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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Jul 20. 2023

사는 게 막막할 때, 읽어볼 책.

(feat. 책 '확신은 어떻게 삶을 움직이는가')

https://www.music-flo.com/detail/episode/148872



(FLO 팟캐스트 '손나다의 이럴땐 이런책'에서

추천책과 추천음악을 함께 들으실 수 있습니다.)




 가끔 '내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 거지. 뭔가 막막하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그때 주어진 미션들을 과제하듯 허겁지겁 해치웠던 것 같다.



 사는 게 막막할 때 책은 꽤 도움이 된다. 일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한 건 비단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각기 다른 다양한 조언들을 한 책들을 무수히 많이 만나볼 수 있다. 사람은 몇 세기가 지나도 비슷한 꼴의 고민들을 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꽤 큰 위안이 된다. 



 책이 주는 이점은 또 있다. 직접적으로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는 책들도 있지만, 돌고 돌아서 스스로 자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책들도 있다.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달려들진 않았지만, 마치 '뒷걸음질 치다 얻어걸린 식'이랄까. 이 책은 이런 책이다.



 이 책을 처음 발견한 건 도서관에서였다. 누군가의 추천책도, 베스트셀러도 아니지만, 무작위로 책들을 훑어보던 중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된 책이다. 그리고 읽는 내내 너무 좋았다. 그 어떤 위로보다 위로가 되었다.



 한창 내 삶이 불확실하고 막막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이 책을 발견하여 읽었다.



 이 책에선 사람의 확신이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라고 말한다.



 최소한의 확신도 없다면 이성적 인간은 아이를 낳을 수도, 여행을 떠날 수도, 정치 문제에 대한 투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p. 26

 


다가올 미래를 알 수 없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을 때,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확신'이다.



 이 문장을 읽었을 때, '확신'은 정말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손해를 하나도 보지 않기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 판단만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모든 걸 가성비 따져 선택하고, 최대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결정한다면, 우린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할 것이다.



 결혼은 인생의 중대사이다. 요즘처럼 비혼주의가 많다 해도 아직까진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을 것이다. 평생 같이 갈 배우자를 선택하여 법의 테두리 안에서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건 '확신'없이는 불가능한 행위다.



 사실 가성비로 따지자면, 육아만큼 비효율적인 행위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모성애라고는 없는 냉혈한 엄마처럼 비치겠지만, 육아는 합리적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비효율의 끝판왕이다.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육아는 한 개인을, 아니 아이를 키우는 '부부'를 희생으로 갈아 넣는 행위다.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으로 지속되는 투입이다. 투입한다고 결괏값이 좋으리란 보장도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아이를 낳아, 육아를 하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식들을 키워낸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하다. 내가 모든 환경을 통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에서는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라.'라고 조언한다. 여러 책을 읽으면서 이와 비슷한 조언들을 만났다. 수많은 불행은 자신이 바꿀 수 없고, 통제 불가능한 것들에 집착하는 데서 나오므로, 바꿀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해도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들.



 우리 삶은 예측 불가능하고, 때론 예상치 못한 재앙과 마주치지만, 그때마다 몸을 움츠리며 두려움에 잠식당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주의하라고 이 책에선 조언한다. 우리는 막막하고 두렵지만 어쨌든 자신이 최선이라 '확신'하는 것들을 선택하며 행동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아주 최악의 선택일지라도,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두려움은 시야를 후리고 선명한 사고를 방해한다. 그래서 겁에 질린 사람은 현명한 선택을 내리지 못한다.  p.56
 상황에 따라 적절한 해결책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결정하는 것이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낫다.   p.85

 

한편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생각들이, 행동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걸 지적한다. 우리가 행동하기 위해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짐이 가벼운 사람일수록 '허공으로 점프하기'가 쉬운 법이다.

한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쌓게 되는 지식과 신념 같은 '정신적 소유물'또한 이러한 짐에 해당한다. 어떤 것이 옳다, 그르다 혹은 된다, 안 된다를 미리 재단하는 것은 새로운 해법을 찾아 나서는 길을 막아서는 강력한 브레이크가 되기 때문이다.   p.150
미지의 영역으로 떠나려는 사람은 이미 만들어진 생각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불가능해 보였다고 해서 모든 길이 근본적으로 차단되었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은 매일 변하고 있다. 어제까진 맞았던 사실이 내일부터는 터무니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p.151
 모든 것이 이미 정해졌고,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저 현실이라는 핑계에 발목이 잡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과거만 추억하며 살 뿐이다. 앞서 수디르 카카르가 말한 대로다. "행동하기 위해선 너무 현실적이어서는 안 된다."   p.151


 한편, 우리가 막막한 미래를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태도로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이 있다.


 이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은 모든 창의적 작업에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런데도 막상 어른이 되고 나면, 이리저리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불확실한 상태를 견디기 힘들어한다. 대신 확실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잘 알고 검증된 환경에서만 안정감을 느끼고, 새로운 일을 시도하기보다는 확인된 길을 가는 편을 선호한다. 하지만 '불확실하고 불분명하고 모순되는 상황 속'에서 위의 숨어 있는 창조적 능력이 발휘된다. 크납은 자신의 저서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에서 애매한 시간을 짜증 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살릴 유의미한 시간으로 받아들이고 "불확실성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p.157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도 부모는 모든 순간에 믿음을 가져야 한다. 결국 아이는 그 누구도 어떻게 되리라 단정할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성장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불확실한 길을 함께 걸어가며, 그게 길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을 때조차 아이를 지지하고 용기를 줘야 한다. 이는 확신과 불확실성에 대한 수용이 충분할 때 가능한 일이다.   p.163



 자식이 안 좋은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부모를 잠식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닥치더라도, 부모가 불안과 걱정으로 난리 쳐서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보다는, 아이가 헤쳐 나갈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딸을 키우는 엄마이자, 친정엄마의 딸이기도 하다. 부모와 자식의 역할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의 교우관계 때문에 밤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을 한 적이 있다. 이때 부모가 걱정된다고 아이를 들들 볶고, 또다시 똑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한다면, 아이는 오히려 혼자 일어서서 문제를 헤쳐나갈 자생능력을 잃을 것이다. 아이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조언은 아끼지 말아야겠지만, 필요 이상의 불안에 잠식된다면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될 거라 생각한다.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까지 덩달아 불안해하고,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이 점을 항상 주의하려 노력한다.



