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중에서-
나태주 시인의 ‘풀꽃’ 시를 읽으며 문득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신혼 때엔 이쁨 받으려는 마음에 무리해서 잘 보이려 애쓰다 병나고,
산후조리 때엔 서운하고 미운 감정들뿐이라 시어머니의 표정, 말투, 제스처, 습관, 행동 등 모든 것들이 보기 싫었고 원망스러운 마음이었다.
더불어 ‘돈도 잘 벌고 용돈도 잘 주는 큰 형님’과 비교하며 서로를 견제하게 하고 무한 경쟁을 시키는 시어머니가 미웠다.
시어머니에게 이쁨 받고자 하는 의지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은 형님(아주버님의 아내)과 서로 잘 지낸다.
(알고 보니 형님에게는 내 칭찬만 하며 비교했다고 한다. 칭찬은 지금 내 앞에 있는 대상에게 칭찬할 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 7년 차에 들어선 지금은 시어머니가 밉지도 좋지도 않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 애틋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미친 듯이 싫지도 않다.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아 괜히 남편을 들들 볶고, 시어머니가 2박 3일 다녀가면 시어머니의 언행으로 되새김질하며 한 달 넘게 우는 날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그 시절이 아득하게 멀게만 느껴진다.
일단 치열한 싸움(?) 끝에 서로의 예민한 부분은 건들지 않게 되는 조율 과정을 거치기도 했지만, 나의 대응 방식이 좀 더 효율적으로 바뀌기도 했다.
한 번씩 시어머니가 기억에 남는 한 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예전처럼 앞에서 애매하게 웃음으로 때우며 뒤에서 남편을 잡지 않는다. 잡아봤자 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킨다는 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착한 며느리가 되지 않고자 마음먹으니 잘 보이려는 노력을 멈추게 되었고, 스스로 관계의 을을 자처하지 않게 되었다.
속상한 말을 들으면 몇 날 며칠 끙끙 앓으며 남편을 잡고 시어머니를 미워하는 대신, 말을 들은 즉시 맞받아쳤다. 물론 며느리의 말대답을 듣고 입을 다문 시어머니의 심정은 정확히 모른다.
당돌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고, 순간 본인이 실수했구나 멈칫했을 수도 있다. ‘얘는 건들면 피곤한 애’라고 여겨 조심하게 될 수도 있다.
중요한 사실은 말대답을 한 이후 그 상황을 잊게 되었다. 예전처럼 곱씹으며 끙끙 앓지 않는다.
시어머니의 말실수 -> 즉각적인 말대답 -> 잊어버리기
할 말을 하니 필요 이상으로 억울한 감정도 안 들고 가정의 평화는 덤으로 찾아왔다.
돌이켜보니 시어머니의 발언이 불공평하게 느껴졌음에도 말대답 못하고 참느라 울분이 쌓였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은 할 말을 하고 살아야 한다.
그러면 지금은 시어머니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거냐고 묻는다면, 핑계 같겠지만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정신없이 연년생 육아를 하며 지금까지 달려와서 남편 지분도 2~30%를 웃도는 마당에 하물며 한 다리 건너의 시어머니에게 많은 관심을 갖기란 어려운 형편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이 상황이 마음에 든다.
가끔 시어머니가 ‘아들 키워봤자 소용없다. 키워봤자 남 좋은 일만 시킨다.’고 한탄할 때마다 흡족한 마음으로 듣고 있다가 그 한탄이 몇 차례나 계속되면 한마디 던진다.
(여기서 ‘남’은 며느리임을 눈치 없는 사람도 알아차리리라 믿는다.)
‘그건 딸도 마찬가지예요. 성인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면 원가정에서 벗어나 자기 가정에 충실하는 게 당연한 거예요.’
그 소리를 들은 시어머니는 입을 다문다.
자식은 본인의 대리만족이나 트로피가 아니다.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는 소유물도 아니다. 효도받기 위해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없으리라 본다. 이건 어느 부모나 경계해야 할 마음가짐이다. 끊임없이 부모를 챙기고 효도하는 자식을 두고 싶다면 결혼시키지 말고 곁에서 끼고 살면 그만이다.
늙어가는 것도 외롭고 서글픈데 빈말의 피상적인 위로조차 받지 못하고 입바른 소리 딱딱하는 며느리가 원망스러우셨을까. (고백하건대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다. 나에게도 네네 하던 며느라기 시절이 있었다. 시행착오를 통해 적절한 모습으로 진화했을 뿐이다.)
시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한 적이 있었나. 항상 시어머니가 던진 말들에 상처받고 말대답 못해서 속상한 적은 있었어도 시어머니란 존재 자체를 골똘히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시어머니란, 나에게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 주신 분.
남편을 낳아주셔서 감사함을 느끼기엔 그렇게 절절하게 남편을 사랑하는 것 같진 않고, 그저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의 두 딸들도 없었을 거라 상상해 보면 감사함이 묻어 나오게 되는 존재.
감사한 부분이 또 있다. 우리 집에 오시면 살림에 대해 잔소리하시면서도, 깨끗하게 치워주고 가신다. 사실 시어머니 오신다고 며칠에 걸쳐 대대적인 대청소를 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시어머니로 인해 수많은 글감이 떠오르고 나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글쓰기의 욕망을 부추긴 점!
이 점을 제일 감사하고 싶다. 다시 태어난 기분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시어머니’도 그렇다.