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을 앞 둔 2000년 가을. 취업 준비로 분주했다. 취업준비라고 해봐야 매일 비슷한 일의 반복이었다. 응답 없을 줄 알면서도 정성을 다해 입사지원서를 써서 보내고, 읽는 사람의 혼을 쏙 빼는 명문을 쓰겠다는 투지로 자기소개서를 수정하며 하루를 보냈다. 명예퇴직과 실업과 폐업이라는 어두운 말들이 뉴스를 꽉 채우던 IMF 시대에 신입사원을 뽑을 여력이 있는 회사는 많지 않았다. 실낱같은 희망이 될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찾아내느라 인터넷을 뒤졌고, 회사마다 제각각의 양식인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느라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매번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내가 못나 보여 좌절하고 한숨 쉬었다.
그 어느 때보다 긴 가을을 보내고 있었다. 인생에서 그렇게 위축되고 초라한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나 격렬하게 거부당한 적이 있었던가. 한 번도 의심해 본 없는 나의 쓸모를 나 스스로 의심했다. 사회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앞을 지키는 문지기는 나에게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로 열심히 채운 이력서는 단 한 줄의 여백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것만 같았다.
겨울이 시작되려 할 때, 첫 면접을 보게 되었다. 경기도 수원에 있는 어느 중견기업이었다. 그날 새벽, 수원행 첫 기차를 타기 위해 마산역으로 갔다. 어둑한 플랫폼에 서 있던 나는 춥고 떨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진한 연기 같은 입김이 나왔다. 숨 속에는 긴장과 설렘이 8대 2 정도의 비율로 섞여 있었다. 생전 처음인 면접장에서 느낄 위압감이 어느 정도일지를 상상했다. 커다란 면접관들 앞에서 덜덜 떨 게 뻔한 나는 문지기가 살짝 열어준 문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을 상상하며 긴장감을 이겨내려 했다.
키와 덩치가 비슷한 형의 양복이 내게도 잘 맞았다. 위에 뭐라도 하나 걸쳐야 할 기온이었지만 집에는 양복 위에 걸칠만한 코트가 없었다. 기차에 타고서야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코트는 필요 없어졌지만, 나에겐 여전히 많은 것이 필요했다. 더 채워야 할 스펙, 그리고 나의 쓸모에 대한 의심을 걷어내 줄 자신감.
며칠 전, 새벽에 잠을 깨어 거실에 나와 있을 때, 그때 그 마산역의 알싸한 새벽 공기가 떠올랐다. 출발을 앞두고 서 있던 그때 그 플랫폼에서처럼 희미하게 바깥이 밝아오고 있었다. 잠깐 창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바람이 내 몸을 스친 후 거실을 훑었다.
지금 나는 그때 그 플랫폼에 서 있는 것만 같다. 자영업을 그만 두고 백수가 된 지금. 그때처럼 심하게 떨고 긴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분간 다시 자영업을 시작할 생각을 못 하고 있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 나는 다시 자영업자가 되어야 한다. 곧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그 무엇도 계획하고 있지 않는 것은, 무엇을 계획하던 그 일의 내리막과 마지막과 잊힘을 먼저 상상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들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보는 내 개인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살아오면서 지금까지 마음먹고 주먹을 불끈 쥐어서 많은 일들을 해왔다. 하지만 부동산에 몰려 있는 전국의 가게 부채와 침체된 국내 경기, 작은 시장에서 나누어 먹다가 점점 소멸해가는 소규모 자영업의 뻔한 미래 앞에서는 마음먹고 주먹을 불끈 쥐어볼 마음이 안 생긴다. 무슨 일을 구상하던 미래를 미리 상상하면서 그 일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와 의미를 깎아 내리게 된다. 마치 거대한 면접관들 앞에서 느낄 위압감을 상상하며 플랫폼에 서서 덜덜 떨며 긴장했던 그때와 같이 말이다.
수원의 그 회사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인원의 절반 정도를 거르는 1차 면접은 합격했지만,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2차 면접을 위해 다시 마산역의 플랫폼에 섰을 때는 처음보다는 덜 떨렸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는 안도감과 만만함으로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리 긴장되지 않았다. 그 후, 면접을 위해 자주 서울과 경기도를 오고갔다. 곧 면접도 익숙해졌다. 점점 덜 긴장했고, 면접관 앞에서도 덜 떨었다. 그리고 마침내 면접관이 더 이상 거대해 보이지 않았을 때, 면접이 더 이상 떨리거나 긴장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 비로소 첫 회사에 최종합격을 했다. 잔뜩 긴장했던 처음과 달리 점점 몸에 힘을 빼고 말과 행동이 자연스러워졌을 때, 그때, 면접관이 건넨 질문과 농담에 재치 있게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런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그 일을 시작할 용기가 생기기를. 그리고 더 이상 내리막과 마지막과 잊힘을 상상하지 않게 되기를 말이다.
용기의 싹을 키운다는 마음으로 작은 시도들을 하고 있다. 물론 “저는 지금 이러저러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엔 너무도 작고 하찮다. 어떤 성과를 기대하거나 결과를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무기력이 용기의 싹을 짓밟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되도록 몸을 움직이고 뭔가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를 하는 중이다.
작은 시도의 경험들이 쌓여 용기가 생기게 될까. 지금의 내가 바라는 유일한 희망사항이다.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되는 것 말이다. 내리막과 마지막과 잊힘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어렵지만 내가 직접 길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투지와 용기를 갖게 되는 것, 그것이 해를 넘어가고 있는 8개월 차 백수의 새해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