 반대로 자식의 입장에서도 말해보자면, 친정엄마는 걱정이 많고, 한 가지 걱정이 생기면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밤잠을 설치며 주변사람을 들들 볶는 성격이다.  최근에 주기적인 두통 때문에 정밀검사를 하기 위해 대학병원에 1박 2일 입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친정엄마가 검사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걱정하는 마음에 수차례 전화해서 안부를 확인했으며, 검사결과를 재촉하기도 했다. 지금으로선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데도 말이다.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면, 결과가 나온 뒤 그에 맞춰 대비하면 된다. 불안해서 난리 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오히려 당사자를 더 힘들게 할 뿐이다. 틈날 때마다 전화하고 찾아오겠다는 연락 때문에 결국 '제발 전화 좀 그만하세요! 나 좀 쉬게 내버려 둬요!'하고 짜증을 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앞으로 아픈 일이 있거나 검사할 일이 있더라도 철저하게 숨겨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최악의 상황이 닥칠 때, 의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인생이 언제나 뒤통수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 변수가 가득하다는 점을 자각하고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두려움에 잠식당해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걸 주의해야 한다.



 불안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이 책에서는 '글쓰기'가 꽤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그런 점에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한풀이용 징징대는 글을 써왔는데, 읽는 사람에겐 고통이겠지만, 쓰는 나로서는 '아, 나 참 잘하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는 일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힘들고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글쓰기는 치유 효과를 발휘한다.   p.189
 자신의 감정 혹은 경험을 명명하고 글로 설명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내적 거리를 만들어낸다. 경험에 사로잡히는 대신, 관점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고통을 외부에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p.190
 그저 일기를 쓰는 것만으로도 글의 치유력을 경험하고 내면의 확신을 강화할 수 있다. 약속 시간을 깜빡하거나, 서류가방이 뒤죽박죽 되거나, 열쇠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날의 짜증스러운 불운들을 글로 옮기면서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하나같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다.   p.192
 결국 모든 게 남의 일인 것처럼 한바탕 웃어버리고 말았다.   p.193
엄청난 재앙도 그걸 소재로 글을 쓰다 보면 한결 견디기 쉬워진다. 글을 쓰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와 연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 가상으로만 존재하는 미래의 독자라 할지라도 연대감은 느껴진다.   p.193
 글쓰기만큼 간단하고 시도하기 쉽고 부작용 없는 방법도 없다.    p.194



 그러고 보니 인지 심리학자인 김경일 교수님의 강연내용이 문득 떠오른다. 김경일 교수님도 불확실한 시대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으로 '글쓰기'를 강조하셨다. 여기서 글쓰기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럴듯한 글쓰기가 아니라, 그저 불행을 달래고 불행을 패턴화 하여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글쓰기를 말한다. 고통스러운 일들을 기록함으로써 더욱 단단해지고, 행복을 영위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정보를 전달하고, 소통을 하기 위한 역할뿐 아니라, 나 자신의 불행을 다루기 위해서도, 멘탈을 다잡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수단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 하면, '유머' 또한 도움이 된다고 이 책에서는 조언하고 있다. 자신의 불행을 '유머'의 소재로 써먹는 사람만큼 매력적이고 유쾌한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좀 유머러스해질 필요가 있다. 자신의 불행에 의연함을 넘어 우스운 에피소드로 활용하는 사람을 본받고 싶다.



 영국 사람들은 '희극 = 비극 + 시간'이라고까지 하지 않았는가. 수많은 짜증 나는 일에 이러한 공식이 적용된다. 당장 오늘 내 심기를 거슬리게 한 많은 일들, 예를 들어 연착한 지하철이나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 엉망진창이 된 휴가 등이 내일이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좀 참을 필요가 있다.    p.288
 달라이 라마는 여러 문제가 있음에도 유머 감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한 가지 사안을 여러 관점에서 보려고 애쓴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한 개인으로서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게" 행동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p.289
 '스스로를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 또한 유쾌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갖기 위한 필수요소다. 자신의 선호와 바람, 관심사에 전적으로 몰두하는 것은 자기 합리화 성향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자신의 걱정과 필요에 확대경을 갖다 대서 비정상적으로 크고 급박해 보이도록 만든다. 따라서 위기 상황일수록 자신만의 우물에서 벗어나는 게 좋다. 자신의 약점은 물론 불완전한 세상을 두고 웃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운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   p.289



 이 부분을 읽으면서, 자신의 문제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문제가 가장 커 보이는 오류를 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민거리는 가볍게 여기며 이런저런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의 고민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처럼 느껴지며, 필요이상으로 끙끙대며 시간을 허비한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 '덜'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앞으로 나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나는 앞으로 무얼 하며 살아가야 할지, 나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지, 불확실하고 막막한 미래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해 이 책들의 여러 조언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 미래가 막막하고 엄두가 안 나서, 우울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으며 잔뜩 움츠러 는 나와 같은 분이 계시다면, 이 책을 한 번쯤 들여다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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