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

테이커(taker)를 가려내기

by 손나다

며칠 전에 친구에게 아이들 옷을 만들어 선물했다.

원피스 한 벌과 간절기에 간단하게 입을 누빔 재킷 2벌을 만들어 보냈다.




8월 말부터 친구 딸내미에게 옷 만들어 선물해 주겠다고 했는데 9월에 안 좋은 일 겪으면서 멘탈이 나가서 한 달 동안 방황하고, 그 이후엔 특유의 게으름과 미루는 습관 때문에 무작정 불안해하며(?) 시간을 허비했다. 인스타 스토리에 놀러 간 거 올릴 때마다 그 친구에게 눈치가 보이고 나도 모르게 압박감을 느꼈다.




10월 둘째 주에 드디어 만든 옷들을 택배로 보냈다. 택배는 허무하게도 하루 만에 갔다. 이 친구는 선물을 받자마자 너무나도 고마워하며 착샷 사진들을 마구 보냈다. 민망할 정도로 감사인사를 여러 번 했다.



기구로 단추뚫는 중


베풀기 좋아하고 선물하기 좋아하는 나의 성격상, 종종 지인들에게 아이 옷을 만들어서 선물로 보내거나, 자비 출판한 내 책들을 보내곤 했다. (몇 달 전에 자비 출판으로 에세이 책 나옴) 그럴 때마다 감사인사를 전하는 사람도 있었고, 택배를 받았다는 택배 문자가 왔음에도 택배를 받고 감사 인사조차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인간관계는 주고받는 기브 앤 테이크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이야길 많이 들었지만, 꼭 하나를 내어주면 하나를 받고자 선물한 건 아니었다. 무언가를 베풀 때 본인이 좋다고 선물해 놓고 상대에게 괜히 기대하지 말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최소한 선물을 받았을 때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 그 마음만으로도 너무나도 뿌듯하고, 덩달아 감사하게 된다. 하나를 선물하여 상대가 고마워하면, 두 개, 세 개 선물하고픈 게 내 마음이다.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었을 때 감사 인사는커녕 받는 걸 당연시하는 테이커 (taker : 상대에게 받기만 하는 사람)에게 일일이 상처받을 필요도 없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솔직히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건 그릇이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 간의 최소한의 예의이자 도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겐 더 이상 잘해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어찌 보면 테이커를 가려내는 방법은 너무나도 쉽다. 무언가를 베풀었을 때 자기 또한 무언가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 하물며 주지 못해서 안타깝고 미안해하는 마음만이라도 충분하다. 하지만 상대의 호의를 당연시하고 더 취하려는 모습을 보면, 더 이상 그 사람과 인연을 이어갈 마음이 사라지고 그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게 된다.




사실 미싱을 하면서, '옷 그거 그냥 쓱 박으면 되는 거 아냐?'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옷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지인들이 많았다.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별로 친하지 않은 편이었는데, 부탁은 쉽게 했다.)




그들은 만들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미싱이 얼마나 중노동인지. 사이즈에 맞춰 패턴을 베끼고, 재단(천에 패턴을 대고 그리는 것)을 하고 가위로 자르고, 미싱으로 박기까지의 전 과정에 엄청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미싱은 정말 가성비가 나쁜 일이다. 요즘같이 싼 옷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서, 핸드메이드 옷을 만든답시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서 옷 한 벌을 만든다는 건 아무리 봐도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미싱을 배워서 옷을 만들 줄 아는 내 능력이 감사하다. 이렇게 지인들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옷들을 만들어 선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마워하고 좋아하는 지인들 모습 보면서 뿌듯한 건 덤이다.



보내온 착샷 사진들


왜 진작 만들어 선물하지 않았는지,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 원피스를 만들 땐 주름잡느라 힘들었고, 아우터를 만들 땐 전체 바이어스를 두르느라 고생했지만, 친구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의 수고로움을 상쇄할 만큼 충만함이 차오른다.




더불어 그 친구에게 감사하고 싶다. 힘들 때 몰두할 숙제를 던져줌으로써, 힘든 마음을 잊을 수 있었다. 선물을 당연시하지 않고 민망할 정도로 여러 차례 감사인사를 전하고, 고마워해 줘서 내가 더 고맙다. 착샷 사진도 마음껏 보내줘서 고맙다. (옷을 만들어 선물한 뒤 제일 뿌듯할 때가 착샷 사진을 받을 때다. 궁금해서 착샷 사진 좀 보내달라고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며 끝내 보내지 않은 지인도 있었다.) 무엇보다 고맙다며 치킨 쿠폰을 보내줬는데 이게 제일 고맙다. (농담!)




더 이상 내 에너지를 갉아먹고 상처를 주는 테이커들에게 정성을 쏟지 말자. 일찌감치 눈치채고 손절해버리자. 그 대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나의 이 잔재주가 내 지인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서, 또한 테이커들을 가려낼 수 있는 요긴한 도구로 쓰일 수 있어서 감사하게 되는 하루다.





keyword
이전 11화사람이 싫어질 때 극복하는 9가지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