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딱~ 딱딱~ 딱딱~
성인 키 만 한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귤 꼭지 따는 소리만이 천 평 남짓의 광활한 감귤 밭에 맴돌았다. 한 손에는 전용 가위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귤을 잡는다. 나무에서 귤을 따는 소리, 딱. 딴 귤의 꼭지를 한 번 더 잘라내는 소리, 딱. 귤 하나 당 꼭지를 두 번씩 잘라 낸 후 바구니에 던져 넣는다. 딱딱~ 딱딱~ 딱딱~ 이렇게.
그렇게 기계적인 작업을 반복하다가 금방 무아지경에 빠져 버렸다. 작업 전에 믹스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던 사람들은 각자 다른 감귤나무 앞에 서서 조용히 딱딱거렸다. 마치 벽돌처럼 두꺼운 문서 속 숫자들을 엑셀에 일일이 처넣는 것처럼 단순한 작업이었다.
귤 따기 알바를 다녀왔다. 민박집 청소 알바를 하다가 우연히 연결되었다. 요즘 제주에 귤 따는 인부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란다. 민박집 주인이 아는 귤 밭도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었고, 그 귤밭 주인과 통화 중에 마침 내가 옆에 있다가 연결이 되었다.
체험하러 갔다면 즐거웠을 텐데 벌이를 위해서 가니 힘들었다. 일당 받고 하는 일이니 쉬엄쉬엄 할 수는 없고, 다음에 또 부름을 받기 위해서는 숙련자의 속도를 보여주어야 했다.
이런 종류의 단순작업을 할 때마다 나는 늘 이런 일이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을 한다. 정말이다. 회사 다닐 때도 방대한 실험 데이터를 엑셀로 처넣는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집중이 필요한 시간이니 아무도 말을 안 걸고 다른 일을 시키지도 않는다. 탁탁~ 탁탁~ 탁탁~ 탁탁~. 오로지 키보드만 기계적으로 두드리면 되는 그 일이 적성에 참 잘 맞았다.
단순노동인 귤 따기 역시 적성에 잘 맞았다. 근데 굵은 가지를 헤치고 들어가 안쪽에 달린 귤까지 따른 건 좀 힘들었다. 사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 알고 보니 처음 간 그 귤밭은 가지치기가 잘 안 되어 있어서 작업환경이 엄청나게 나쁜 편이란다.
처음부터 혹독한 환경에서 일을 배운 나는 귤 따기 숙련자가 되었다고 자부한다. 거의 지옥훈련을 통해 숙달된 기술자라고나 할까. 잘 관리된 귤 밭에 가서 일을 해보니 이건 뭐 일 년 내내 귤따기를 해도 되겠다 싶더라. 제주의 귤밭 주인들이시여! 정확하고 빠른 나를 쓰려면 일당을 5천원 더 달라. 그 이상의 만족을 드리겠다.
제주 동남쪽의 밭 주인들에게 숙련자로 소문이 나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귤 수확 끝물이란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아깝다. 올해는 11월부터 서둘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