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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Jul 21. 2023

불확실한 날들을 살고 있다면, 읽어볼 책.

(feat. 책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


https://www.music-flo.com/detail/episode/148873

(FLO 팟캐스트에서 추천책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들으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란 책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책이다. 인용된 문장을 읽고 너무 매력적이어서 파도타기 식으로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부제는 '과도기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색하는 아름다운 지적 여정'이다. 과도기를 아름다운 지적 여정이라고 표현하다니! 흔히 과도기를 좋은 의미로 해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다.



 항상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때때로 답답했는데, 이 책이 이러한 내 심경을 심심찮게 달래주었다. 더불어 무언가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도 좀 벗어날 수 있었다.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필사한 페이지가 21페이지에 달한다. 도대체 어느 부분을 생략하고 축소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난다. 필사한 내용들을 전부 공유할 순 없겠지만, 가슴을 울린 좋은 문장들을 최대한 소개해 드리고 싶다.



 불확실한 상태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우리는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고, 잘못된 결정을 할까 봐 두려워한다. 너무 무리수를 두는 건 아닌지, 아니면 너무 소극적으로 임하는 건 아닌지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두려움을 누끼는 것은 정상적인 일이다. 두려움은 우리의 주의력이 고양되었다는 표지다. (...) 그러므로 문제는 두려움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두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다 보니 두려움이 우리를 마비시킨다는 사실이다.   p.19
 우리가 지금과 다르게 살았더라면 더 나았을지는 아무도 판단할 수 없다. 우리가 가지 않은 길이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다른 선택으로 말미암아 지금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빚어졌을지도 모른다. 삶에는 늘 우연과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런 돌발 사건도 없고 일이 복잡하게 얽히지도 않는 단순하고 이상적인 상태를 상정하는 경향이 있다.   p.20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는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들이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내가 한 선택보다, 선택하지 않은 다른 옵션이 더 좋았을 거라고 가정하며,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생각하다 보면, 현재에 집중할 수 없고, 만족할 수도 없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모든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새로운 존재라면서, 우리와 같은 삶의 상황에 놓은 사람은 오직 우리밖에 없으며, 인생에서 실망스러운 결과를 만난다 해도 그것이 꼭 우리의 잘못 때문에 비롯된 것만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 오히려 스스로 계산하지 못하고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어우러짐으로써 매 순간 우리에게 행동의 여지를 마련해 준다고 했다.   p.21
 따라서 우리가 지금 주어진 수단으로 진정 노력하고 있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우리가 늘 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의 현재 상황과 화해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태도다. 불가피한 것을 받아들일 때만이 우리는 열린 사람이 되며, 아직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서도 손을 내밀 수 있다. 오늘 우리에게 불행으로 여겨지는 것이 며칠 뒤 또는 몇 년 뒤에는 행복한 섭리로, 인생의 결정적인 전환점으로 드러날 수도 있는 것이다.   p.21
 우리는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아도, 아무것도 얻지 못해도 꽃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산책을 즐기고, 친구들과 좋은 만남을 마련하는 일을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한다. 우리는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즐거움을 부가가치를 약속하는 재충전이라고, 그다음 일을 더 잘하기 위한 휴식과 회복의 일이라고 변호한다.   p.24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는 휴식조차 '재충전'이란 말로 포장하려 들면서 마음껏 그 순간을 즐기고 만끽하지 못하는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개선해야 하는 결핍상태로 보고 미래의 보상을 기대한느 한, 우리는 진정한 충만을 경험할 수 없다.  p.26
봄의 아름다움은 여름의 결실과는 무관하다.   p.29
 벚꽃은 맛난 버찌가 되기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 계절에 피어나는 것이 합당하기에 피어난다.   p.30
 아이가 아이인 것은 성공적인 직장인이나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로 세상을 경험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다.   p.32
 아이가 아이인 것이 단지 성장해서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면, 어른이 되어 사회적으로 성공할 때까지 아이의 삶은 의미 없는 것이 될 것이다.

아이가 아이인 까닭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선은 아이로 살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p.33
 어른이 어른의 잣대로써 성공적인 미래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고 아이들의 하루를 어른 시각에 유용해 보이는 일정으로 꽉 채우면, 아이들은 자기들 본연의 과제를 더는 수행할 수가 없다.  p.36

 


 이 부분을 읽으며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딸아이가 생각났다. 1학년이 된 이후로 학원이란 걸 보내기 시작했는데, 하나둘씩 늘어나다 보니, 어른이 봤을 때 생산성 있어 보이는 활동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월요일엔 태권도와 중국어 화상수업, 화요일엔 피아노학원, 태권도학원, 종이접기 수업, 수요일엔 태권도, 댄스수업... 이런 식으로 말이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원을 적게 보내는 편인데도, 아무것도 안 보내고 학교만 다니는 생활을 한 달가량 해보니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뒤처질까 봐 불안심리가 발동하여 학원을 급하게 알아봐 다니게 했던 거다.



