의 노트와 범선, 그리고 아버지의 농기계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꿈 깨라. 너에게 출생의 비밀 따위는 없다. 너는 딱 봐도 우리 집안 핏줄이다.”
네네. 그럼요. 잘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