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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대가 되니 친구들이 사라졌다.

고립된 사십 대의 하루

by 손나다

사십 대에 들어서면서 격하게 느끼게 된 점이 있다. 바로 사람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는 거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각자 사는 방식과 환경이 달라지고, 가치관도 변하다 보니 서로의 접점을 찾기가 힘들다.


대화를 해도 공감하기 힘드니 점점 같이 있는 시간이 아깝고 만나는 것도 귀찮아져서 자연스럽게 만남의 횟수도 줄어들게 된다.


친구가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라 얄팍하고 좁은 인간관계였는데 그나마 있던 지인이나 친구들도 각자 사는 게 바쁘다 보니 주기적으로 만나는 건 사치고 오랜만에 하는 연락조차 부담스럽다. 혹시나 안부차 인사를 했다가 만나자고 할까 봐 걱정돼서 연락을 미루고 미루다 보니 연락이 끊겼다. 그나마 연락하던 친구도 약속을 잡을 때마다 아이가 아프거나, 아니면 친구가 아프거나, 이런 식으로 약속이 미뤄지다 보니 다시 약속 잡기도 조심스럽다.


그리하여 정신 차리고 보니 나의 인간관계는 죄다 단절됐다. 허울뿐이던 지인들은 물론이고, 수영 단톡방도 죄다 나와버려서 수영 지인 또한 없어졌고, 그나마 친했던 친구들은 각자 살기 바빠서 일 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다 보니 자연스레 소원해졌다.


마치 외딴섬처럼 나의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하루하루 충실하게 내 몫을 하며 아이들 육아하느라 정신없어서 다른 인간관계에 쏟을 에너지가 바닥나 있었다.


아이들 등교시키고 삼삼오오 모여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엄마들 무리를 보며 수다 떨 수 있는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는 그분들이 부럽다가도, 인간관계를 맺으며 야기되는 각종 갈등과 상처 등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생각해 보면, 역시 혼자 있는 편을 택하게 된다.


오전에 수영할 때는 수영하는 사람들끼리 모임도 몇 번 가졌지만 처음의 설렘과 달리 점점 선을 넘고 호구조사를 하고 자주 모임을 가지고 회비를 걷으려는 모습을 보고, 아 역시 적당한 거리가 제일 좋구나,라고 깨달았다.


수영 오전반을 저녁반으로 바꾸고 수영 단톡방들도 죄다 나와버렸다. 스스로 고립을 자처해 혼자 있다 보니, 가끔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쓸데없는 인간관계로 마음고생하고 에너지 소모하느니, 혼자 있는 게 맘 편했다.


문득 '마흔 살, 그 많던 친구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란 책 제목이 떠오른다. 이 책의 저자도 나와 비슷한 구간을 지나고 있는 걸까?


가족을 챙기기에도 벅차서 그 외의 시시콜콜한 관계를 챙길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가족 외의 관계에 힘을 쏟는 대신 방치해 버린다. 관계를 맺고 쌓아나가는 건 어렵지만 관계가 끊기는 건 한순간이다. 장기간 물을 주지 않는 관계는 시들게 마련이다.


혼자 있음으로써 심적 편안함과 자유를 얻은 대신 외로움을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 가끔 너무나도 외로운 순간들이 문득 찾아오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대체로 혼자인 시간들에 만족하기에, 오늘도 지금의 상태에 익숙해지는 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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