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을 한지 거의 일 년.
문 닫은 그 민박집에 특별한 의미와 기억들이 많다. 생애 첫 자영업이었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이기도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의 대부분은 사람에 대한 것이다. 안 좋은 기억을 준 사람도 분명 몇 명쯤 있었지만, 누가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이제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좋았던 사람은 얼굴도 기억할 정도로 기억이 선명한 편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싫은 건 잊히고, 좋은 것만 남는 것이 기억이라는 것일까.
아쉬운 것도 많다. 이것 역시 첫 자영업이었기에 미숙했던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서 가장 아쉬운 게 하나 있는데 그건, 지금은 문 닫고 없어진 그 민박집의 이름이 브랜드로서 어떤 가치나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걸 키우고 영역을 넓혀가지 못했다.
이런저런 사업을 구상하다보니, 브랜드 하나를 만들어서 키우는 게 얼마나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인지 알겠다. 생업 현장에서 벗어나 몇 발짝 뒤에 서서 본지 일 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그때 당시, 시골마을에 차린 작은 민박집이었지만 나름 성공적이었다. 타겟층도 잘 잡았고, 손님과 우리 사이에 정서적인 교집합도 많았다. 우리는 손님을 진심으로 대했고, 매년 재방문 손님이 늘어났다. 우리는 그걸 보람으로 여겼다. 그리고 그 보람을 힘으로 민박집을 계속 꾸려가고 싶었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저 시골마을에 차린 작은 민박집이었고, 그런 보람들로 오래 유지할 수 있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처음 해보는 장사여서 우리는 육체적, 감정적으로 에너지 조절을 못했고, 사소하고 별 거 아닌 일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어떤 신호를 계기로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폐업 자체가 아쉬운 게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런 시간을 필요로 했고, 지금 이 시간을 나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중이다. 단지 7년 동안 열심히 운영한 그 민박집의 이름을 별 거 아니라고 여긴 것이 지금으로서는 무척이나 아쉽다.
폐업 후에 불황이 더 깊어지는 것을 보면, 그 이름을 지키고 더 반짝이게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우리가 운영했던 민박집에 쌓인 7년이라는 시간과 그 이름의 가치를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는 언제나 짧은 시간에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버린다. 수익성 좋은 농작물이 결국 밭 채로 갈아엎거나 폐기해야 하는 천덕꾸러기가 되기까지는 몇 년이 걸리지 않는다. 수요가 많으면 공급자가 늘어나는 게 당연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수요는 조금 늘어나다가 말지만, 그 후에도 공급은 끝도 없이 늘어난다. 시장성은 그렇게 짧은 시간에 상승하다가 단 몇 년 만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듯이 하락한다.
그것이 생계형 소규모 자영업자가 맞이해야 할 운명이라면, 기가 막히는 감각으로 소위 치고 빠지는 걸 잘하던가, 아니면 조금씩 영역을 확장하며 브랜드를 키워가던가 둘 중에 하나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지금, 그때로 돌아간들 내가 어떻게 뭘 할지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그건 참신한 아이디어 몇 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조금씩 천천히 해나가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으로선,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과 내 가게의 이름이 가진 가치를 높게 여겼어야 했는데, 라는 아쉬움이 들뿐이다.
사실 나는 나를 너무 업신여긴다. 그게 문제다. 기준이 너무 높다보니 내가 하는 일은 늘 하찮다고 여겨진다. 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할 게 뻔하고,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과정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소꿉장난처럼 여겨진다.
특히 글을 쓸 때 그렇다. 집필노동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내 작품의 성적표는 늘 소꿉장난 같다. 지금까지 출간한 작품을 모두 합치면 글자 수가 대략 50만 자가 될 것 같다. 거기에는 20만 자쯤 되는 장편소설도 포함되어 있다. 이건 엄청난 일이다. 근데 나는 이게 딱히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하는 일은 다 힘들고 대단하니까. 버스운전으로 가족들 먹여 살리는 것도 엄청나게 힘들고 대단한 일이다. 청소부도, 공무원도, 농부도...... 세상엔 엄청나고 대단하지 않은 일은 별로 없으니까. 그래서 나의 집필노동이 만든 결과물들이 딱히 대단하다거나 엄청나다고 생각하질 않았다.
근데, 사람이 하는 일은 다 대단하고 엄청나다고 생각하면서 왜 내 작품은 소꿉장난이라고 여겼을까.
지금까지 나에게는 타인과는 다른 잣대가 적용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 엄청나게 높은 기준을 정해놓고는 아무리 애를 써도 거기에 못 닿는 나를 능력이 부족한 작가로 취급했다.
민박집 이름의 가치를 가벼이 여긴 것이 지금에야 아쉬운 것처럼, 나를 부족한 작가로 취급한 것 역시 나중에 후회할 거다. 내가 몰라주는 나의 가치를 대체 누가 알아주겠느냔 말이다.
지금까지 내가 쓴 작품들! 그건 엄청난 거다.
그리고 우리의 민박집, <마리의 당근밭> 역시 대단한 거였다.
언제, 어디가 되었던 그 이름을 부활 시킬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