 사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졌지만, 주어진 환경에 따라 나의 교육관은 손바닥 뒤집듯 너무나 쉽게 바뀌었다. 어른이 봤을 때 생산성 있는 일들로 아이의 일주일 일정을 꽉꽉 채우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 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학교만 보내고 아무런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는 건 오후 12시 50분에 하교한 아이와 잠자기 전까지 씨름해야 한다는 소리다. 그렇기에 학원을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아이의 뜻대로 공백 있는 하루를 보내도록 한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여하튼, 이 부분은 초등학생 딸로 둔 나에게 뜨끔한 일침을 날려주었던 부분이다.



 자기 확신과 자기 의심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으며, 불안을 피하기 위해 성급하게 차차선으로 결정하는 법이 없다. 그는 감정 상태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정말로 맞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실험하고 아이디어를 갈고닦는다. 또한 처음에 잘 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계속한다. 이것이 바로 건설적인 불만족이다.   p.111
 젊은 시절에는 종종 이런 '역설적' 성격 특성을 보이며 자기도 모르게 양극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반면, 나이 먹을수록 무엇이든지 명백하게 하고 싶은 강박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p.111



 확실히 어른이 될수록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무언가 안정적이고 확실한 상황 속에 놓이길 바라기 때문에 안전한 선택만 하게 되고 위험을 감수하려 들지 않는다. 나 또한 애매모호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꽤 답답해했던 경험이 있었다. 좀 더 확실하고 안전한 직업을 찾고 싶었다. 그럼에도 싫은 일은 죽어도 하기 싫어서, 좋아하는 일로 직업을 삼고 일할 궁리를 아직까지 하고 있다.



 많은 어른들은 불안한 삶의 상황에 불가피하게 들어가게 될 때에야 비로소 창조력을 작동한다.  p.113



 이 부분 또한 함께 공유하고 싶다.



 우리는 겉으로는 굉장히 개성을 발휘할 수 있을 듯한 인상을 주는 문화 속에서 살지만, 알고 보면 매우 사적인 일에까지 사회의 다수가 하는 대로 따르며 살아가고 있다. 특이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위화감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개인적인 의식과 감정을 지니고 있지만 집단적인 의식과 집단적인 감정의 큰 영향을 받으며 살아간다.    p.116



 우리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며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많이 다수의 의견과 환경에 휘둘리는가? 내가 한 결정이 정말 나 스스로 한 주체적인 결정이 맞는 걸까? 멈춰 서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던 문장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모든 위험을 제거할 수 없으며, 모든 불행을 막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라고 조언한다. '기본 신뢰감이 전제될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감 있게 삶을 살아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책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에서 '확신'이 있어야 삶을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삶은 완전히 통제하고 조절하기에는 너무 복합적이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삶은 늘 우리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성장의 기회를 제공한다.   p.182
 에픽테토스의 가장 중요한 충고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을 구별하라는 것이었다. 에픽테토스는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을 멈추면 훨씬 더 행복해진다고 생각했다.   p.187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바꾸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걸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 대신 바꿀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삶의 불확실성과 모순들을 인생의 기본적인 원칙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불행이나 아픔, 슬픔, 후회, 실망, 괴로움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려운 시기를 더 잘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나아가 특별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p.188
 "고생과 죽음, 고통과 운명을 삶에서 몰아내려고 하는 것은 인생에서 형태와 모양을 앗아버리는 것이다. 운명의 후려침, 그로 인한 격심한 고통 속에서야 비로소 삶은 형태와 모양을 얻는다."  p.191

- 빅토르 E. 프랑클

 

 삶이 우릴 후려치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의 연속으로 우릴 고통 속에 몰아넣고, 불확실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이 견딜 수 없이 답답하고 힘들더라도 우리는 이러한 것이 삶의 또 다른 형태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비단 우리만의 일이 아님을 알고, 스스로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책 <확신은 어떻게 삶은 움직이는가>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어떠한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두려움에 압도되어 몸을 사리는 대신, 삶을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중요한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삶을 꾸리고 살아낼 수 있는 '용기'다. 우리에게 주어진 몫을 감당해 내고 운명에 뛰어들어 이런저런 행동을 취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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