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식재료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계란이 정말 좋다. 계란은 요리로서 응용도가 매우 높다. 세계 어느 나라 요리에도 잘 어울리고 구워 먹어도 삶아 먹어도 맛있는 계란이 좋다. 계란은 냉장고에 식재료가 떨어졌을 때 치트키이고 요리할 때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냉장고에 항상 있어야 하며 떨어질 때마다 비축해두어야 하는 식재료이다.
계란을 고르는 기준은 계란의 신선도나 종류보다는 늘 ‘가격’이었다. 가격 혹은 그 가격에 상당하는 크기. 마트에 진열되어 있는 계란 중 가장 크면서도 저렴한 것을 고르는 것은 내게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은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계란은 언제나 마트에 진열되어 있고 계란에 붙어 있는 한 두 개의 깃털만이 어미닭이 계란을 낳았음을, 그것이 생명의 연장선에 있음을 짐작하게 할 뿐이다. 마트에 진열된 계란을 보고 출산의 고통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미닭이 낳아 잘 품으면 생명이 될 존재가 아니라 식재료인 계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계란에 적혀 있는 숫자와 문자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이 숫자와 문자는 계란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첫째로 가장 먼저 나오는 네 개의 숫자는 날짜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다섯 개의 숫자+문자는 생산자 고유번호이며 해당 계란이 어느 농장에서 탄생했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숫자는 사육환경번호인데 총 1~4까지 총 네 가지가 있다.
1번 : 야외에서 자유롭게 방목
2번 : 실내 축사지만 비교적 넓은 공간에서 생활
3번 : 개선된 케이지에서 사육
4번 : 좁은 케이지에서 밀집시켜 사육
(케이지 한 칸의 크기는 약 50cm*30cm으로 한 칸에 6~8마리의 닭이 함께 사육, 한 마리의 닭에게 제공되는 공간은 A4 한 장보다도 작으며 국내 산란계 농가의 95% 이상이 이 방식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내가 어느 계란을 고르는지에 따라 닭의 자유가 결정된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계란을 구매할 때 닭의 자유를 위해 매번 기꺼이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속으로는 좁은 케이지에서 낳은 계란을 사 먹는 것이 사실은 인간적이지 못한 일인 것 같다고 생각해도 지갑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동물 복지 계란은 너무 비싸다. 4번의 방식으로 낳은 계란을 유통하고 판매하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4번 계란을 계속해서 소비할 것이다.
모든 닭이 넓은 공간까진 아니어도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 적당한 공간에서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마음껏 날개를 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동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위선적이게 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닭이 인간으로 인해 좁은 공간에서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그러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면 불편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론 나의 이익을 버릴 수 없어서 1번, 2번 계란 대신 3번, 4번 계란을 구매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을 하는 것조차도 닭의 입장에서는 어이없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닭의 입장에서 인간은 1,2번을 사든 3,4번을 사든 계란을 빼앗아가는 존재일 뿐일 테니까.
계란을 살 때마다 이 30개의 계란을 낳았을 닭에 대한 미안함과 인간으로서의 죄책감이 동시에 든다. 또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위치한 덕분에 누리고 있는 많은 이점을 그냥 누리기만 하고 사는 것이 인간적인 건지, 혹은 조그마한 마음이라도 닭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서 동물 복지 계란을 사 먹는 것이 인간적인 것인지, 혹은 죄책감을 느껴서 계란을 먹지 않겠다고, 열악한 환경에 노출된 닭이 낳은 계란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만이 인간적인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