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에 대한 사색

'불행히도 동물을 사랑해'

by 손묘

어렸을 적부터 당연히 동물을 좋아했지만 당연히 고기를 먹었다. 아이러니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랑하지만 먹는다? 그것은 순리였지만 어쩌면 불행한 모순이기도 했다. 그런 나는

불행히도 동물을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6년 전쯤에 우연히 한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는데 그 활동으로 인해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활동은 팀으로 나누어져 진행되었는데 우리 팀에는 유난히 동물을 좋아하고 그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대화는 동물과 그들의 권리에 대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시의 나는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실상에 대해서는 잘 몰랐는데 그 활동을 계기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공장식 축산의 잔인한 실태라든지 돼지들을 산 채로 땅에 묻어버리는 잔인함이라든지 암컷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영문도 모른 채 잔인한 방식으로 죽임을 당하는 수평아리라든지, 비인간 동물을 물건처럼 대하는 모습에 대해 알고 나니 인간 존재에 대해 치가 떨리고 화가 났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동물에게 어떠한 해도 입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우리가 동물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고 그들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공장식 축산의 잔인함을 알면서 공장에 납품되는 고기를 사 먹고 알을 낳기 위해 A4용지 한 장도 안 되는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닭의 사정을 알면서도 그 계란을 사 먹는 행동이 비인간적인 행동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 후로는 고기를 제대로 먹을 수 없었고 육식을 멈췄다. 고기를 조금도 먹지 않는다는 게 순리를 거스르는 행동처럼 느껴졌지만 그 후로 나는 당분간 고기를 먹지 않았다.


당연히 한순간에 고기를 먹던 사람이 먹지 않는다는 건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서서히 육식을 줄여나갔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당시의 나는 인간의 잔인함에 대해 치를 떨면서도 나 자신에 대한 위선적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는데 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진행했던 프로그램에서 나와 같은 팀이었던 한 사람의 조언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사람은 생선을 먹는 채식주의자였는데 나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물어보았다.


‘환경을 사랑하지만 환경을 해치지 않고는 살 수 없고 동물을 사랑하지만 동물을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데 이런 내가 환경과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요?’


그 사람의 대답은 이랬고 이 대답으로 말미암아 나는 조금의 죄책감을 덜 어버릴 수 있었다.

윤리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 완벽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조금이라도 노력을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채식을 하는 것 같아요.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거든요.


그 이후로 나는 2년 정도 붉은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채식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다. 채식을 하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야채를 싫어하지 않았고(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었다.) 알록달록한 야채를 색깔별로 사다 놓고 신선하게 자주 챙겨 먹는 것은 내게 소소한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고기를 먹지 않고도 많은 요리를 해 먹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채식을 한다고 해서 미각의 즐거움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채식을 하는 것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선 설거지할 때 기름이 심하게 끼지 않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 몸에도 기름이 끼지 않으니 속이 편안하고 소화가 쉬웠고 몸이 가벼웠다. 부족한 단백질은 두부나 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로 채웠고 기름은 참기름 들기름과 같은 것으로 채우니 건강한 느낌이 들었다. 몸이 가벼우니 기분도 상쾌해졌다.


다만 불편한 점은 회식을 하거나 남들과 함께 밥을 먹을 때 메뉴 정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었다. 바깥에서 사 먹는 메뉴 중에 고기가 빠져 있는 메뉴가 없었고 일부러 고기가 없는 메뉴를 먹고자 하면 선택권이 너무 줄어들어 메뉴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채식을 한다는 사실을 남에게 밝히는 것도 처음에는 좀 별나게 느껴져서 말하기가 어렵고 피곤했는데 조심스럽게 그 사실을 이야기하더라도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채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건강을 걱정해 주는 부류와 채식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부류였다.


채식하는 것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반응은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어서 당황스러웠고 그런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했다. 내가 채식을 한다는 사실이 상대방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2년 동안의 채식 생활은 나에게 크고 작은 기쁨이었다. 건강하고 깨끗하고 맑은 느낌이 들었고 동물을 더욱 깊게 사랑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후에는 다시 예전의 식습관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채식을 그만두게 된 건 단순히 사는 것이 너무 바쁘고 힘들어져서였다. 삶에 치여 살다 보니 내 입에 들어가는 것을 신경 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채식을 하는 것이 힘들어 지금은 포기했지만 그 뒤에 '동물의 권리를 어떻게 하면 지켜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여전히 계속해서 머리를 맴돈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해답은 지속적인 관심과 그것에 대한 결실로 이루어진 크고 작은 노력일 것이다. 그 노력은 고기 위주의 식습관을 바꾸는 것일 수도 있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여보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동물에 대해 그저 공부해 보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동물을 사랑하는 나는 바쁘고 힘들어도 이 불행한 모순을 좀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스스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알아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알고자 하면 보이고 보고자 하면 느낄 수 있고 느끼고자 하면 행동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은 관심과 노력이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러한 에너지가 모여 세상을 조금 더 좋은 방향으로 바꾸어주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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