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동갑이지만 극심한 세대 차이를 느낄 때가 많다. 느낌은 세대차이인데 사실은 지역차이다. 더 정확하게는 도시와 농촌의 차이.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내와 농촌에서 나고 자란 나는 경험과 정서적인 차이가 크다는 것을 자주 느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어느 날, 차를 타고 가다가 저 멀리서 아이들이 연 날리는 광경을 보았다. 하늘 높이 떠서 꼬리를 살랑대는 서너 개의 연을 보니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는 곧 어린 시절에 시린 손을 호호 불며 연 날렸던 추억을 이야기 했다. 연을 띄우기 위해 콜록콜록 기침을 해가며 뛰어다닌 이야기며, 옆에 있던 친구와 실이 엉켜서 연을 잃어버린 이야기며. 그러다가 자연스레 연 만드는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여기서 우리는 둘 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글쎄, 아내는 연을 문방구에서 샀다고 했다. 대나무와 종이와 실과 얼레가 세트로 구성되어 있는 키트를 문방구에서 사서 만들었다고 했다. 아니 연을, 문방구에서 샀다고? 깜짝 놀라는 나한테 아내는 너는 어떻게 했냔다. 우리야 직접 만들었지. 곧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이없어 하는 아내의 표정을 보며 그 시절 나의 연 제작기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 했다. 그 시절 우리들은 뒷산에 가서 대나무를 꺾어 와서 낫으로 얇게 다듬어 연살을 만들었다. 그리고 어떤 애들은 창호지를, 또 어떤 애들은 신문지를 잘라서 연살을 붙여 연을 만들었다. 이때 신문지는 중앙일보도 아니고 한겨레도 아닌 농민신문이었다. 풀도 없어서 솥단지 옆에 붙은 밥풀떼기를 떼어 와서 썼다. 실은 어머니 반짇고리에서 갖고 왔고, 얼레는 뒷산에서 소나무를 꺾어다가 낫으로 껍질을 벗겨내고 톱으로 자르고 못질을 해서 만들었다. 그 말을 듣고 아내는 깜짝 놀라며 나를 원시인 보듯이 쳐다보았다.
그날 밤. 아내는 장모님과 통화를 하면서 나의 원시적인 연 제작기에 대해 웃으며 이야기 했다.
“엄마! 손서방이 아무래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연을 진짜로 그렇게 만들 리가 있어? 나 재미있으라고 하는 말 같지?”
하지만 아내는 장모님의 반응에 또 다시 놀라고 말았다.
“우리 때 연을 그렇게 만들었지. 너 외할아버지가 대나무 꺾어다가 문풍지 잘라서 만들어 주셨었다.”
라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아내는 충격을 받은 듯 나를 지긋이 쳐다보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할 수 없는, 다른 시대를 살아온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는 공허한 눈빛이었다.
“넌 우리 엄마랑 이야기해야 맞을 것 같아.”
이것만이 아니다. 비오는 날, 거실에 앉아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다가도 그런다. 아내는 비가 많이 오는데 엄마가 학교에 데려다 주지 않아서 서운했다는 이야기도 하고,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에 정문 앞에서 우산 들고 기다리는 엄마가 없어서 서운했던 이야기도 했다. 부부는 어릴 때 받은 작은 상처를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기도 한다. 나도 가끔 어릴 때 받은 작은 상처를 아내에게 고백한다. 서로를 토닥일 때 결혼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도 어린 시절의 비오는 학교 풍경을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비가 많이 오면 비료포대를 뒤집어서 구멍을 세 개 내서 쓰고 다니는 아이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맨 위에는 머리를, 양쪽으로는 팔을 꺼내면 조끼 우비가 되는 것이다. 뭐 아이들 전부 그랬다는 건 아니다.
아내의 눈은 다시 공허한 빛을 발사하며 어이없어 했다.
“참나! 말이 되는 소릴 하셔야지. 아예 검정 고무신도 신고 다녔다고 하지 그래. 책은 보자기에 싸서 메고 다니지는 않았나보지?”
나는 눈빛이 흔들렸다.
진짜로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닌 아이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이랑 도시락을 보자기에 싸서 등에 메고 다닌 아이도 있었다는 말은 차마 못했다.
역시 그날 밤. 아내는 장모님과 통화를 하며 한국 근대사의 한복판에서 자란 듯한 남편의 성장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장모님과 일치하는 시점. 검정고무신, 보자기 가방 등등.
통화를 마치고 나를 보는 아내의 눈빛은 공허하다 못해 심각했다.
너! 혹시 고려시대 때부터 산 도깨비냐?
아내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 결혼 10년 차쯤 되니, 이제 아내는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도리어 재미있어 한다. 나무를 자르고 깎아서 굵은 철사를 대서 썰매를 직접 만들어서 탔다고 할 때도, 산비둘기랑 꿩을 잡아서 먹었다고 이야기 할 때도, 이제 아내는 내 이야기를 할머니가 해주는 옛날이야기처럼 흥미롭게 듣는다. 그리고 가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심심한데 옛날이야기나 하나 해봐.”
그러면 나는 또 신나서 아버지가 쟁기를 채운 소를 끌고 지나간 밭고랑에 붙어서 고구마를 파내던 시절 이야기를 한다. 아내는 또 빵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