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지금의 내 모습만 겪은 지인들은 내가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지금처럼 활발한 성격도 아니었고 사회성도 제로였다. 내향적인 성격이라 다수의 친구들보다 단짝 친구를 선호했는데 단짝인 한 명의 친구에게 의존도가 커서 그 친구와 멀어지면 친구가 없었다.
학기 내내 점심때 밥을 혼자 먹은 적도 있다. 반 전체에게 투명인간이 된 기분이었다. 땅 속으로 가라앉아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았다.
체육시간에 같이 짝지어 연습할 친구가 없어서 발아래만 쳐다보았고, 쉬는 시간에 다들 매점을 가거나 친구들과 수다 떨기 바쁜데 나는 수다 떨 친구가 없어서 그림을 그리거나 자는 척했다.
중학생 때 난생처음 가는 소풍 전날, 같이 놀던 친구들 무리와 싸워서 누구와 소풍을 가야 할지 도시락은 누구랑 먹어야 할지 전날 엄청나게 걱정했고 상담 선생님께 상담했던 기억이 난다.
공감능력이 없는 엄마에게 '내일 소풍날인데 같이 놀던 친구들과 싸워서 같이 소풍 갈 친구가 없다'라고 털어놓았는데 '얼마나 찌질하면 같이 갈 친구 하나 없니?'란 엄마의 말에 겨우 친구 문제로 걱정하던 내가 찌질하게 느껴져 차갑게 식었던 상처의 기억도 있다.
그땐 친구가 전부였지만 교우관계가 마땅치 않았고 의지할 친구 하나 없었다. 언젠가 운명적인 소울메이트가 나타나길 기다렸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엄마조차 공감해주지 않아서 정서적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지금은 엄마와 잘 지내지만 가끔 그때 엄마의 답변이 생각나 아직까지도 가슴 한편이 저릿하다. 그때의 한심해하는 투의 눈빛과 표정, 말투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마 엄마는 기억조차 못 하리라.
어느 타로카드 점괘에서
'마음의 상처를 너무 어릴 때부터 받아와서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다'
는 리딩 결과를 들은 적이 있다.
'아주 어릴 때에는 외로움도 많이 탔고 인간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는데 마음의 상처를 너무 어릴 때부터 받아와서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다. 어릴 때부터 인간관계에 통달했고 사람에게 큰 기대도 없고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다. 외로움을 안 타는 게 아니라 외로움에 너무 익숙해져서 외로움도 모른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방법을 어릴 때부터 깨닫고 성인이 돼서는 무뎌졌다. '
리딩을 듣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의 학창 시절을 너무나도 잘 함축해 놓았기에 소름이 돋았던 한편,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로를 봐주는 그분께 위로받은 느낌이 들어 감사했다.
왜 왕따를 당한 걸까?
내가 적극적으로 친구를 만드려고 노력하지 않아서? 초등학생 때 전학을 자주 다녀서 친구 사귀는 방법이 능숙하지 않아서? 낯을 가리느라 모두에게 친절하지 않아서? 성적도 좋지 않았고 외모도 찌질했던 뭐 하나 볼 것 없는 아이여서 친구들에게 친해질 필요를 못 느끼게 해서? 좀 더 타인을 배려하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서?
오랫동안 내 성격적 결함 때문에 왕따를 당한 거라고 생각했다.
초중고를 같이 나온 친구에게
'내가 왕따를 당한 게 내 성격적 결함 때문이었을까?
무슨 이유였다고 생각해? 솔직하게 말해줘.'
라고 묻자
그 시절엔 돌아가며 왕따 시키는 게 유행이었다고, 나의 왕따 경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자신이 당한 왕따의 기억을 이야기했다.
또 다른 동창에게 묻자
기본적으로 학구열이 과열된 동네에서 우리가 학교를 다녔고, 우리가 다니는 학교의 학생들이 이기적이고 싸가지가 없다고 다른 학교에서 소문이 자자했다고 했다.
이런 말들을 듣고 있자니 여러 방식으로 날 위로해주려고 애쓰는 동창들의 노력이 고맙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내 성격적 결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왕따의 기억을 숨겨왔다.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던 그 시절의 막막함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각자의 아픔의 경중을 따질 순 없겠지만, 나의 아픔만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던 때가 있었다.
모두들 남모를 아픔을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간다.
어쩌다 다른 이의 상처를 목격할 때면 흔한 위로조차 건네기 망설여진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겪지 않은 타인의 상처는 막연하게만 느껴진다. 더듬어 짐작할 뿐 겪기 전까지는 온전히 알 수 없다. 그저 타인의 상처를 보고 나의 상처를 대입해 떠올릴 뿐이다. 그분의 상처의 고백을 목격하며 나도 용기 내어 상처를 커밍아웃해본다.
이렇게 상처를 커밍아웃함으로써 상처를 뒤로 할 수 있기를. 상처도 내 일부분이기에 완전히 떼어내려는 대신 함께 가지고 가되 이제는 희미한 기억이 되기를. 상처를 받지 않으려 몸 사리는 대신 삶의 일부로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용감하게 털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