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결혼의 전말
남편이 결혼 전까지 숨긴 사소한 사기행각들
연애 때 치킨 먹으면서 남편이
자긴 퍽퍽 살 좋아한다길래
'나는 닭다리살 좋아하는데!
우린 천생연분이구나!' 생각했다.
결혼한 지 한참 뒤에야
자기도 닭다리살 좋아한다고
울컥하며 항변하기 전까지
정말 남편이 퍽퍽 살만 좋아하는 줄 알고
닭다리살은 권하지 않았다.
결혼 전에는 잘 보이려는 마음에
제2의 자아로 자신을 속이고 나까지 속였겠지만
결혼한 후엔 더 이상 잘 보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남편은 본연의 자신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남편이 사기 친 것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남편은 결혼 후 숨 쉬듯이 방귀를 뀌어댔다.
가끔은 숨 쉬는 것보다 더 자주 꼈다.
하도 자주 껴대서 '대장에 용종이 많으면 방귀를 많이 뀐다더라.
용종 검사 좀 해서 떼내라.' 근거 없는 조언을 하기도 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라
이제는 익숙한 배경음악이 됐지만
신혼 때만 해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연애하는 6개월 동안 남편이 데이트 중 방귀를 뀐 적이
단 한 번도 없음'을 상기하며 충격에 빠졌다.
이쯤에서 미스터리 하나.
남편은 과연 방귀를 조절할 수 있단 말인가?
신체 기능인 방귀를 자유자재로 조절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연애 땐 철저하게 속였단 말인가? 만약 조절할 수 있다 쳐도 괘씸하다. 그렇다면 결혼 후엔 조절할 의지가 전혀 없는 것인가!
남편의 방귀가 소리만 우렁차고 냄새가 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그 반대였으면 우린 진작 각방을 썼을지도 모른다.
남편의 방귀는 이쯤에서 넘어가자. 지나치게 잦은방귀로 속옷의 엉덩이 부분이 제일 먼저 헤진다는 사실을 쓴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 밖에도 사기 친 것들은 다양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첫 소개팅 자리에서
'자율 출퇴근제라서 늦게 출근하고 야근도 별로 안 한다'며
'자율 출퇴근제'드립을 친 것은 아직도 괘씸하다.
결혼 후 알고 보니 새벽같이 출근하고 야근은 밥 먹듯이 했으며 가끔 토요일에도 출근했다. 지방 출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자신이 둘째 아들이라며 둘째의 메리트를 엄청나게 강조하더니, 맏아들처럼 알뜰살뜰 부모를 챙기는 둘째 아들이었다.
효자 아들은 결혼하기 전에는 참 좋다. 내 남편이 아닌 다른 집 남편이면 더 좋다.
신혼 초에는 효자 아들이라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는데 애가 둘인 지금은 자연스럽게 자기 가정을 더 우선시하게 되었다. 효자 아들이 왜 싸움의 원인이 되는지는 기혼이신 분들이라면 별도의 설명이 없어도 아실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하도 무심해져서 시어머니가 만날 때마다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 키워봐야 남 좋은 일 시킨다'며
하소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한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아주 흡족하다. 원가정이 아닌 독립한 가정을
우선시하는 건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그 밖에도,
내가 스포츠광인 남자는 별로라 했더니, 스포츠에 전혀 관심 없다고 했던 점이 있겠다.
결혼 후 알았다. 야구 광팬이라 야구모자가 쌓여있고 시즌별로 야구경기를 챙겨봤으며
응원하는 야구팀이 따로 있다는 걸.
해외 음악을 즐겨 들었던 나는, 연애 때 같은 음악적 취향을 가진 사람을 만난 걸 행운이라 여겼다.
알고 보니 장단만 맞추고 맞장구만 친 거였다! 남편은 아이돌들의 개인 멤버 이름을 다 꿰고 있을 만큼
아이돌을 좋아하고 케이팝을 즐겨 듣는다.
연애 땐 세상 근엄한 사람인 척 폼을 잡더니,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이렇게 촐싹거리는 푼수 떼기인 줄은.
매 순간 장난을 쳐서 어쩔 땐 초등학생 아들과 사는 것 같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 정도면 귀여운 사기 아닌가요?'
그 말도 인정한다.
하지만 결혼 후 낯선 남편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연애 때 내가 사귄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언젠가 남편의 사기결혼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하는 글을 쓰리라 다짐했는데 드디어 결실을 보게 돼서 기쁘다.
해야 할 일을 끝마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