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딸둘맘의 '첫사랑의 기억'

당신의 첫사랑의 기억은 무엇인가요?

by 손나다


결혼을 앞둔 모 여배우는 행복에 취해 지금의 사랑이 '첫사랑'이라 했지만, 나는 그런 보기 좋은 빈말은 추호도 할 생각이 없다. '첫사랑'을 이미 초등학교 1학년 때 뗐음을 담담히 고백해본다. 정확히는 '처음 해본 풋내기 사랑'이었다.




최근 사랑 에세이를 출간한 작가님의 작업실에 놀러 갈 계기가 있었다. 작가님들과 '사랑'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하다가 문득 첫사랑의 그 애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희멀건한 피부에 눈웃음을 잘 짓는 이름도 특이한 남자애였다. 그 애 덕분에 난생처음 비밀 일기장을 썼던 기억이 난다. 일기장에는 그 애와 관련된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조차 큰 의미부여를 한 글들이 가득했다.




그땐 좋아한답시고 초콜릿이며 각종 선물들을 조공해 바쳤는데 마지막 선물은 하모니카였다. 내 용돈을 다 쏟아부어 그 아이에게 틈만 나면 선물을 사주었다. 이러한 초등학생의 애정행각이 재밌어 보였는지 엄마는 가끔 선물을 직접 사주기도 했다. 그 당시엔 그런 일방적 형태의 애정밖에 몰랐다.




그런데 그 아이는 어떠한 확답도 주지 않은 채 눈웃음을 살살 쳐가며 내 선물들을 받아갔고 계속 희망 고문했다. 어린 나이에 남의 호감을 이용하여 자신의 실속을 챙겼던 그 애의 영악함에 감탄할 뿐이다.




스무 살 때 싸이월드를 통해 다시 만난 사진 속 그 애는, 내 기억 속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역시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을 때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애에게 감사한 점들도 있다.




- 마치 식물에게 매일 물을 주듯, 일방적인 나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도록 꾸준히 기회를 준 점.


- 누군가에게 애정을 쏟아 부음으로써 무료했던 나의 학창 시절을 다채로운 색으로 기억될 수 있게 한 점.


- 어린 나이에 사람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게 해 준 점.




그 뒤로 눈웃음치는 남자를 믿지 않게 됐고 정반대 타입의 남편을 만났다.




(눈웃음치는 남자를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살던 대로 살아가는 관성 때문인지 완벽하게 취향을 버리진 못한 것 같다. 남편의 '옆으로 힐끔 쳐다보다 눈 마주치면 안 쳐다본 척 허공에 대고 눈웃음치기'를 어쩌다 볼 때면 내 취향의 일부가 아직 이런 식으로 남아 날 괴롭히는구나 싶어 흠칫 놀라게 된다. '이건 내 취향이 아니야' 현실 부정하고 싶어 진다.)




애절하고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 대신, 이런 풋내기 일방적인 짝사랑도 첫사랑의 대열에 끼워줬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내 일부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가슴 아픈 첫사랑의 기억이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에겐 그런 기억이 없다. 완벽한 첫사랑은 수많은 예술작품을 통해 대리 만족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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