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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Jul 15. 2023

아프거나 고달프거나 무료하거나

고통을 대처하는 자세

 


 6인실 병실에 입원했다.



 서른아홉의 나 빼고 다들 할매들이다. 각자 다른 아픔으로 입원했지만 같은 공간에 교집합처럼 모여있다.



 링거를 맞춰서 링거를 맞고, 저녁을 줘서 저녁을 먹었다. 양치질을 하고 간단한 검사를 하고 병실에 돌아왔지만 할 게 없다. 가져온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었다. 핸드폰도 할 게 없다. 


저녁으로 나온 병원밥. 남이 차려준 밥은 다 맛나다.



 불특정 다수의 할매들이 돌아가며 방귀를 뀌어댄다. 내 옆자리  사람은 새벽까지 심하게 코를 곤다. 새벽 5시가 다 되도록 심하게 코를 골아서 주변 할머니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한 할머니가 참지 못하고 간호사에게 잠을 못 자겠다며 항의를 해보지만 직접적으로 따지는 사람은 없다. 간호사는 놀랍도록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하긴, 환자를 깨워서 코 골지 말라고 주의를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코 고는 건 본인의 의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나처럼 소음에 민감한 사람은 밤을 꼴딱 새야 한다. 새벽에 혈압을 재러 온 간호사에게 귀마개를 요청했더니 가져다주었다. 깨어있는 날 보고 한숨도 못 잤냐며 간호사가 걱정 어린 말투로 물어봐줘서 감사했다. 잠자리가 바뀌고 여러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커튼 칸막이에 의지해 잠을 청해야 하는 건 여러 변수가 존재한다.



 이렇게 사소한 것들에 몰두한다는 건, 아직 엄청 아프지 않아서인 거니까 나는 행운아인 걸까. 세상엔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 평소엔 잊고 살지만 병원이란 공간에 들어오면 새삼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싶다.



 어쩌면 나는 그동안 근근이 아프긴 했지만 큰 병치레 없었으니 행운아다. 나이가 들수록 몸이 망가지고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누군가는 아프지 않으려고 열심히 운동하고, 누군가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고 한탄하고 세상을 원망한다. 나처럼 '살기 위해 운동하고, 가끔 글로 징징거리며 한탄글을 써대는 사람'도 있을까.



 인생살이 자체가 고통이고, 고통을 벗어나면 권태롭다. 삶은 고통과 권태의 연속이란 쇼펜하우어의 말을 상기해 보면, 고통스럽다고 억울해하거나 울적해할 필요가 없다. 원래 이런 게 삶이니까.



 물론 이 와중에 행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행복은 없다. 어쩌면 인간이란 동물 자체가 행복을 못 견디는 걸지도 모른다. 좀 살만하다 싶으면, 또 다른 고민거리를 만들어 몰두하고, 자신을 괴롭히기 일쑤니까.



 대체로 몸이 건강하면 이런저런 고민거리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평온하면 몸이 고장 난다. 마음이 괴롭다 보니 몸까지 병나는 경우도 있다. 정말 웃기는 삶이다. 고통이 창작의 소스가 된다는 게 심심한 위로일까. 어떤 대작은 고통받는 와중에 탄생한다.



 나는 아직 하수라서 고통 속에 놓여있으면 징징거리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고통 속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본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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