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나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by 변방의 공돌이

10명이 창업하면 9명이 폐업을 한다고 한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의 통계를 보면 자영업자의 폐업률이 꾸준히 80%에서 90%를 웃돌고 있다. 창업은 주로 요식업과 숙박업에 집중되어 있다. 거리마다 넘쳐나는 식당들과 지방 구석구석에 들어서있는 펜션들을 보면 비교적 진입장벽이 낮은 그 업종으로 자영업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식당은 소문난 맛집이 아니고서야 월세 내기도 빠듯하고, 오래된 펜션 대부분은 주말 외에는 객실이 텅텅 비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식당은 결국 문을 닫고 펜션은 폐허처럼 방치하다가 단비와도 같은 주말 손님만 겨우 받을 뿐이다. 이 정도면 한국은 자영업자의 무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런데도 창업자는 왜 매년 늘어날까.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망하는데 또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창업을 하는 것이 참 의아하다. 전문가들은 창업교육이 부재하고, 시장이 포화상태이고, 임차인을 보호하지 않는 상가임대차보호법을 폐업률이 높은 이유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좀 더 근원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내가 자영업자가 된 이유! 다른 사람들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자영업자가 되었을 것이다. 바로 직장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다.

결국 개인사유로 치환되는 수많은 진짜 퇴직사유들이 이 나라 직장인이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이렇게 죽도록 일만 하다가는 진짜로 곧 죽을지도 모를 노동 강도, 이성이 자주 실종되는 조직문화, 작은 기업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함, 학연과 지연의 법칙이 장악한 사회에 뿌리내린 온갖 불합리, 그리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근원적 물음까지 던지게 하는 지랄 맞은 회사생활.

이 나라는 직장인의 무덤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오로지 좋은 대학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 위해서 혹독한 입시의 세계로 몸을 던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취업 하나만을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의 목적이 그게 다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되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고도 힘겨운 과정을 거쳐 취업을 하고도 결국 정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중간에 퇴사를 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라면, 직장인의 상당수는 수익을 내기 힘든 곳에 엄청난 투자를 한 격이다. 학위와 졸업장을 얻느라 쏟아 부은 투자금을 회수도 못하고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모두가 직장생활에 만족하고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다면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자영업자의 길로 그렇게들 뛰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창업은 마치 깊게 패인 무덤을 박차고 나와서 그 옆에 또 다른 무덤을 파는 것과 같아 보인다. 그러니까 결국 폐업으로 귀결되는 자영업자의 상황은 버텨낼 수 없는 직장인의 삶의 또 다른 그늘일 것이다.

대전의 한 연구원에서 일하는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어느 날 회식이 끝나고 대리운전을 불러서 집으로 가다가 기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아저씨 왈, IMF때 회사에서 명예퇴직 하고 이런 저런 장사를 하다가 다 망해먹고 빚만 져서 이렇게 대리운전까지 하게 되었단다. 자기도 자기 인생 이렇게 될 줄 몰랐단다. 회사에서 쫓겨날 지도 몰랐고, 장사 하다가 망할지도 몰랐단다. 그리고 이렇게 대리운전까지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단다. 결국 대리운전이라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던 일을 하며 깨달은 것이 있는데, 그게 뭐냐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고 있는 게 돈 버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때 대출까지 받아서 어설프게 장사를 하는 대신, 모아 놓은 돈과 퇴직금을 야금야금 써가며 버텼으면 이렇게 빚지고 대리운전까지 하게 되지는 않았을 거란다.

그 아저씨의 뒤늦은 후회와 깨달음은 그 친구에게 꽤나 큰 귀감이 되었나 보더라. 친구는 죽어도 직장을 그만 두지 않겠다고,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장사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다행히 친구는 지금까지 그 결심을 잘 지키고 있다. 다 그 아저씨 덕분이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데 크게 일조하신 그 아저씨께 팁이라도 많이 드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친구야! 넌 이런 세계로 나오지 말고 거기서 잘 버티길 바란다. 그리고 틈날 때마다 그 아저씨의 재기를 빌며 기도라도 드려라. 은인이잖니!

나는 언젠가는 다시 숙박업을 시작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심하고 나서기에는 겁이 난다. 내가 그리 겁을 먹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 제주도는 숙박업소가 이미 포화상태이고, 다른 지방의 상황도 뻔하다. 제주도는 그나마 일 년 내내 관광객이 오는 곳이지만, 다른 지방은 주말 외에는 객실을 채우기가 만만치 않은 펜션이 부지기수다. 내가 업계에서 상위 2% 정도의 잘나가는 업소의 사장이 된다면 비수기든 경제위기든 세월의 풍파든 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의 잘나가는 업소가 될지, 그나마 주말 아니면 손님 머리카락도 구경할 수 없는 위기의 업소가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설령 내가 성공한다 해도, 그것이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성공은 누군가에게 모범 사례가 되어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똑같은 업소를 옆에다 떡하니 차릴 것이다. 그 업소가 잘 되면, 그 옆에 또 다른 벤치마킹의 우수사례 업소가 생길 것이고, 결국 나부터 차례차례 파리만 날리게 될 것이다.

돌고 도는 폐업의 사슬에서 나만 벗어날 수는 없음을 알기에 이렇게 겁을 먹고 망설이는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주체할 수 없는 긍정적 에너지가 내 몸을 휘감을 지도 모른다. 그때는 인생 한 번 살지 두 번 사냐며 과감하게 또 창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예상하지 않은 성공으로 이어질지, 역시 폐업의 사슬은 자영업자의 숙명이라는 사실을 되뇌며 후회하게 될지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다.


2년 마다 총 세 번의 폐업을 반복하고도 또 창업할 수밖에 없는 한 중년부부의 사연을 소개한 뉴스가 생각난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한 가지 목적 앞에서 그 부부는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말했다. 칼국수집을 하다가 망했으면 이번에는 백반집을 여는 수밖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생계형 소규모 자영업자의 현실이다. 마치 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저 이번엔 좀 다른 불이기를 바라며 말이다.

나는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망하지 않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는 각오가 섰을 때 그때 다시 장사를 시작하게 될 것 같다. 그때까지는 이렇게 몸을 움츠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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