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 되기

그렇게 영글어 간다.

by 손묘

잠깐의 외출에도 강렬한 태양빛에 팔뚝은 익어버리고 이내 간지러워진다. 팔뚝이 간지러워진다는 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뜻이다. 벌써 한 해의 반이 훌쩍 지났다. 올해가 반이나 지나는 동안 열심히 공들여서 잘해보고자 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결혼식'이었다. 너무 잘하고자 했기 때문인지 충분히 잘하지도 즐기지도 못했다. 남편과 나는 2024년 5월 초여름의 따뜻함과 뜨거움 사이에 문경의 한 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우리의 결혼식은 기차역과도 한참 떨어져 있는 문경의 어느 한정식 식당에서 진행되었다. 불편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결혼식장으로 고른 이유는 그곳의 아름다운 외관 때문이었다. 그곳은 ㄷ자 구조의 한옥으로 되어 있는데 그 중앙에는 잔디 마당이 있고 마당의 끄트머리에는 장독대들이 줄지어 있는 멋진 곳이었다.


맑은 하늘 아래 고풍스러운 기와지붕과 그 아래를 장식하는 장독대, 잔디밭은 예스러움을 보여주었고 나비를 부르는 예쁜 꽃 장식들은 그날 하루만을 위한 것으로는 아깝게도 매우 아름다웠다. 산뜻한 사랑 음악이 결혼식장에 흘러나오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발걸음을 움직여 우리의 결혼식에 참석해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결혼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우리가 헤어질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기 전까지 우리는 7년 가까이 장거리 연애를 지속해오고 있었는데 장거리 연애가 힘든 것을 서로 깊게 공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그만할 결정적인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대구와 경기도를 오가는 장거리 연애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다.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돈은 돈대로 들었다. 주로 남편이 나를 만나러 왔는데 그는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금요일 늦은 밤 혹은 토요일 이른 아침에 나를 만나기 위해 4시간 가까이 기차를 탔다.


매달 드는 기차 비용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매번 KTX를 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남편은 끊어두었던 막차를 취소하고 월요일 새벽 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곤 했다. 그때는 그때만의 설렘과 추억이 있지만 우리가 정말 힘들었다는 것도 잊을 수는 없다. 매번 만날 때마다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과 왕복 8시간이 걸리는 지치는 기차 탑승은 남편과 나에게 작지 않은 고통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 고통을 지속해서는 안 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대구에 살던 내가 경기도로 이사를 가기로 한 것이다. 대구에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지만 앞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컸다. 남편이 대구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내가 경기도로 올라가게 된 것은 상당히 현실적이 이유에서였는데 상대적으로 소득이 적고 고용이 불안정한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이사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당시에 나는 꽃장식을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내가 하는 일은 장례식의 빈소를 장식하는 꽃장식을 만드는 일이었다. 의미 있는 일이었고 나와도 잘 맞았다. 얼굴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누군가의 떠나는 마지막 길을 장식하는 일은 죽음에 대해서도 항상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곳의 사장님은 정이 많은 분이었다. 운치 있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상시에 자신의 일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자부심 중 하나는 빈소에 사용되었던 꽃을 재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일이 바로 꽃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었다. 문학도 그림도 AI가 대체할 수 있지만 꽃꽂이만은 AI가 해낼 수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100% 동감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그와 나는 어디까지나 고용 관계였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도 잘 맞았고 대구에서 오래 살았던 터라 아쉬움이 컸지만 결정이 난 이상 사장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사장님을 찾아가 나의 이사 계획과 퇴사에 대해 말을 꺼냈다. 대구를 떠나 경기도로 이사를 가게 되었으며 아마도 멀지 않은 미래에 결혼을 할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가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비썩 마른입에 담배를 문 채였다. 그는 먼저 아쉽고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현민아. 꼭 꿈을 이루어라. 그게 뭐든. 아니면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 되는 거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그의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사장님의 말이 내 귀에는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라니? 내가 아줌마가 된다는 생각 자체도 충분히 낯선 것이었지만 그가 말하는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라는 말의 어감이 정말 이상하게 들렸다. 그것은 기분 나쁘게 들렸다는 것과는 좀 다른데 말 그대로 좀 이상하게 들렸다.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가 된다는 건 삶이 불행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그렇고 그런'이라는 말이 내게는 '평범한'이라는 말로 들렸는데 평범하다는 건 모든 면에서 무난하다는 뜻이고 그것이 요즘 같은 시대에는 행복을 의미하지 않나? 평범하게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어렵고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온 나에게 사장님의 말은 예사처럼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그의 말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사실은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가 되기를 좀 많이 바랐다. 살면서 항상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어려웠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이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아줌마'가 '집에서 아이를 돌보며 집안일만 하다가 세상 물정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사는 여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누군가는 불행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충분히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아줌마'는 집에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집안일에 마음을 쏟을 수 있으며 세상 일에 치여 살지 않으며 여유 있어서 이런저런 다양한 분야에 빠삭한 아줌마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되고 싶은 '그렇고 그런 아줌마'이다. 하지만 그냥 그중에서도 내가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미움보다는 사랑에 가까이 사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을 오래 길게 느끼고 표현할 줄 아는 아줌마가 되고 싶다. 가족과 친구들과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식에게 돈이 최고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돈보다는 사랑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를 가지는 평범한 아줌마 말이다.


사장님의 말씀처럼 꿈을 이루어서 뭐 하나라도 대박이 나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게 되더라도 나는 여전히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가 되고 싶을 것 같다. 나는 그냥 그렇고 그런 아줌마, 내 남편은 그냥 그렇고 그런 아저씨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살아가며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평범한 삶이지만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함께 사랑하며 영글어가는 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삶이자 결혼을 선택한 이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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