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추억하며...
2022년 3월 나는 이사를 했다. 내가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가기 위해 이제까지 야금야금 지어왔던 공간을 순식간에 무너트렸다. 그렇다. 허무는 것은 정말로 순식간이었다. 단단해 보이던 집이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느껴졌다. 언젠가는 허물어질 걸 알았으면서 뭘 그렇게 열심히 가꾸었나... 허탈하고 섭섭하고 아쉬웠다.
내가 살던 곳은 여태 혼자 살았던 집 중에 가장 오래 살았던 곳인데 그곳은 대구에 있는 한 빌라 건물이었다. 그곳은 꾀죄죄하고 더러운 3층짜리 건물이었는데 여름에는 집 앞에 커다란 바퀴벌레가 득실거리고 수많은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딱히 내가 좋아할 구석이라고는 없는 곳인데 왜 그곳을 나올 때는 많은 생각이 들면서 울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을까? 단지 오래 살았기 때문이었을까?
꾀죄죄한 집이라도 나에게는 집이라는 공간이 정말로 소중해서 주어진 공간을 돌보고 가꾸는데 진심을 다했다. 돌보고 가꾼다는 말이 인테리어를 멋지게 한다거나 좋은 가구를 사서 채워 넣었다는 말이 아니라 집안의 가구들을 적절한 곳에 배치하고 동선을 짜고 내가 움직이기 편하게 물건을 두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집안 곳곳에 먼지가 쌓이지 않도록 꾸준히 청소하고 관리해 주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간을 돌보고 가꾸어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만의 즐거움이었다. 혼자살 때 나의 그러한 독점적 취미를 늘 함께 공유할 수 있었던 건 고양이 산이 뿐이었는데 산이는 내가 가구의 위치를 바꾼다거나 청소를 할 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조금이라도 바뀐 곳은 찾아가 꼼꼼히 냄새를 맡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관심을 표현했다.
그곳에서의 나의 삶은 거의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풍족하지 않았지만 내 의지대로 살 수 있었고 자유로웠다. 고양이와 나 둘 뿐이라서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그게 편했다. 자유로웠기에 더 추억이 많고 공간에 애정이 갔다.
그곳의 작고 오래된 냉장고는 음식을 충분히 시원하게 만들지 못했지만 나는 그곳을 열심히 채워 넣었고 책장 겸 화장대였던 천 원짜리 공간박스들은 내가 모은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었는데 그게 그런대로 멋졌다.(그 당시의 나는 대체로 멋진 것을 좋아했다.) 나와 고양이 산이는 그곳에서 평화롭고 행복했다. 조용한 행복이었다.
지금에 와서 그곳을 다시 보고 싶고 그곳의 싱글 의자에 앉아 보냈던 평화로운 오후를 다시금 만끽하고 싶어졌다. 그 시절 조금이라도 더 젊고 활기찼던 나의 고양이를 보고 싶고 맨바닥에 이불 두 장이었지만 아늑했던 옛 이부자리에 누워보고도 싶다.
하지만 그렇게 아꼈던 공간은 내 손에 무너트려졌고 이제는 그곳을 다시 볼 수 없다. 그곳이 정말 그립지만 누군가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지금은 나에게 더 소중한 삶과 공간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그때처럼 모래성을 쌓듯 공간을 가꿔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그때의 그 공간이 다시 생각난 것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살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 그 순간의 내가 갑자기 그리워졌기 때문이다. 그립고 소중한, 지금은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는 우리의 공간을 조용히 추억해 본다. 작지만 아름다웠던 나의 공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