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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Jul 17. 2023

슬기로운 취미생활

취미가 삶에 미치는 영향들



 취미가 많다는 건 행운이다. 내가 하는 생각의 80%는 막막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잡생각뿐인데, 취미생활을 하는 도중엔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취미를 밝혀보자면, 제일 많은 지분으로 독서와 필사가 있다. 특히 도서관에 가서 관심 있는 분야의 책들을 무작위로 골라 읽다가 보석 같은 책이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감동적인 문장들은 필사노트에 손수 적어가며 읽는다. 예전엔 시간을 아낀답시고 노트북에 타자로 쳤는데, 그게 시간을 아끼는 게 아니었다. 노트북으로 딴짓하게 돼서 오히려 시간을 버렸던 거다. 글씨를 예쁘게 쓰진 못 하지만, 노트에 쓰는 아날로그 방식이 꽤 애틋하고 맘에 든다.



 오래전부터 해왔던 미싱질(옷 만들기)도 빼먹을 수 없다. 작년 9월에 급작스럽게 강사 일을 그만둔 뒤로 한동안 미싱에 먼지만 쌓였다. 근 8개월 동안 미싱을 하지 않았다. 안 좋은 일로 일을 그만둔 터라 미싱 쪽은 쳐다보기도 싫었다. 그러다 올해 6월부터 갑자기 옷이 만들고 싶어 져서 한 달 동안 거의 9벌 정도의 반바지와 치마바지, 주름치마 등을 만들었다. 역시 잡생각을 물리치는 데는 미싱 돌리는 것이 최고다.



 운동은 살기 위해 하는 거라지만, 근력운동과 헬스장에서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다. 이건 취미라기 보단, 주기적으로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체력을 키우기 위해 하는 거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땀 흘리고 샤워하고 난 뒤의 상쾌함을 사랑하게 되었다.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때나, 인간관계로 상처받은 날, 고통스러운 날들을 기록하기 위해 글쓰기도 틈틈이 하고 있다. 한풀이용 글, 욕세이(욕 에세이)를 쓰면서 감정을 풀어내지 않았다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었을 거다. 글마저 쓰지 않았다면 멍든 가슴을 달래지 못해서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고장 났을 거다. 그 어떤 친구보다 글쓰기가 큰 위로가 되었다.



 날씨가 좋은 날엔 산책하는 것도 좋아한다.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해서 장르 가리지 않고 마구 듣는 편인데,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산책할 때 세상 행복하다. 요즘엔 너무 더워서 공원에 산책간지도 오래되었다. 산책은 뭐니 뭐니 해도 혼자가 최고다. 타인과 함께 수다 떨면서 하는 산책을 더 선호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에겐 혼자 하는 산책에 견줄 수 없다. 혼자 걷다 보면 이런저런 잡생각이 사라지고 눈에 보이는 풍경들에 집중하게 된다. 자연이 묘하게 날 위로해 주는 기분이 들어서 외롭지 않다.



 나의 또 다른 취미로 외국어 공부가 있다. 둘째 100일 무렵 너무 무료하고 도태되는 기분이 들어서 중국어 공부를 약 2년간 했었다. 중국어 성조가 너무 재밌었고, 영어보다 단순하고 쉽게 느껴졌다. 중국어 문장을 외우는 것도 재밌었다.



  HSK2,3급을 땄던 거 같은데, 점점 흐지부지되었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코로나가 터진 직후, 나 몰라라 하며 책임전가하는 중국 정부에 큰 실망을 했고, 중국인을 세계의 중심이라 생각하는 중화사상도 맘에 들지 않았다. 타인에게 민폐 끼치고도 거리낌 없이 당당한 중국인의 민족성도 싫었다.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제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중국인 선생님께 물어봤더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한다'라고 답변하는 걸 듣고 정이 떨어졌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중국어와 멀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어 자체는 매력적인 언어라 생각한다. 문화적으로 끌리지 않아서 써먹을 이유를 찾지 못해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할 동기부여가 더 이상 되지 않을 뿐. 이런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게 참 다행이다. 내가 중국인이었다면, 이런 글을 쓴 뒤 쥐도 새도 모르게 공안에게 잡혀가 실종되었을지도 모른다.



 얘기가 딴 길로 샜는데, 어쨌든 취미로 배운 중국어가 아주 쓸모없진 않은 게, 첫째의 중국어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다. (패드로 주 1회 공부, 화상수업 중)



 지금은 중국어공부 대신 영어공부를 취미로 간간히 하고 있다. 주로 앱으로 공부하는데, '케이크'와 '스픽'앱을 활용하고 있다. 영어공부는 끝나지 않을 다이어트처럼 느껴진다. 영원한 숙제 같다는 말이다. 그래도 나는 아직 반백살도 살지 않았으니, 영어공부를 해두면 언젠가 쓸모 있지 않을까?



