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언제부터 아끼며 살았을까?

by 손묘

가족이 모이는 명절에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배가 부르고 누군가는 꼭 커피를 찾는다. 우리 가족에게 커피 타임은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우리 가족은 대부분 커피를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사촌오빠와 나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촌오빠와 나는 가족들의 커피 주문을 받고 주문받은 커피를 사러 카페에 다녀온다. 가족이 많기 때문에 인원수대로 사지는 않고 몇 잔만 사서 함께 나눠먹는데 그러고 있으면 할머니가 조심스레 다가와 물어보신다.


“이기 뭐라?”

“할머니, 커피예요.”

“커피를 그래도 파나? 그렇게 해가 그기 얼만데?”

“4500원이에요.”


할머니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지고 4000원이 넘는 커피값에 질색하신다. 그리고 그런 커피를 사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분노한다. 그리곤 남기는 한 마디.


“하이고... 골 빗네. 그런 거 사 먹는 사람들 다 골이 빗써. 다 골빈년이라.”
“돈이 남아돈다. 그런 거를 사 먹고.”


알뜰한 할머니에게는 밥값이나 다름없이 비싼 돈을 주고 영양가라고는 없는 커피를 사 먹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할머니의 알뜰함은 가족에게 이미 익숙한 것이었는데 할머니는 쌀 한 톨을 흘려보내는 것도 아쉬워하셨다. 나는 매년 설날, 추석 때 할머니집에 방문하면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들을 몰래 처분해 왔는데 눈치 빠른 할머니는 내가 쓰레기통에 버린 것을 그대로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그렇게 무엇이든지 아끼고 아꼈던 할머니의 손녀인 나는 밥만큼이나 그런 비싼 커피를 좋아하는데 그런 면모는 할머니 앞에서 들어내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아셨다면 아마 나는 귀에 피가 날 정도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할머니는 그렇게 아끼면서도 절대로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것은 아끼지 않았다. 할머니와 통화를 할 때면 꼭 아침은 먹었는지, 점심은 먹었는지, 저녁은 먹었는지 빠지지 않고 물어보곤 하셨다. 고작 밥 한 끼가 뭐라고 왜 이렇게 매번 물어보실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그만큼 할머니에게는 매일의 끼니를 챙겨 먹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할머니는 아침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셨는데 아침은 할머니에게 유독 더 특별했던 것 같다. 그것은 할머니의 건강 원칙이었고 할머니는 자식들이 모두 아침을 먹기를 바랐다. 밥은 돌아가시던 순간까지도 할머니가 움직일 수 있게 해 주었던 원동력이었다.


할머니가 유난하게 밥에 집착하는 모습이 나에게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할머니는 자식들이 먹고 있어도 계속 먹으라고 했고 이쪽에 있는 것을 먹으면 저쪽에 있는 것을 왜 안 먹지 않느냐고 하고 저쪽에 있는 것을 먹으면 이쪽에 있는 것은 왜 먹지 않느냐고 그랬다. 자식들이 잘 먹을 때 좋아하셨고 너무 많이 먹어서 힘들어하면 소화제를 주고서는 쉬었다가 또 먹으라고 하셨다. 먹으려고 사는 것도 아닌데 너무하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왜 먹는 게 시원찮나?”

배가 불러 밥을 뜨는 속도가 느리면 꼭 이 말을 하셨다.


“더 무”

더 먹으라는 뜻이다. “더 무”는 할머니가 정말 많이 하시는 말씀이었는데 잘 먹는다 싶을 때는 꼭 이 말을 해서 먹는 것에 더욱 불을 지피셨다. 이러한 할머니의 밥에 대한 남다른 집착과 근성이 어디서 온 것인지 생각해 보았다. 젊었을 때 할머니는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무엇을 팔았냐는 나의 질문에 고모와 큰아버지가 동시에 입을 열었다.


“다.”

고모가 말했다.


“못 파는 거 빼고 다 팔았어.”

할아버지는 돈을 벌어다 주지 않았으므로 그 모든 몫은 할머니가 짊어져야 했다.


“느그 할애비는 자슥들 용돈 한 번도 안 줬어.”

할머니는 다음 생에 태어나면 할아버지 같은 사람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면서도 할아버지를 살뜰히 챙겼다. 할아버지가 미우면 대충 챙긴다거나 헤어져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할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속으론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힘들고 더딘 날에 인생을 한탄하거나 슬퍼하는데 치중해서 보내지 않았고 그 시간을 알뜰하게 가족들을 챙기는데 쏟았다. 할머니만이 알고 있을 그녀의 감정은 가슴속에 묻어 둔지 모르겠다. 여자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은 그녀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그녀만의 삶을 내가 어떻게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할머니의 속사정에 대해 몰랐던 어린 시절에는 그런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고 가끔은 할머니가 온몸으로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가 너무 많은 가난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독히도 아껴서 남보다 더 많이 가지겠다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거나 하는 원대한 꿈이 있다기보다 그저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으로 버텨온 세월이었다. 오래돼서 벌레가 꼬인 국수면을 버리지 않고 자식들에게는 새 국수를 끓여주곤 자신은 벌레를 걷어낸 오래된 국수를 먹었다. 할머니의 삶은 늘 그런 식이었다.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챙겼고 그것도 자식에 대해서라면 뭐든 쉽게 희생되었다. 지고지순한 사랑이었다.


할머니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그녀가 왜 아침밥을 꼭 챙겨 먹는지, 왜 이렇게 끼니에 집착하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달고 썼던 인생은 밥으로 시작해서 밥으로 끝난 것만 같다. 눈 뜨면 밥을 차렸고 눈을 감을 때까지 밥을 차렸다. 그 음식은 가족에게로 향했고 그것은 분명 사랑이었다. 음식은 그녀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중에 하나였고 그녀가 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행복이었다. 그녀에게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던 이유는 누군가를 굶겨죽이지 않기 위해 싸워왔던 이유였다. 그녀의 냉장고 속에는 누군가를 먹여 살리기 위해 항상 먹을 것이 가득했다. 매번 비슷한 메뉴였지만 맛있었고 할머니가 94세가 되는 날까지도 그 맛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한 점은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었다.


내게 할머니처럼 살고 싶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그렇지만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녀만큼 가득했던 사랑을 마음 가득 품고 살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당연히 그렇다. 내가 닮고 싶은 점이 바로 그런 점이었다. 언제든 나누어줄 수 있는 그런 가득 찬 사랑을 품고 싶다. 하지만 할머니와 다르게 행복을 위해 6000원짜리 커피도 기꺼이 사 먹을 것이다. 나는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기꺼이 돈을 투자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더 욕심내는 삶을 살 것이다. 그것이 할머니와 나의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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