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추석 연휴에 친척 오빠가 몇 달 전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며 펑펑 울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혈연관계인 친척들 중 그나마 가까운 편에 속했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처음 겪었다.
슬픔보다는 충격이었다. 아직까지 충격으로 얼얼하다. 만나지는 않더라도 근근이 생사 여부를 확인하며 각자 늙어가는 존재라 확신했던 대상의 난데없는 죽음이라니.
그의 죽음은 그의 삶만큼이나 허탈했다. 극적이거나 드라마틱하지도 않았다. 너무나도 허망했다.
그는 큰아버지의 아들이었다. 아버지 쪽 친척이었는데 어릴 때 시골 큰집에서 만나고 학창 시절에 얼굴 본 뒤로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게 아마 2~3년 전 큰아버지의 생신날 다 같이 모였을 때였을까.
그는 단 한 번도 마음껏 자신의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항상 엄격하고 잘 나가는 아버지의 등살에 기도 못 펴고 눈치만 보며 살았다. 착하고 여린 심성이었던 그는 사회생활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무슨 직업을 가졌었는지 정확히 들은 바가 없다. 항상 무기력하고 주눅 들어있는 모습만 기억난다. 그를 한심하게 여긴 큰아버지는 그를 집에서 빈손으로 내쫓아 버렸다. 그의 가장 큰 비극은 양육태도가 일관성 없는 부모를 만난 것이었다. 엄격하고 지나치게 통제적인 아버지와 모든 걸 허용해주는 어머니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다.
아버지가 뒤늦게 독립심을 길러주려고 내쫓으면 어머니가 몰래 집을 얻어주고 장을 봐주고 용돈을 주는 식이었다.
그가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마다 거센 반대에 부딪쳤다. (이점은 나의 학창 시절과 비슷하여 이 부분만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진다. 그는 부모에게 반항할 배짱조차 없었다.)
몇 년 전 동거하던 여자가 있었는데, 키가 작단 이유로 부모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헤어졌다. 내가 부모였다면 변변치 못한 내 아들을 사랑해주는 여자가 있다니 감사한 마음과 함께 잘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거다. 하긴 자식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부모는 드물다.
아들이 데리고 온 여자가 부모의 눈에 차지 않고 자식 인생 말아먹을까 봐 말리고 싶어도, 결국 데리고 살 사람은 자식이고 결정 또한 자식의 소관인 게 맞다. 설사 여자를 잘못 골라 자식의 앞날이 꼬일 게 눈에 훤히 보여도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만든다면 평생 원망을 받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그는 모든 걸 체념한 듯 완전히 무기력한 모습이었다. 그의 죽음의 이유를 여기서 밝히고 싶진 않다. 이렇게나마 그의 몇 남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켜주고 싶다. 그의 죽음을 겪으며 경미한 우울감을 느꼈다.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안 좋은 습관에 중독되고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의 죽음이 일상을 뒤흔들 만큼 치명적으로 슬프진 않았지만 우울감을 가져왔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더불어 자식을 먼저 앞세워 보낸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침통할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친척 오빠만큼이나 큰아버지의 삶 또한 비극적이다.
친척오빠의 비극적인 생애를 짧은 글로 풀으며 그의 죽음을 애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