잠시 빠져 있었던 그림 그리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한창 백드롭 페인팅과 오일파스텔, 아크릴화에 빠져서 열심히 배우러 다녔는데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의 픽업을 다니느라 하루, 일주일, 한 달이 바쁘다 보니 그림 그릴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연필그림도 그려서 인스타에 꾸준히 올렸었는데, 처음엔 1일 1 그림을 약 100일 넘게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주변에서 돌아가며 심폐소생해 주어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다.



 이쯤이면 내가 하고 있는 취미들의 목록을 거의 다 얘기한 것 같다. 앞으로 배우고 싶거나 시도해보고 싶은 취미들도 많다. 일단은 근력운동과 헬스장에서 주 3회 운동에 집중하고 있지만 체력을 좀 더 키워서 수영에도 도전해보고 싶다.



 재테크나 돈공부도 해보고 싶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돈 걱정 안 하고 자동수입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돈공부는 필수란 생각에 관련 책들을 읽고 있는 중이다. 종잣돈 모아서 투자도 해보고 싶다.



 시간이 넉넉해진다면, 그림도 다시 배워보고 싶다. 그만뒀던 오일파스텔과 아크릴화, 특히 인물화도 본격적으로 연습해보고 싶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이패드도 샀지만 썩어가는 중이다. 나는 그냥 직접 그리는 걸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아이패드의 되돌리기 기능이 무한수정을 부추기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한다.



 만약 영어를 마스터한다면, 그만두었던 중국어도 다시 배워보고 싶다. 중국인들의 마인드나 사상은 맘에 들지 않지만 중국 드라마는 꽤 재밌었다. 여기서 중국 드라마라 하면 '포청천'이나 '황제의 딸'을 떠올리는 분들도 많겠지만, 내가 말하는 중드는 현대판 드라마다. 특히 학원물, 풋풋한 첫사랑을 다룬 멜로드라마는 의외로 재밌는 것들이 많다. 드라마 곳곳에 포진된 국뽕과 중화사상을 견딜 수만 있다면, 드라마 자체는 달달하고 재밌다. 인도영화처럼 갑자기 춤추며 노래해서 몰입을 방해하는 장치도 없고 말이다. 그래도 인도영화도 재밌긴 하다. 뮤지컬적인 요소는 별로 달갑지 않지만, 어쩌겠는가. 인도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그렇게 좋아한다는데.



 영어와 중국어를 마스터한다면 스페인어도 배워보고 싶다. 그래서 세계여행도 해보고 싶다. 정처 없이 혼자 떠돌아다녀보고 싶다. 20대 내내 집순이라 집에만 박혀 있어서 해외여행이라곤 친구와 갔던 런던 배낭여행이 유일했던 게 아쉽다. 그땐 왜 집에만 있었을까? 여행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보단 집에서 혼자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지금도 그러고 있구나. 취미가 죄다 1인용 뿐이다. 남편과 같이 하는 취미? 그딴 거 없다. 자고로 취미생활은 혼자 하는 게 최고다.



 다른 분들은 어떤 취미생활을 즐기는지 궁금하다. 요새 2,30대 젊은 분들 골프를 즐겨 치시던데, 나는 당최 골프의 재미를 잘 모르겠다. 친정 부모님이 골프를 즐겨하셔서 내가 중학생일 때 스크린 골프장인가 연습장에 데려간 적 있는데, 더럽게 재미없었다. 엄마는 사위와 딸과 같이 골프 치고 싶다는 희망사항을 간직하며 틈날 때마다 골프를 배우라고 부추기고 있지만, 왜 어른들은 모든 걸 자식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여행도 함께 가고 싶어 하고, 취미생활도 함께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취미는 혼자 하는 게 최고다!



 삶이 무료하거나, 인생의 낙이 없거나, 지금 처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잊고 싶거나, 쓸데없는 잡생각을 물리치고 싶다면, 슬기로운 취미생활을 추천한다. 누군가는 '원씽'과 '몰입'을 강조하며 하나의 취미를 깊게 파는 걸 권장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취미로 돈벌이를 하기 위해 궁리하거나 전문가가 되려는 욕심을 버린다면, 취미는 우리 삶에 쏠쏠한 유희거리가 될 것이다. 날 행복하게 해주는 취미를 여러 개 갖는다는 건 남들보다 더 다채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불행한 사건들로부터의 정서적 면역력 또한 길러줄 수 있다.



 여러모로 취미는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 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취미들을 많이 만드시길 추천드린다. 기왕이면 아주 많이! 문어발식 취미생활은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날 기쁘게 만들어줄 것이다. 당신의 슬기로운 취미생활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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