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를 한 마리씩 죽여 박멸시킨 가족이 우리 가족 말고 또 있을까?
20대 중반에 여행을 좋아했던 나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여행을 떠나곤 했다. 젊고 가난했던 나는 저렴한 숙박업소와 교통수단을 종종 이용하곤 했었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언제 인지 알 수 없게 옮겨 붙어 버린 빈대가 나를 따라 집까지 오게 된 일이 있었다. 빈대 때문에 한동안 몸 고생, 마음고생을 해야 했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빈대가 쉽게 떨어지지 않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빈대는 피를 빨아먹을 때 모기처럼 얌전하게 한 군데만 먹고 배가 불러 떠나가는 게 아니라 핏줄을 따라 부지런히도 여러 군데를 빨아먹는다. 게다가 빈대 물린 곳에는 모기 물린 곳보다도 훨씬 강한 가려움을 생기는데 그것은 살점을 뜯어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더군다나 빈대는 모기처럼 한 철 지나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박멸되기 전까지는 계속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한 번 옮겨오면 집 안의 가구를 전부 교체하고 벽지까지 새로 바꾸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벽지, 바닥, 이불, 옷 어디든 살게 되니 말이다. 나로 인해 시작된 빈대와의 전쟁은 우리 가족에게 엄청난 고생과 스트레스를 가져다주었다.
처음에는 이 가려움과 고통의 원인인 빈대를 박멸하기 위해서 안 해본 일이 없다. 온갖 빈대가 싫어한다는 냄새가 나는 것을 두거나 약을 뿌리거나 심지어 연탄불도 피워보았다. 모든 침구류를 물세탁하는 것은 기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강한 생명력을 가진 빈대는 사라지지 않았고 문제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더 괴로운 것은 키위 씨앗만 한 사이즈의 작은 빈대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어 다녔는지 처음에는 내 방에서만 나오던 것이 안방에도 나왔고 그리고 또 며칠 후에는 큰방에도 나왔다. 그들은 부지런하게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었다.
나로 인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고 근데 또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서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러다가 생각과는 다른 전개를 맞게 되었는데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도 해결되지 않자 우리 가족은 빈대를 죽이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빈대에게 물리기만 하다가 언젠가부터 우리 가족은 빈대를 잡기 위해 밤을 되기를 기다렸다. 빈대는 낮에는 나오지 않다가 밤이 되면 나와 왕성한 포식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새벽 2시쯤에 알람을 맞춰두었다가 우리는 각자의 방에서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빈대를 하나씩 눌러 죽였다.
이러한 단순한 방식으로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 빈대를 어떻게 다 죽이나 싶겠지만 신기하게도 이 방법은 통했다. 우리 가족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었던 빈대를 눈앞에서 확인 사살시켜 나갔다. 처음에는 ‘이게 가능하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나서야 이 방법이 확실하게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가능할 것 같던 빈대 박멸의 꿈이 우리 가족이 한 마음 한 뜻을 품자 이루어졌다. 우리 집에는 더 이상 단 한 마리의 빈대도 나오지 않았다.
빈대가 모두 사라진 지금에야 그때를 추억하며 웃어넘기지만 당시의 고통과 스트레스는 우리 가족에게 보통이 아닌 수준으로 다가왔었다. 매일 밤 새롭게 추가되는 빈대 물린 자국에 대해서는 어딘가에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그것을 극복했고 단 한 마리의 빈대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우리 가족이 정말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주어진 난관 앞에 이토록 집요하고 정확하게 뭉쳐서 해내는 마음이 우리 가족에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 나오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사라지지 않던 빈대가 가족의 힘으로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인터넷에는 눌러 죽인다는 사람은 찾아본 적이 없었는데 그것은 우리 가족만의 방법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그런 위기를 수없이 극복해 온 만큼 우리 가족은 부단히도 살아왔다. 부단히도 열심히 일하고 부단히도 열심히 존재했다. 빈대를 박멸한 건 우리가 부단하게 열심히 존재하며 조용하고 단단하게 서로를 붙들며 살아온 결과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도 어려워하고 낯설어하는 우리 가족이지만 그러면서도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단단하게 지켜올 수 있었던 건 부지런히 노력해 왔던 모두의 마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삶의 결과물이자 증명이었고 가족의 저력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잊을 수 없는 빈대와의 나날들, 그날을 추억하며 가족의 저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